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진리 담은 책 출판하고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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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진리 담은 책 출판하고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 일깨워”
  • 정하라 기자
  • 승인 2021.10.0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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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30주년 기념 학술대회’ 열려

개신교 최고(最古)의 출판사 대한기독교서회
서회 초기 출판물 통한 ‘한글의 대중화’ 조명

“대한기독교서회의 가장 큰 업적은 조선시대 양반 지식인들에게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다양한 형태의 쉬운 한글책으로 번역 출판한 것이다.”

대한기독교서회 창립 130주년을 맞아 서회의 초기 출판물을 바탕으로 한글의 대중화를 조명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대한기독교서회는 창립 130주년을 맞은 지난해 각종 기념행사를 준비해왔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행사가 전면 연기되면서 올해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지난 5일 구세군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1890년 ‘조선성교서회’라는 이름의 문서선교기관으로 설립된 대한기독교서회(이하 서회)는 한글 출판을 원칙으로 1만 여종에 이르는 도서를 발간했으며, 교회 연합기관으로서 일상과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한글이 보급될 수 있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날 심포지움에서 대한기독교서회 사장 서진한 목사는 “대한기독교서회는 1890년 구한말, 조선의 명운이 다해가던 시기 창립됐다”며 “서회는 고종 황제의 결정에 앞서 한글을 사용하기로 설립 헌장에서 천명했고, 기독교적 가치관을 담은 종교서적은 물론이거니와 각종 교과서와 교양서, 사전류 등 다양한 분야의 한글 서적을 만들어 보급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는 우리나라에 한글이 널리 보급된 계기가 됐으며, 양질의 한글 도서가 없던 당시 조선 사회에 지식만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낸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평가했다.

대한기독교서회는 올해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지난 5일 구세군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대한기독교서회는 올해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지난 5일 구세군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조선인의 계몽 도운 ‘기독교문서운동’

‘죠션셩교셔회’라는 이름으로 1980년 설립된 서회의 창립 목적은 “조선어로 기독교 서적과 전도지와 정기간행물의 잡지류를 발행해 전국에 보급하기 위한 것”이었다. 창립 이후 20여 년 동안 기독교서회의 기독교 문서운동은 복음 전파로 개종자들을 얻음과 동시에 신문명을 소개해 당시 조선인들의 계몽을 돕는 것에 있었다.

15세기 중엽 창제·반포된 한글은 고종 황제가 추진한 갑오개혁(1894) 때 국가의 언어로 공식 인정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계급이 낮은 천민이나 여성들만 사용하는 글자로 여겨지며 주류언어로 사용되지 못했다.

한글을 알고 있다고 해도 이들이 읽을 수 있는 책도 많지 않았다. 국가에서는 한글 독자를 위한 책을 거의 출판하지 않았으며, 문중에서 간행하는 책은 대부분 한문으로 된 문집이나 족보였다. 이러한 한글이 사회의 주류 언어로 자리 잡기까지 기독교와 서회의 역할이 컸다는 진단이다.

이날 발제를 맡은 허경진 교수(연세대 명예교수)는 “서회의 가장 큰 업적은 조선시대 양반 지식인들에게 천대받던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기독교 진리를 담은 다양한 한글책을 출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선교사들이 예견했던 것처럼 한글 출판물은 늘어나지만, 한문 독자가 점점 줄어들면서 한문 출판물은 재고가 쌓여갔다”고 전했다.

또한 “성경보다 쉽고 명쾌한 언어로 쓰고 삽화도 들어간, 재미있는 기독교 서적을 보급하자”는 영국성교서회(RTS)의 설립자 조지 버더의 생각을 받아들여, 서회는 쉬운 한글로 번역하고 그림을 넣어서 게일의 ‘텬로력졍’, 베어드부인의 ‘동물학’, ‘식물학’ 등을 출판했다. 이 그림들은 현재까지도 재미있고 유익한 볼거리가 되고 있다.

허 교수는 “서회는 영업을 기본으로 하는 출판사지만, 교회뿐만 아니라 병원, 학교, 감옥 등 사람에게 많이 모이는 곳에 출판물을 비치해 책과 거리가 멀었던 일반인들에게 독서 습관을 정착시키는 데도 큰 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대한기독교서회는 올해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지난 5일 구세군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대한기독교서회는 올해 10월 9일 한글날을 맞아 지난 5일 구세군 정동 1928 아트센터에서 13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양질의 한글도서로 ‘인식변화’ 이끌어

3.1운동 직후 우리 사회는 민족 자결의식과 기독교에 대한 호기심, 교육열이 전례 없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국민들의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독서인구도 늘어가는 가운데 서회는, 1907년 ‘죠션예수교서회’로 명칭을 개칭하고 전도지를 비롯해 신학서적과 수준 높은 일반교양 서적 발간에 박차를 가했다.

또 서회의 간행물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 하나가 바로 ‘찬송가’다. 찬송가는 문학과 음악이 합해진 서적으로 대한기독교서회에서 130년 동안 가장 많이 팔리고 사랑받은 책이 찬송가라고 할 수 있다. 서회는 찬송가의 저작권을 가지고 시대에 맞는 새로운 번역본을 만들어냈다.

최초의 찬송가를 예수교서회에서 간행한 것은 아니지만 1908년 연합찬송가집 ‘찬숑가’를 편찬했고 1931년 ‘신뎡찬숑가’를 간행하면서 서문에서도 한국찬송가의 전통을 이어받은 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서신혜 교수(한양대학교 인문학)는 “한글 찬송가는 배움의 길에서 전혀 소외돼 있던 여인들, 평생 문맹이었던 나이든 할머니들까지 한글을 깨우치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고 강조했다.

서회가 편찬한 양질의 한글도서는 어린 아이들과 여성에 대한 지식 전달을 넘어 사회적 인식 수준을 변화시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1920년 이후 서회는 집중적으로 여성과 아이에 관한 책을 출간했고, 이는 단순히 한글을 깨우치게 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여성에 맞는 다양한 사회적 지식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

서 교수는 “서회의 여러 출판물은 한글로 출판되었기에 넓은 범위의 여성들에게 읽혔으며, 남성들에게도 책의 내용을 통해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여성과 아이에 대한 인식 수준을 크게 고양시키는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서회의 출판물은 하나님 앞에 여성도 남성도 똑같은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 집에서 해방돼 남성과 함께 교회당에서 배울 수 있었다는 것 등을 깨닫게 했다. 이는 고스란히 기독교의 ‘한글 사용’ 결정과 ‘한글 책’ 보급이 여성에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설명이 되기에도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 서회 130년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좋은 읽을거리나 출판사가 없던 19세기 말, 어떤 책이든 제작하면 독자가 있고 판매가 됐다. 하지만 좋은 기획 없이는 성공하지 못했다. 서회와 같은 시기에 출발한 ‘The Trilingual Press’는 자체 인쇄기도 마련해 좋은 책과 신문, 월간지, 전도지 등 다양한 형태로 출판시장의 선두가 됐다. 하지만 경쟁자가 늘어나고 교단 연합을 이뤄내지 못해 수요가 줄게 되자 문을 닫고 말았다.

허경진 교수는 “한글 전용의 큰 틀을 세우고, 선교사와 한국인이 함께 번역해 출판시장을 넓혀간 서회는 기획과 필자 확보, 교단 연합과 지원, 편집과 판매라는 출판사의 여러 필수적 요소를 모두 확충하면서 기독교인이 아닌 독자들도 찾는 출판사가 됐다”고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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