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만㎞에 달하는 로마의 도로망, 여행과 이동 자유롭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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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만㎞에 달하는 로마의 도로망, 여행과 이동 자유롭게 해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10.27 1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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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일상생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여행

초기 기독교 세계에서의 여행과 이동은 어떠했을까? 오늘날처럼 도로나 교통, 통신, 이동수단이 발달하기 이전 시기에 먼 거리 이동이 가능했을까? 로마제국은 서방의 로마, 동방의 비잔틴을 비롯한 당시의 대도시들과 대도시와 소도시를 연결하는 중소도시로 구성된 광대한 지역이었다. 100여 년간 로마제국은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녔는데, 세로 폭이 안토니누스 방벽과 다키아의 북쪽 끝에서부터 아틀라스 산과 북회귀선에 이르기까지 2,000마일(3,220㎞)이 넘었고, 가로 폭은 대서양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기까지 3,000마일(4,830㎞)이 넘었다. 이들 지역 간의 이동이나 교류는 어떠했을까? 그리고 사람들은 어떻게 이동하고 여행했을까?

많은 이들은 1세기 당시 로마제국에서의 여행이나 이동성은 상당히 제한적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여러 자료를 검토해 볼 때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여행과 이동이 있었다.

독일의 마르틴 헨겔은 “초기 기독교의 전 시기를 통해 기독교가 선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첫 120년 간 지중해 세계에서 불가항력적인 확산의 결과였다”고 말했는데, 이런 확산이 가능했던건 여행과 이동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바울의 전도여행이 보여주듯이 선교사역은 안디옥, 에베소, 드로아, 빌립보, 데살로니가, 아테네, 고린도, 로마 등 도시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기독교가 도시중심 운동으로 전개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은 그 시대의 도로체계와 이동성(mobility)의 결과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로마 제국의 도로에 대한 기록은 3세기 말의 디오클레티안 황제 당시의 것이지만, 국영도로(간선도로)는 총 372개로 도로 길이를 합치면 8만 5천㎞에 달한다고 한다. 『로마의 도로 이야기』를 쓴 후지하라(藤原武)에 의하면 로마제국의 간선도로 총 길이는 8만5천㎞지만 지선도로(支線道路)까지 합치면 29만㎞에 달한다고 한다. 도로건설 기술이나 경제력에서 크게 차이가 있었지만 로마제국의 도로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를 미국의 간선도로 총연장 길이와 비교해 보면 로마제국 당시의 도로 사정을 헤아릴 수 있다.

1990년 기준 미국의 총 도로망은 8만 8천㎞에 달한다고 한다. 로마제국이 가장 넓은 국토를 지니고 있을 당시의 총면적은 약 720만㎢였는데, 지금의 미국은 936만㎢에 달한다. 다시 말하면 로마제국의 영토는 미국의 9분지 7에 불과하지만 총 공도(公道) 연장길이는 1990년 당시 미국과 거의 비슷하다는 사실이다. 로마제국 당시 인구는 5천만~6천만에 불과했으나, 미국 인구는 3억 정도인데, 3세기 당시 로마제국의 총 도로 연장길이가 20세기의 미국과 거의 동일했다는 점은 로마제국의 도로가 얼마나 광대하게 정비되어 있었던가를 알 수 있다. 이런 도로는 오랜 기간을 거쳐 건설되었을 것이다. 1세기 당시에도 상당한  정도의 도로가 건설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2세기 이레나이우스는 “로마인들은 세계평화를 이룩했고, 우리는 도로를 따라 바다를 건너 우리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나 두려움 없이 갈 수 있다”라고 했다. 이런 도로 사정 때문에 17세기 프랑스 시인 라 퐁테뉴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이런 도로는 일차적으로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제국의 대동맥으로서 지중해 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교통로였다. 바로 이 도로가 교역과 여행과 이동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1세기 당시에도 여행이나 이동이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원활했음을 알 수 있다. 복음전도자들도 이런 도로망을 이용했을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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