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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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 김선일 교수
  • 승인 2021.11.0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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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소망하는 위드 코로나 ④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김선일 교수(전도학)

언제 끝날지 모르게 창궐하던 코로나 바이러스의 재난이 이제 집단면역에 근접한 접종률과 위드 코로나 방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처음 코비드-19이라는 전염병이 지구촌 전역을 강타했을 때는 마치 갑작스러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진단검사와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한 대응체제가 갖춰지면서 코로나의 맹추위는 그동안 겨울과 같은 익숙한 계절처럼 느껴졌다.

이제 위드 코로나가 시행되면서 우리는 코로나와 익숙한 상태에서 큰 위협을 느끼지 않으며 조심스럽게 정상생활로 복귀하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되기까지는 마치 빙하기와 같은 상당 기간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이 코로나 빙하기에는 의료적 차원 보다는 경제적, 사회적 차원의 냉랭함이 지속할 것이다.

어느덧 익숙해진 거리두기는 당분간 많은 사람이 밀집된 공간 안에 모이는 것을 거리끼게 할 것이다. 사람들은 화급한 사안이 아닌 한 안전하고 신뢰할만한 관계와 공간 안에서만 만나고 모일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소위 K자형 회복(K-shaped recovery)이라 불리는 경제 양극화 현상이다. 늘 그렇듯, 재난과 위기는 중상층에게는 더 큰 이익을 안겨주며, 저소득층은 실직과 휴직으로 인해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한다.

위드 코로나, 혹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회는 사회적 돌봄과 영적 돌봄의 책무 앞에 서 있다. 이는 단지 복지정책에 의존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중에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에게 손길을 내민 여러 교회가 있다. 그러한 돌봄 사역은 코로나의 긴 터널 끝을 바라보는 교회들이 종교적 권리보다 먼저 숙고해야 할 중요한 영역이 될 것이다. 특히 영적 돌봄, 인격적 돌봄은 제도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심지어 교회의 행사나 프로그램으로 감당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영적 돌봄은 교회의 공동체적 습관이어야 하고, 개별 그리스도인들의 실천 영역이다. 많은 이들의 삶에서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관계적 외로움과 고립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두는 것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코로나 이후를 전망하여 영적 돌봄으로서의 전도(evangelism as a spiritual care)를 진지하게 모색할 때가 왔다. 과거와 같은 집회나 이벤트로 다수의 사람을 초청하는 방식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다. 개개인 그리스도인들이 돌봄 제공자(care-giver)로서의 소명을 발견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교적 삶(missional life)의 실천이기도 하다.

코로나로 인해 기존 교인들도 현장 예배에 참석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교회를 찾는 이들은 존재했다. 취업 준비를 하다 팬데믹으로 모든 일정이 취소되어 좌절을 경험한 한 20대 남성은 그리스도인 친구와 고충을 나누다 그의 권유로 교회를 찾아간다. 두 사람은 주일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교회에 들어갔고 제한된 예배 참석에도 불구하고 교인들의 따뜻한 환대와 배려 속에서 신앙을 갖게 된다.

홀로 살아가다 우여곡절 끝에 카페를 창업한 30대 여성은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주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는 친구의 어머니로 인해 몇 달 전 자발적으로 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별다른 이해관계도 없는 자신에게 친절하며 교회 봉사에도 헌신적인 친구 어머니의 삶이 무척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날 그는 정직하게 돈을 버는 법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자기 인생이 무언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코로나의 한복판에서도 하나님은 일하신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욱 준비되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들의 곁에서 신실하게 현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기존 교회 생활의 복원만이 우리의 희망이어서는 안 된다. 위드 코로나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선교적 돌봄을 위해 세월을 아껴야 할 기회(골4:5)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김선일 교수
김선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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