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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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깐부
  • 김한호 목사
  • 승인 2021.11.0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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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도형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전 세계 속에서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그 중심에는 ‘오징어게임’이 있었습니다. 전 세계에 오징어게임 속의 의상과 놀이, 간식 등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 정도였습니다. 더불어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깐부’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는 ‘깜보’라고 했습니다. ‘친한 친구, 짝꿍, 동반자’를 뜻하는 은어·속어입니다. 주로 어린아이들이 구슬치기나 딱지치기를 하면서 서로 동맹을 맺을 때 “깐부하자”고 말하고 서로의 구슬이나 딱지를 모아서 공유했습니다. 많지 않은 딱지와 구슬을 다른 아이에게 잃게 되었을 때, 깐부로부터 비어있는 주머니를 채우게 되는 것은 마치 화수분을 소유한 듯 했습니다. 사실 어린 시절 자기의 구슬을 주고, 딱지를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럴 수 있는 관계인 ‘깐부’가 된다는 것은 보통 가까운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단어가 갑자기 한국 사회에 알려진 것은 ‘오징어 게임’의 등장인물 중 한 명인 ‘오일남’이 ‘깐부’를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몇 명이서 뭉쳐다니는 소규모 음악 밴드(주로 재즈를 하는)들을 미군들이 ‘combo(캄보)’라고 부르는 걸 본 우리나라 국민들이 항상 붙어다니는 단짝친구를 ‘깜보’라고 하는 줄 알고 그렇게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깐부’의 유래 중에 이 이야기가 가장 그럴 듯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4절에는 ‘깐부’ 곧 ‘친구’가 나옵니다. 어느 학교 게시판에 친구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올렸습니다. Free(자유로울 수 있고), Remember(언제나 기억에 남으며), Idea(항상 생각할 수 있고), Enjoy(같이 있으면 즐거우며), Need(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Depend(힘들 땐 의지 할 수 있는 고귀한 존재), 한 마디로 깐부입니다. 사실 이런 친구를 갖는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바로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포도나무’ 밭으로 가서 ‘포도나무’의 존재 방식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입니다. 이는 사도 요한의 핵심적인 신학 사상입니다. 

‘서로 사랑’은 복음서에서 40번 나옵니다. 그 중에 요한복음에 27번 나오는데, 요한복음 15장에는 11번이나 나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과 같은 설교 말씀에 ‘서로 사랑’이 강조됩니다. 예수님은 포도나무를 상징적으로 이야기하며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포도나무에서 서로 사랑이란 줄기인 물관과 체관을 통해 가지가 서로 공급받고, 공급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포도나무 줄기에 가지는 ‘거하라’(abide)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까요? 앞으로 로마 제국의 핍박과 탄압, 희생과 순교의 때가 올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고 떠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때, 힘들 때마다 포도나무를 보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하신 것입니다. 포도나무도 물관과 체관으로 양분을 이동시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열매 맺는 것처럼 제자들 또한 예수님과 연결되어 ‘서로 사랑’하여 주님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사랑하여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목숨을 내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의 방식대로 살아가게 도우신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어떠하든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위드 코로나’ 아니 ‘비욘드 코로나’를 맞이하며 우리 앞으로 다가올 시간들이 어떠하든 우리의 깐부되시는 예수님 안에서 주님의 방식대로 ‘서로 사랑’하는 가지, 각 지제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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