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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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 조성돈 교수
  • 승인 2021.09.14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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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학개 선지자는 포로기 이후 선지자 3인 중 하나이다. 그는 특별하게 4개월만 활동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성전을 지으라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 포로기에서 풀려나면서 그 동안 가졌던 성전에 대한 간절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먼저 성전을 짓기 시작했는데 주변 부족들의 경계로 말미암아 중단했다. 이들은 투서를 냈고, 이 일로 말미암아 왕의 노여움을 살까 두려운 마음에 성전건축은 중단이 되었다.

포로기에서 돌아오며 그 동안 간직했던 성전에 대한 그리움이, 건축에서 열정으로 드러났고, 그 열정의 결과는 주변에 두려움을 가져온 것이다. 이렇게 뜨거웠던 열정이 한 번에 무너지고 나니 아마 이스라엘 민족은 크게 좌절했던 것 같다. 그들은 성전건축을 포기했다. 손을 내려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신의 집을 짓고, 일상을 살았다. 그렇게 무너져 산 세월이 16년이나 되었다. 

학개 선지자의 도전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같이 전하는 선지자의 열정에 모두가 일어났다. 그리고 순식간에 성전을 완성했다. 그런데 짓고 나니 한심했다. 이스라엘의 전성기였던 솔로몬 시절의 그 성전과 비교해 보니 너무 초라했다.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모시기에 이 성전은 너무 초라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포로기에 돌아와 밑바닥에서 시작한 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성전을 지었겠는가. 그야말로 임시건축물 수준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니 탄식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그런데 선지자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선지자는 힘주어 말한다.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선지자가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강력했다. 한 절에 두 번이나 하나님은 이 말이 바로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은 이 초라한 성전에 나타날 영광이 그 화려했던 솔로몬 성전보다 클 것이라는 말이다. 그리고 위대하신 만군의 여호와께서 약속하시길 평강을 주겠다고 한다.

바로 이 구절에서 깊은 묵상을 했다. 하나님은 이 보잘 것 없고 초라하기까지 한 이 성전에서 무엇을 보셨을까. 16년 동안 무기력함에 버려두었던 성전을 불과 몇 달 만에 건축한 이 성전에서 하나님은 어떤 영광을 받으셨을까. 마음에 와닿은 건 이 백성들의 마음이다. 포로기 70년 동안 그렇게 사모했던 성전이다. 그 모진 포로기 때 이들이 그래도 무너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남고, 때를 얻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이 성전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이 초라한 성전에서 그 백성의 마음을 보셨다. 그들의 상한 마음과 간절함,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억눌리고 짓밝혔던 고난했던 삶이 제물이 되고 제사가 되어 하나님께 닿았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솔로몬의 그 화려했던 성전보다, 이 초라한 성전이 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포로기를 지나고 있다. 바벨론 유수의 시간 동안 상한 마음과 고난의 삶을 쌓아가고 있다. 곳곳에서 죽음보다 긴 이 고난의 시간에 무너져가는 백성들을 보게 된다. 마음껏 모이지 못하고, 마음껏 기도하지 못하는 이 죽음의 포로기에 우리는 무기력함을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손을 짧아 우리를 구원치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정한 그때에 하나님의 전에서 우리의 상한 마음과 상한 인생을 드려 예배하게 될 것이다. 그때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성전의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고 칭찬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 하나님의 평강이 함께 한다고 약속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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