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중의 고전 십계명,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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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중의 고전 십계명, 오늘날에도 살아 숨 쉬는 이유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12.15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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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 (40) 하나님과의 ‘연결고리’

고전은 인기가 없다. 의무감에 꾸역꾸역 펴보기는 하지만 고리타분하고 재미없는 옛날이야기로 취급되는 것이 예삿일이다. 성경 자체가 고전에 속하지만 그 안에서 더 고전을 꼽으라면 구약, 구약 중에서도 가장 고전으로 꼽을 만한 구절이 바로 십계명일 테다.

자타공인 신실한 신앙인이라 자부하면서도 십계명을 목숨처럼 지키고 있다는 이들은 찾기 힘들다. 십계명은 교회 안에서조차 가끔 오래되고 낡은 글귀로 취급되곤 한다. 하지만 본지는 올해 십계명은 과거의 유산이라는 잘못된 인식에 도전했다. 십계명을 주제로 연중기획을 이끌기로 하고 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이라 이름 붙였다. 십계명 안에는 오늘날에도 변함 없이 적용될 실천적 원리들이 빛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변순복 교수(백석대 구약학)는 십계명을 헌법에 비유했다. 헌법이 다른 법의 원리이자 근간이 되듯, 십계명도 우리 신앙생활의 바탕이 된다는 의미다. 언뜻 나와 관련 없어 보이는 구절처럼 보일지라도 실상은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관통한다.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 열 가지 계명은 크게 두 영역으로 구분된다. 첫째는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다룬 1~4계명,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룬 5~10계명이다. 올 한해 본지를 빼곡히 채웠던 연중기획을 결산하며 먼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계명들을 짚어봤다.

 

하나님보다 높아진 것들

첫 문장은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소설도 그렇고 기사도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도 십계명의 가장 첫머리에 제일 중요한 구절을 새겨 놓으셨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우리 신앙의 근간이자 다른 모든 십계명이 서 있는 터전이다.

사실 21세기는 다른 신이라는 말이 그리 와 닿지 않는 시대다. 문명사회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교회에 다니면서 동시에 절을 간다든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굿판을 벌이는 크리스천을 찾기는 힘들다. 그래서 1계명은 의외로 오늘날의 신앙인에게 가볍게 여겨지곤 한다.

하지만 바알과 아세라와 같은 이방신들이 떠난 자리에는 물질과 명예가 들어섰다. 그뿐이랴. 지식과 사상, 심지어 자녀들과 나 스스로조차도 하나님보다 앞선 우상이 된다. 말로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의존하지 않고 세상의 것들을 보험처럼 숨겨둔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우리의 시선은 어느새 돈과 사람들에게로 향해 있다.

특히 자녀의 문제는 쉽사리 알아차리기 힘든 21세기의 우상이다. 돈과 명예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스스로 인식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자녀에 대한 비뚤어진 집착은 모성애와 부성애로 포장되기 쉽다. 우리도 모르는 어느 샌가 자녀의 성공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 두고, 혹은 하나님을 자녀의 성공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어찌 보면 권위적인 명령으로 비춰질 수 있는 1계명에는 사실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 있다. 강영안 교수(미국 칼빈신학교 철학신학)사람은 누구를 섬기느냐에 따라 그가 누구인지 결정된다. 돈을 섬기면 돈의 성질을, 사람을 섬기면 그 사람의 성품을 닮는다. 우리가 하나님만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자녀로 산다는 것이라면서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고 살라는 의미에서 1계명을 주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도 모르게 만든 우상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다. 어린 아이를 혼자 내놓은 부모는 혹여나 어디 부딪치지는 않을까 불안에 떤다. 장거리 연애를 하는 연인들도 비슷한 심정이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혹시 다른 마음을 품는 것은 아닐지 전전긍긍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도 눈으로 볼 수 없다. 나를 사랑하고 지켜보신다고 하는데 가끔 확신이 들지 않아 불안하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이유였다. 온 우주보다 크신 하나님을 우리가 볼 수 있는 곳에 붙잡아두려 했던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성화나 성상을 예배당에서 치워버린 것도 이런 생각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기독교 신앙의 상징과도 같은 십자가조차 2계명의 범위에 속할 수 있다. 자동차에 십자가를 걸면 교통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고 믿거나 성경책을 머리맡에 두면 귀신이 달라붙지 않는다는 생각들이 그런 경우다. 예수님의 그림을 벽에 걸어두고 성스럽다고 여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다만 기독 예술 분야는 다르다. 장동민 교수(백석대 역사신학)“2계명은 오직 신으로 숭배하기 위해 만드는 형상을 금지할 뿐이라면서 미술, 조각, 건축 등 창작 행위는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것으로 오히려 장려돼야할 일이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의 이름의 무게감

망령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 국어사전에는 늙거나 정신이 흐려 말이나 행동이 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있다고 설명한다. 교회용어사전은 신성을 모욕하고 경건하지 않은 말이라고 풀이했다. 3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게, 함부로, 생각 없이, 경솔하게, 가볍게 부르는 것이다.

아직도 감이 오지 않는다면 장동민 교수의 저서 우리 시대를 위한 십계명을 참고해보자. 장 교수는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고 저주하는 것 하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고 부인하는 것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지키지 않는 것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 자신의 죄와 실수를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으로 돌리는 것 등이 바로 3계명을 어기는 사례라고 지목했다.

크리스천이 가장 조심해야 할 사례는 바로 자신의 뜻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양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다고 확신하거나 자신의 뜻이 당연히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리라는 교만한 생각에서 출발한다.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자기 욕심대로 하면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로 등치하고 정당화를 하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라면서 그래서 사실 이 죄를 가장 많이 짓는 것은 성경을 많이 읽고 신학을 공부했다고 하는 저를 포함한 신학교 선생이나 목사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입의 계명이라고만 생각되는 3계명은 사실 우리 행동에까지 영향을 준다. 강영안 교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 삶에서 마땅히 받아야 할 무게를 갖게 하옵소서가 된다“3계명을 적극적으로 지키는 방법은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쉼을 명령하는 4계명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힘겨운 노예 생활에 시달렸다. 쉴 새 없이 무거운 돌들을 나르며 성과 피라미드를 지어야 했다. 안식의 시간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런 이들에게 하나님은 안식일을 명령하신다. 끝이 없어 보이는 고역에서 유일하게 해방될 수 있는 날이 바로 안식일이었다.

어쩌면 주 5일제가 보편화된 우리에게 안식일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여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분명 휴일임에도 여전히 우리는 쉬지 못한다. 멈추는 순간 경쟁에서 뒤쳐질 것이란 불안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다시 일의 멍에에 매어 놓는다.

그래서 진정으로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세상의 근심과 염려를 내려놓고 마음에까지 쉼을 누리는 것, 곧 내 삶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이다.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의 땀과 노력 이전에 오직 하나님께 맡겨져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지금 크리스천들이 주일(일요일)은 유대인이 지키는 십계명 속의 안식일(토요일)과는 다르다. 하지만 정장복 교수(전 한일장신대 총장)비록 안식일의 이름은 사라지고 내용이 달라졌다 하더라도 주님의 날에 지켜야 할 규범은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준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안식일의 의미와 가치를 지킬 것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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