口禍之門(구화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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口禍之門(구화지문)
  • 송용현 목사
  • 승인 2021.10.13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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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용현 목사/안성중앙교회 담임

구화지문(口禍之門)이란? 뜻은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란 뜻이다. 당나라 말기에 풍도(馮道)란 사람이 쓴 설시(舌詩)에 나오는 말인데 그 뜻을 새겨보면 다음과 같다. 

“입은 곧 재앙의 문이오(口是禍之門 구시화지문) 혀는 곧 몸을 자르는 칼이라.(舌是斬身刀 설시참신도) 입을 닫고 혀를 깊이 감추면(閉口深藏舌 폐구심장설) 가는 곳마다 몸이 편하다.(安身處處牢 안신처처뢰)” 

성경에 이르기를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3:6) 말씀하고 있다.

요즈음 대선을 6개월 정도 앞둔 시점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구설과 구설수로 많은 곤욕들을 치루고 있다. ‘구설수(口舌數)’는 남과 시비하거나 남에게서 헐뜯는 말을 듣게 될 운수란 뜻인데 “구설수에 휘말리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하거나 타인으로부터 비방하는 얘기를 듣게 될 운수에 휩쓸려 들어가다는 말이 돼 버린다. 안 좋은 일로 남의 말거리가 되어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을 가리켜서는 ‘구설(口舌)’이라 한다. ‘구설수’가 다른 이들의 비방으로 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면 ‘구설’은 스스로 불러들인 화라 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임금에게 일만 달란트 빚을 졌던 한 종에 관한 비유가 나온다. 기한이 차서 차용금을 갚아야할 때가 다가왔건만 갚을 수가 없게 되자 주인이 명하여 그 몸과 처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 했을 때 처자식이 노예로 팔려갈 처지에 다급해진 종이 간곡히 엎드려서 절하며 이렇게 아뢰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다 갚겠습니다”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해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애절하고 간곡한 말 한마디가 임금의 마음을 움직였음이 아니었겠는가?

한마디 말의 소중함에 관한 이야기 가운데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가 어느 날 저녁 산책을 하고 있을 때였다. 걸인 하나가 “한푼 줍쇼”하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산책을 나선 길이라 아무것도 줄 것이 없었다. 그때 그는 어떻게 했을까? 그냥 지나쳤다면 오늘 할 얘기가 없을 것이다.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고 외투 주머니에서 손을 빼서 걸인의 손을 잡으며 “친구여 오늘은 마침 내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네”라고 다정히 말을 하며 미안해했다. 그러자 그 말을 들은 걸인이 그의 손등에 눈물을 떨구며 하는 말이, “선생님, 선생님의 그 한마디는 제게 천만금을 주신 것보다 더 소중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세상을 따뜻하게 하고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녹인다. 잠언 12장 17~18절은 “진리를 말하는 자는 의를 나타내어도 거짓 증인은 속이는 말을 하느니라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 말씀하고 있다.

베드로 사도는 벧전 4:9절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라고 권면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과 글은 어떠해야 할까? 20세기 위대한 영성가 였던 A.W 토저의 자서전 작가인 제임스 L. 스나이더는 그의 책 ‘In Pursuit of God: The Life Of A.W. Tozer’에서 토저 목사를 이렇게 평가했다. “기도는 A.W 토저에게 기필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설교와 글들은 단지 그의 기도생활의 연장선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리들의 말과 글들이 그냥 내 뱉어지는 말이 아니라 기도의 연장선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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