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들에게 올해도 희망을 …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상태바
고려인들에게 올해도 희망을 …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  광주=이인창 기자
  • 승인 2021.12.31 02: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광주 고려인마을 속 교회 이야기

국내 첫 고려인 지원조례 광주, 4천5백여명 정착 터전
갓플리징교회, 이주민지원종합센터로 폭넓은 섬김사역

올 겨울 들어 서울과 경기도에 첫 한파경보가 발령된 지난 24일 새벽 공기는 옷섶을 깊이 파고들었지만 기분만큼은 상쾌하다. 광주로 향하는 길, 보통 때 갔으면 KTX 고속열차를 이용했겠지만 이날은 삯이 저렴하기에 비행기에 몸을 싣기로 했다.

비행기는 강한 바람 탓에 많이 흔들렸지만, 무사히(?) 광주공항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광주는 함박눈이 예보된 탓에 구름이 묵직하게 내려와 포근하게 도시를 덮은 듯 했다.  비행기를 타고 간 목적지가 ‘고려인마을’이라는 사실은 왠지 모를 설렘을 준다.

고려인 약 4천 5백명이 살고 있는 광주광역시 월곡동 고려인마을은 공항에서 차로 5분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월곡동은 광주 도심지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 안 ‘고려인마을’은 주변 아파트 단지가 둘러싸여 있는 주택단지라고 할 수 있다. 

작년 겨울 방문했던 인천 함박마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5천여명 고려인이 사는 함박마을은 상가거리가 화려했지만, 월곡동은 주변 주택과 꽤 잘 어울리는 모습이다. 모국에 정착해 새롭게 나아가고 있는 고려인들과 그들을 돕는 믿음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본다.

국내 최초로 고려인 지원조례가 제정된 광주광역시에 고려인마을이 조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려인마을은 이국적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주택가와 잘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국내 최초로 고려인 지원조례가 제정된 광주광역시에 고려인마을이 조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고려인마을은 이국적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주택가와 잘 어울리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주민들의 사랑방 ‘이주민종합지원센터’
이날 약속을 하고 찾아간 갓플리징교회 전득안 목사(이주민종합지원센터)와 김현 사모는 식사부터 하자며 고려인 식당으로 안내했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향신료 냄새가 강해 걱정도 됐지만 호기심이 더 큰 자극으로 다가왔다.

“고려인 성도들도 자주 해먹는 당근 김치가 먹을 만해요. 중앙아시아 사람들이 주로 먹는 ‘리뾰시카’ 빵도 맛이 참 좋은데, 이것도 먹어봐요. 양고기와 닭고기 꼬치도 맛있으니까 들어요.”

권해주는 음식마다 맛이 꽤 좋았다. 1937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당했던 고려인들은 한국의 입맛을 지켜오면서 현지 음식과 조화를 이루어냈다고 한다. 오히려 김치 맛이 가장 어색했고, 거의 모든 음식들이 입에 잘 맞았다. 거리에서 사람들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던 전 목사는 식당에서도 건너편 식탁 누군가와 반갑게 대화하곤 했다.

이주민종합지원센터와 갓플리징교회를 이끌고 있는 전 목사는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목회자다. 한국CCC 간사로 오랫동안 대학캠퍼스에서 사역 하다가 10년 전 교회를 개척했고, 2018년 교회를 합병하면서 지금은 태국선교사로 떠난 최용진 목사와 이주민 사역을 함께했다. 그리고 그 지경이 넓어져 고려인 사역이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도 한창이다.

“처음 목회를 하면서 고려인 사역을 생각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려인 한 두 명이 교회와 연결이 된 후 비중이 늘어났고, 고려인 예배까지 별도로 드리게 되면서 사역이 확장된 거예요. 하나님께서 열어가는 것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사 후 이주민종합지원센터 1층 사무실에서 대화를 하는 사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저마다 목적에 따라 웃음을 머금고 문을 열고는 스스럼없이 드나든다. 교인도 있고, 주민도 있고,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 학교를 마친 아이들은 제 집에 온 듯 물을 마시고 과자도 하나씩 집는다. 어김없이 전득안 목사에게 말을 건네고 살포시 안기기도 한다. 전 목사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모두를 성의껏 맞아주었다.

아이들은 한국 성 씨에 나탈리아, 막심, 이리아, 안들레이, 에고르, 세르게이와 같은 이름으로 불렸다.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말을 건네면, 하나 같이 수줍어 하며 몸을 꼰다. 활짝 웃으면서도 눈빛조차 맞추지 못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한없이 순수하게 느껴진다. 

전득안 목사가 하교 후 이주민종합지원센터 사무실에 놀라온 아이들과 함께 손하트를 그리고 있다.

“고려인 이주 특징은 가족, 교육이 중요”
“월곡동 고려인마을은 가까운 곳에 공단들도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조성됐다고 할 수 있어요. 특별히 광주광역시는 전국에서 최초로 고려인 지원 조례를 만들었는데, 조례가 지정되면서 고려인들이 찾아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려인마을이 있기까지 많은 신앙인들이 역할을 한 것도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목사는 고려인마을에 가장 필요한 것이 단연 ‘교육’이라고 했다. 이주민센터는 2층 예배당과 3층 공부방, 지하 어린이도서관을 교육 공간으로 마련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고려인 이주의 특징은 가족 단위입니다. 조선족과 달라서 한국말을 잘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국내에 고려인 자체가 많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일하러 간 사이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울 시간이 부족하고, 마을에서 러시아어를 쓰는 친구들과 주로 어울립니다. 쉬운 말은 하지만 공부할 때 배우는 언어는 어렵습니다.”

사실상 교사와 학부모 간 전화 통화도 어렵다. 전화를 하면 부모들이 무서워 그냥 끊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일반 학교에서 모든 수업을 통역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상당수 고려인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거나 중도 하차해 버리고 만다. 

이주민센터가 운영하는 ‘공부방’이 그래서 중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중앙아시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공부하도록 돕는 것도 공부방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공부방 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나탈리아 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초등학교 교사였다. 김 씨는 “고려인 아이들이 한국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든, 현지로 돌아가기 위해서든 열심히 배워야 한다”며 “아이들이 공부방에서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개인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어서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총신대 신학과 휴학 중인 남은총 청년은 자원봉사를 하며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다.
“한국말을 많이 어려워하는 것을 보면서 일상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특별한 공부가 아니라서 더 편안하게 다가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나중에 목회 사역을 하면서도 좋은 인사이트를 줄 것 같습니다.”

고려인마을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적절한 ‘교육’이다. 이주민종합지원센터 내 공부방에서 러시아어로 배우는 수학에 열중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은혜와 감사 넘쳐요”
고려인마을에서 이주민센터 사역을 하다보면 웃음이 나면서도 가슴 아픈 순간들도 많다. 또한 은혜와 감사가 넘치는 사건도 순간순간 찾아온다. 

지난해 전득안 목사와 김현 사모는 타지방으로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급한 전화를 받았다. 교회에 출석한 지 한달 정도 된 에카쩨리나와 남편이 산부인과에 입원해 출산을 했는데, 돈이 없어 퇴원을 못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어린 부부는 출산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급하게 여기저기 전화를 돌려 후원을 요청하고, SNS에 소식을 나누면서 병원비용과 육아용품도 마련할 수 있었다. “난데없이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며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감격과 행복이 표정에 묻어나는 전 목사다.  

특별히 지난 10일에는 경사가 있었다.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온 니마짜와 딸 은지가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난민으로 인정받는 기쁜 순간도 있었다. 니마짜는 작년 여름 막 태어난 아이를 안고 힘없이 이주민센터 문을 열고 찾아온 여성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토속종교의 여성 할례를 피해 난민 신분으로 입국했지만, 국내 생활이 극히 어려웠다. 아프리카 출신 여성 흑인이 이 땅에서 기댈 곳은 많지 않았다. 더구나 1심 재판에서 패소한 상태였다.

이주민지원센터 정기원 전도사가 동분서주 하며 아프리카 현지에 수소문해 자료를 수집해 법정에 제출하면서 재판은 역전이 됐다. 난민신청자 중 0.8% 밖에 안 된다는 승소를 이뤄낸 것이다.

“24년전 약속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
고려인 주민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이주민종합지원센터는 열려 있다. 갓플리징교회는 고려인예배 뿐 아니라 한국어예배와 함께 태국어예배까지 드리고 있다.

은혜와 감격이 현실 가운데 매번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동역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이주민지원센터 운영위원로 후원하고 있다는 구온유 집사는 “고려인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졸업을 하면 갈 곳이 거의 없다. 국가가 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교회에서 감당해 주고 있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섬겨주고 있기 때문에 이주민종합지원센터가 계속 문을 열 수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병원에 갈 수 없는 주민들을 위해 의료사역도 수시로 하고 있다. 특히 치과진료를 위해 전용 침대도 센터 내에 마련했다. 신앙을 가진 의료인들이 섬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 목사는 수시로 찾아와 섬겨주는 봉사자들을 언급하면서 감사를 표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길이지만 사실 개척 교회 현실에서 고려인마을 이주민센터를 운영하는 것은 녹록치 않다. 전득안 목사는 교회 사례비가 없다. 사실 형편이 어려운 고려인 성도들이 헌금을 많이 하기도 어렵다.

김현 사모가 그동안 사회복지기관에서 근무하면서 사역을 뒷받침했는데 며칠 전 8년 동안 근무한 직장에서 퇴직하게 되면서 잠시라도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은혜 가운데 연결된 아산사회복지재단 3년 프로젝트도 반년 후면 마무리된다. 그동안 ‘심리정서회복’, ‘연극’, ‘댄스’, ‘멘토링’, ‘부모관계 개선’ 등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전개했던 만큼 고려인마을 아이들을 위한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주민센터 이영미 팀장은 “가정방문을 하면서 부모 상담을 하고 교회 차원에서는 교인 심방을 하면서 마을 주민들을 만나는데, 아이들 교육과 성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아주 좋아한다. 이번에 ‘빛고을고려인어머니회’ 봉사단체까지 생겨서 성탄절 행사도 주관하게 됐다”면서도

“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활동을 계속해서 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가 계속되면서 지칠 법도 하지만 전득안 목사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께서 이끄셨던 신실한 과정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24년 전 저희 부부는 중앙아시아 선교사로 파송 받았습니다. 현지에서 1년을 살았고 매년 2개월은 그곳에서 사역을 했는데, 14년 전부터 중단됐습니다. 마음 속에 장기 선교에 실패했다는 잠재의식이 있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참 신기합니다. 그 땅에서 만났던 고려인들을 이 땅에서 다시 만나고 러시아어로 대화하고 있잖아요. 우리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