“입양아로서 아픔 딛고, 상처 입은 자 품는 ‘프렌즈교회’ 개척”
상태바
“입양아로서 아픔 딛고, 상처 입은 자 품는 ‘프렌즈교회’ 개척”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2.01.10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년 베테랑 찬양사역자 박요한 목사

어머니의 강력한 권유로 ‘CCM 가수’ 길 택해
소외된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 꿈꾼다

시간은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찬양들이 있다. ‘기대’, ‘주가 보이신 생명의 길’, ‘축복의 사람’ 등 박요한 목사가 부른 찬양들은 세대를 초월해 전 세대가 즐겨 부르는 곡으로 여전히 많은 감동을 준다.

2000년 CCM 그룹 ‘워킹’으로 데뷔해 남성듀오 ‘축복의사람’으로 활동하며 20년 가까이 찬양으로 복음을 전하고 있는 박요한 목사를 지난 6일 방배동 서래마을에 위치한 프렌즈교회에서 만났다. 20년 경력의 베테랑 찬양사역자인 그는 “세상 속에서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한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를 꿈꾸며 지난해 5월 프렌즈교회를 개척했다”고 밝혔다.

‘프렌즈교회’는 기존 교회의 모습이라기보다 카페의 외형에 더 가깝다. 매주 목요일과 주일에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카페공간으로 활용하며, 지역전도를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무엇보다 ‘프렌즈교회’라는 이름답게 세상 속에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박요한 목사의 눈이 반짝 빛났다.

박요한 목사는 “프렌즈교회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아프고 상처 입은 자가 오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요한 목사는 “프렌즈교회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아프고 상처 입은 자가 오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마음이 상한 자 위로하는 ‘찬양’으로

코로나 팬데믹으로 목회도 찬양사역도 어려웠던 시기, 코로나19 극복 응원가 ‘힘내요 대구송’을 발표해 국민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을 자처한 그다. 현장예배에 제약이 많다 보니, 문화행사나 집회가 활발히 일어나지는 않지만, 그는 이 시기에 찬양을 만드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찬양의 힘은 제가 직접 갈 수 없는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삶의 어려움과 고민으로 상처받고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 제 찬양이 들려졌으면 합니다.”

대중가요처럼 CCM 찬양도 매일 새로운 곡이 쏟아진다. 하지만, 많은 크리스천들이 새로운 곡을 찾아 듣기보다 이미 익히 알려진 오래된 CCM 곡들을 선호한다. 지금보다 과거의 CCM 가수들의 음악적 소질이나 역량이 크게 뛰어났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사운드 기기 발달로 지금의 CCM 곡들이 음질이 뛰어나고 음악적 소양과 자질이 뛰어난 가수들도 많다. 하지만 ‘옛곡’을 찾아 듣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박 목사는 “대중가요 차트는 매일 새로운 곡이 창작되고 인기순위도 자주 바뀐다. 하지만 오랫동안 CCM 차트 순위는 변화가 없다. CCM 시장을 만드는 것은 결국 예배이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이라고 밝혔다. 결국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곡보다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목적을 이루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박 목사는 “아무리 좋은 CCM 곡도 은혜가 빠지면, 사람들의 귀는 움직여도 마음은 움직일 수 없다. 음악적 완성도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측면에 집중하고 기도할 때 좋은 곡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CCM가수로 부르신 하나님

CCM 가수라는 익숙한 그의 타이틀 앞에 붙는 또 다른 수식어가 더 있다면, “입양”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2013년, ‘요한의고백’이라는 간증집을 통해 처음 입양아로 자라온 지난 삶을 털어놓아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박 목사는 “하나님의 타이밍이라는 표현을 쓴다. 제가 아내를 만나 결혼하고 사랑하는 자녀를 낳고 키우면서 아빠가 되니 저의 이야기를 나눌 용기가 생겼다. 책이 나오기 전에는 주변의 친구조차도 몰랐는데, 제가 입양아라는 것을 오픈하고 제 삶에 새로운 시즌이 열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가슴으로 낳아주신 엄마의 전폭적인 지지로 CCM 찬양사역자의 길을 걷게 됐다. 그리고 입양아란 사실을 밝힌 7년 전부터 홀트아동복지회, 한국입양홍보회, 위드맘 홍보대사로 입양 사역과 미혼모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

박 목사는 “원래는 대중가수가 되려고 했고 많은 기획사의 오디션을 보기도 했다. ‘데모 CD’를 만들어 기획사에 보내고 오디션도 많이 봤다. 그러면서 우연히 CCM 가수를 뽑는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이미 유명 대중음악 기획사에도 합격한 상황이었기에 그는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CCM 장르도 잘 알지 못하던 상태였기에 무턱대고 CCM 가수를 하겠다고 나서기도 어려워 고민이 되던 찰나. 믿음이 좋으셨던 어머니의 조언이 강하게 다가왔다. “당시 어머니는 노래를 좋아하는 아들이 대중가수가 되면, 혹여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며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것을 권유해주신 어머니의 전폭적인 지지로 CCM 가수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병상 중에 있는 어머니의 적극적 지지는 그에게도 커다란 울림이 되어 지금의 찬양사역자 박요한 목사를 만들었다. 지금 그의 모습을 천국에 계신 어머니가 본다면 누구보다 기뻐하실 것이 분명하다.

박 목사는 “어머니가 당뇨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져 투석을 하시다가 결국 돌아가셨다. 제일 최선이 신장이식을 받는 것이었는데, 제가 입양아이기 때문에 조직검사가 맞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놀랍게도 제 조직이 일치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회고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던 상황이었지만,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수술이 무산됐다. 그는 “당시에는 어떻게든 어머니를 회복시키기 위해 수술날짜를 잡았다. 하지만 병원에서 큰소리가 날 정도로 어머니가 극구 반대해 무산될 수밖에 없었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입양아의 정체성’이 감사의 고백으로

입양아라는 사실을 처음부터 달게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청소년 시절, 그가 입양된 사실을 알고 한참을 방황했던 그다. “청소년 시기 처음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제가 버려진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제 존재가 거절당했다는 비참함 때문이었죠. 저를 낳아준 생모에 대한 원망이 제 마음에 분노로 자리 잡았고, 오랜 시간 방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부모님의 사랑과 진심은 그의 마음을 열게 했으며, 찬양사역자의 길을 걸으며 인간의 정보다 한 차원 높은 하나님의 큰 사랑을 느끼게 됐다. 박 목사는 “자신이 원치 않는 생명에 대해 쉽게 포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난 후에는, 생모가 나를 지켜줬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 미워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용서하게 됐다”고 전했다.

감사한 것은 그의 마음에 ‘용서’를 새긴 이후 그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을 향해 받은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가 교회를 세운 것도 “하나님이 보내준 영혼을 섬기라”는 마음 때문이다.

박요한 목사는 “프렌즈교회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아프고 상처 입은 자가 오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CCM 가수 박요한 목사는 “세상 속에서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을 위한 친구가 되어주는 교회를 꿈꾸며 지난해 5월 프렌즈교회를 개척했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리 어린 시절 공개적으로 입양이 됐다고 해도 청소년이 되면 분명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된다. 아이들은 생모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원망의 마음이 있다면, 입양 부모는 아이들이 생모를 찾아갈까에 대한 근심과 염려가 있다”고 말했다. 입양아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그는 프렌즈교회를 통해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이들을 품어가길 기대하고 있다.

박 목사는 “입양 사실을 밝히면서 많은 입양 가족을 만나게 됐다. 그나마 입양된 아이들은 가정에서 자란다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며, “하나님은 교회가 한 번도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들을 위한 영적인 가족이 되어주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우리 교회가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의 영적인 가족이 되어주는 곳이 되길 기대한다. 감사하게도 이 사역을 하는 사람들과 단체를 붙여주셔서 교회는 보호종료 청소년들을 돕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사역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양육능력이 없어 5~10년 이상 아동양육시설에 생활해온 아이들은 만 18세가 되면, 보호시설을 떠나 홀로서기를 시작해야 한다. 박 목사는 “아직은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에 보호종료아이들은 홀로 정글 같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러한 세상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들을 돕고자 하는 단체와 개인과 연대해 프렌즈교회가 이들을 돕는 ‘허브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예수님은 소외된 자와 병든 자, 세상 사람들이 꺼려하는 이들에게 먼저 다가갔다. ‘진짜 친구가 누구인가’라는 고민을 하면서 프렌즈교회라는 이름을 지었다. 교회가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아프고 상처입은 자가 오는 곳이 바로 우리 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