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중공군이 개입하면서 후퇴하던 미군은 철수를 위해 흥남부두에 닿았습니다. 이미 공산 치하에서 살 수 없었던 엄청난 피난민들이 몰려와 있었습니다. 피난민들은 배에 태워 줄 것을 간청했습니다.
미군은 탄약, 야포, 식량 같은 무기와 군수물자를 후송해야 했기 때문에 민간인을 태울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화물선 빅토리아 매러디스호는 최대 2천명 정도 가능했지만 그 자리는 군인들 몫이었습니다.
그 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알몬드 소장이 피난민을 배에 태우기로 한 것입니다. 당시 28살의 통역장교 현봉학 박사의 간청이 통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현봉학은 “이대로 철수하면 저 사람들을 다 죽는다”며 인도주의에 호소했습니다. 그렇게 빅토리아호에는 9만 8천명 피란민을 포함해 10만4천명이 탔습니다.
12월 23일 떠난 배는 10일 만에 경남 거제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 사이 성탄절 선물 같은 5명의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한척의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출한 기네스 기록’으로 등재되어 있는 흥남철수 이야기입니다.
지난 26일 정부는 긴박한 순간에도 390명 아프간인들을 국내로 이송했습니다. 한국인과 일했던 조력자와 가족들입니다. 영유아가 1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극단주의 무슬림 ‘탈레반’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저 살고자 한 것입니다.
인천공항에 도착한 아프간 아이들 손에는 법무부 직원들이 선물한 인형이 들려있었습니다. 아프간 사람들이 자유의 땅에서 평안하게 지내길 바랍니다. 다만 ‘곰 인형’을 내 세금 들여서 왜 사냐고 하는 사람들은 만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탈레반을 피해 왔는데 테러리스트라고 모함하는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순종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