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둘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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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둘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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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9.08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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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주관하시는 하나님 / 출애굽기 2:1~10 / 찬송: 434장

모세의 부모에게 3개월은 참으로 고난과 위험과 말로 다 할 수 없는 어려운 기간이었습니다. 당시 바로왕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남자아이를 나면 모두 죽이라는 왕명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주십니다. 애굽의 공주가 나일강으로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상자 안에서 아기 우는소리를 듣고 모세를 발견하게 됩니다. 버려진 이스라엘 민족의 남자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을 수 있는 이는 공주 외에는 아무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시간에 공주가 그곳에 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강퍅한 사람의 마음을 자비한 사랑의 마음으로 변화시켜주십니다. 그리고 형통함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배고파 우는 아기를 본 바로의 공주는 불쌍한 마음과, 여자 특유의 모성애가 발동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달래도 배고파 우는 아기를 달랠 수가 없었습니다. 이 때 멀리서 숨어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 것을 지켜보고 있던 미리암이 달려와서 공주에게 건의하기를 이 아이를 위하여 유모를 구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일생을 주관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일생을 하나님의 섭리 중에 주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릴 때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형통함으로 인도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를 형통함으로 인도하소서.

윤양표 목사 / 경성교회

 

화요일 /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 시편 116:12~17 / 찬송: 450장

인생을 살면서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은혜를 입고도 은혜를 모르고 롯과 같은 사람. 또 하나는 은혜를 입고도 오히려 은혜를 원수로 갚는 유다 같은 사람, 세 번째는 은혜를 알고 은혜를 감사로 보답할 줄 아는 다윗 같은 사람입니다.

다윗의 감사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다윗은 은혜를 깨닫고 감사했습니다.(12절)

다윗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을 할꼬 구원의 잔을 들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리라고 했습니다. 성숙한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보답하며 사는 것입니다. 
둘째, 다윗은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는 고백입니다.(13절)

‘건지셨나이다’라는 말씀은 끌어내다. 빼내다. 구원하다. 란 뜻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도저히 나올 수 없는 환경에서 끌어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셋째, 다윗은 죽음 앞에서도 감사하리라는 고백입니다.(15절)

믿음 안에 사는 자는 죽음 앞에서도 감사했습니다.(17절)

다윗은 죽음 앞에서도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를 이름을 부르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죽음이 눈 앞에 다가오는데도 설레며 감사했습니다. 다윗은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라고 15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죽음까지도 은혜요, 축복이란 말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며 늘 감사하며 생활하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김만열 목사 / 청주영안교회

 

수요일 /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않습니다 / 누가복음 16:19~28 / 찬송: 543장

말씀을 묵상하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오묘한 자연만물은 물론 우리의 몸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시신은 썩어갔고 사람들의 생각에서 나사로는 점차 사라졌지만 나사로의 삶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사로의 영혼은 위로, 하나님께로 올라갔습니다. 비록 몸과 떨어지긴 하였지만 그의 영혼은 여전히 살아있어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의 몸은 만신창이었지만 지금 그의 영혼은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호흡이 멈추고 뇌 활동이 멈추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육체가 죽어도 영혼은 살아있습니다. 그러니 죽어서 썩을 육체를 가꿀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 영혼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러나 본문 23절에 나오는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지옥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옥은 분명히 있습니다. 지금도 지옥이 없다며 복음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다가 꺼지지 않는 지옥불로 인해 고통 당하는 자들이 많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흠도 없이 점도 없이 주 앞에 평강으로 나타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이 땅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잘 믿어 지옥가지 않고 흠도 점도 없이 주 앞에서 평강으로 살게 하옵소서.

유영삼 목사 / 영광교회

 

목요일 / 온전한 믿음을 가지라 / 요한계시록 2:12~13 / 찬송: 341장

버가모 교회는 안디바가 죽임을 당할 때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주후 313년 환난과 핍박을 당하던 순교시대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가 로마의 황제가 되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한 이후에는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교회가 환난과 핍박을 당할 때에는 한 마음, 한 뜻, 한 성령으로 행했는데, 자유가 주어지고 권력을 등에 업으니까 세상 유혹을 물리치지 못하고 타락하여 세속적 가치관을 따라가는 껍데기만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영지주의를 주장하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라 영혼만 구원받아 천국가면 된다면서 육신은 음란과 쾌락의 도구로 삼았습니다. 육신적인 신앙의 자유를 누리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믿음의 길을 떠나서 천국을 버리고 세상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발람이나 니골라는 거짓된 말로 성도들을 파멸로 이끄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님을 핑계 삼아 세상의 영화를 추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환난을 통하여 책망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충성된 증인으로 끝까지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힘들 때나 평안할 때나 변함없는 믿음으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만을 따라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하시옵소서.

온재천 목사 / 광혜교회

 

금요일 / 교회와 목회자 / 에베소서 4:11~16 / 찬송: 620장

단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의미가 변화합니다. 예를 들면, ‘목회자’라고 하는 명사와 ‘목회하다’라는 동사입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되는 초기 교회 시대에 ‘섬기는 사람’의 의미를 모든 교회 구성원에게 적용하였습니다. 신자들은 어떤 직업이나 직위를 초월하여 교회 공동체에서 일정의 섬기는 사역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섬기는 사람’이라고 하면, 전문적인 사역자 혹은 직업으로서의 목회자를 의미합니다. ‘목회자’라고 할 때 교회를 세우는 여러 직임 중의 하나라기보다는 별개의 특수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목회와 지도력 관련하여 특별한 훈련을 받습니다. 목사가 신자들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도록 인도할 때, 몸의 구성원들은 흩어진 자리에서 연합으로, 깨지기 쉬운 연약함에서 강인함으로, 성도의 교제와 성장할 수 있습니다. 목사와 성도의 봉사를 통해 서로 연합하기 시작하고, 서로가 돕고 지지함으로 구성원이 성장하고, 서로를 세워줍니다. 뼈를 힘줄이 연결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은 서로를 묶어 연결합니다. 이런 사랑이 역사할 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지고, 주님은 교회를 통해서 영광을 받습니다.
 
교회가 사랑을 발산할 때 죄인은 회개하고 주님께로 돌아옵니다. 회심을 통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칭찬을 받습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섬기는 귀중한 직분입니다.


•오늘의 기도

주님. 목회자와 교회를 섬기고 싶습니다.

정석동 목사 / 창성교회

 

토요일 / 예수님의 사랑만을 전하자 / 마가복음 5:1~20 / 찬송: 520장

거라사 지방에 이르러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는 군대를 이룰 만큼 엄청나게 많은 더러운 귀신들에게 완전히 장악당하여 꼼짝없이 결박되어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상태를 아시고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는 말씀으로 이미 마음 속에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결국 귀신들은 예수님의 명령 한 마디에 그 사람에게서 나와 2천 마리의 돼지 떼에 들어가 바다로 뛰어들어 몰사하는 것으로 이 이야기는 마무리가 됩니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구하는 거라사 광인에게 집으로 돌아가서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친족들에게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군대귀신이 나가버린 ‘기적적인 사건’을 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예수님이 ‘불쌍히 여기신 것’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전해야 할 것은 우리에게 일어난 삶의 변화와 경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얼마나 오래 참으셨고 얼마나 나를 긍휼히 여기셨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내게 보여주신 예수님의 사랑과 끊임없이 공급되는 그 은혜가 동일하게 예수님을 찾는 모든 자에게도 동일하게 흘러가 역사할 것이라는 것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전할 주된 복음의 제목은 나를 불쌍히 여기신 주님의 사랑입니다.

•오늘의 기도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사랑하신 예수님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게 하옵소서.

서기성 목사 / 새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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