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에게 ‘손 대접’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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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들에게 ‘손 대접’은 가장 기본적인 도덕 관행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10.0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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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일상생활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 손 대접(2)

베네딕트의 수도규칙 제53장은 ‘손님들을 받아들임에 대하여 De hospitibus suscipiendis’ 인데, 24개 절로 구성되어 있다. 그 서두는 다음과 같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은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장차)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합당한 공경을 드러낼 것이며 특히 신앙의 가족들과 순례자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초기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손 대접을 기본적인 도덕적 관행으로 여겼다. 그것은 취약한 나그네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보았다. 이것이 기독교 전통의 손 대접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손 대접을 통해 어떤 이익이니 유익을 얻을 수 있는가를 연관시키는 헬라적 사고방식과는 달리 기독교회는 보답할만한 가능성이 가장 적은 연약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당시 손 대접은 기독교 전통이었을 뿐만 아니라 불신 사회에도 그런 전통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해관계에 얽힌 의도적 대접이거나 야욕에 기초한 것이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타국인이나 가난한 나그네를 맞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계층의 부유한 인사들을 맞아들임으로써 후일 어떤 형식이든 보상을 얻으려는 정략적 의도가 있었다. 키케로 같은 이는 “저명한 사람들의 집은 저명한 사람들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기독교인들의 손 대접은 이와 달랐고 또 달라야 했다.

콘스탄틴의 아들 크리스푸스의 가정교사이기도 했던 락탄티우스(Lactantius, 240~320)는 기독교 전통의 손 대접을 그 시대의 손 대접 관행과 분명하게 대조시켰다. 손 대접은 ‘주된 미덕’이지만 손 대접을 자신의 이익과 결부시키는 키케로 같은 철학자들을 비판했다. 락탄티우스는 어울릴만한 사람들에게만 관대함을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거부하면서, 공의로운 사람의 집은 저명한 사람이 아니라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신분의 사람들에게도 열려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친 또 한 인물이 존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c.349~407)이었다. 손 대접에 대하여 감동적이고도 지속적으로 가르친 그는 자발적 가난을 강조하여 가난한 자들의 변호자라고도 불리기도 했다. 그는 가난한 이국인과 타국인, 나그네와 행인들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선대하고 이들을 손님처럼 대접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그리스도인들도 신분이 높은 사람을 대접함으로써 세상적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으나 그런 관행을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그대가 위대하고 저명한 어떤 사람을 대접한다면 그대가 하는 일은 순수한 의미의 자비가 아니다. 헛된 영광을 얻거나 은택을 되돌려 받거나 그런 손님을 모셨다는 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평판이 높아짐으로서 당신 자신이 그보다 몇 배 많은 이익을 챙기는 것이다.”

또 제롬(Jerome, c. 342/c. 347 ~420)은 성직자들에게 “가난한 사람과 나그네들이 당신의 검소한 식탁과 친해지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손님이 될 것이다”라고 도전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위세 높은 이를 대접함으로써 이익을 얻는 대신 대접해도 아무런 것을 돌려받을 수 없는 이들을 의도적으로 영접했다. 

크리소스톰은 다른 교회 지도자들과 더불어 가정과 교회 중심의 손 대접의 한계를 인식하고 순례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돌보기 위한 기구와 시설을 만들었다. 또 락탄티우스, 크리소스톰, 제롬을 비롯한 초대 교회 지도자들은 가난한 나그네를 맞아들이고 대접하는 것은 지위의 벽을 뛰어넘고, 존중과 인정을 가져오는 배경이 된다고 생각했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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