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를 부정하는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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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권리를 부정하는 죄”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1.07.27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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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하는 십계명, 다시 쓰는 신앙행전 (24) 자살도 살인이다

제6계명 : 살인하지 말라(출20:13)

예수님은 산상수훈 중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으리라”(마 5장 21절)고 말씀하시면서 신명기 5장 17절의 제 6계명을 강조하셨다. 

사람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직접 창조하신 걸작품이다. 그런 사람의 생명은 존중돼야 한다고 예수님은 가르치셨다. 그 존중의 가치는 자기 생명에도 당연히 해당된다. 

그런 생명을 스스로 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자살이 죄인 것은 분명함에도 자살자를 정죄하는 것에서 그쳐선 안 된다. 그것은 참된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살예방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라이프호프는 생명보듬 강사 양성을 위한 강의를 통해 자살예방에 나서고 있다.
자살예방을 위한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라이프호프는 생명보듬 강사 양성을 위한 강의를 통해 자살예방에 나서고 있다.

자살은 생명을 파괴하는 죄
보건복지부가 이달 초 발간한 ‘2021자살예방백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자살자 수는 1만3,799명으로, 인구 10만명 당 26.9명이나 됐다. 최고치를 기록했던 2011년과 비교할 때 자살자 수는 13.2%, 자살률은 15.3% 감소했지만 여전히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평균(11.2명)보다 무려 2.1배나 높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6절에서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고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자기 목숨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임을 강조하셨다. 

생명은 조건에 관계없이 소중한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가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임을 기억해야 한다.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장 10절)는 말씀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이 생명을 얻고 풍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오셨다. 

자살은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고유한 권리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창세기 9장 6절에서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라”고 한 말씀은 자신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아우구스투스는 “사람에게 자살할 권위가 없다”고 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에서 “자살은 생명을 주신 하나님과 자기 자신, 공동체에 해를 끼치는 것이며 순리를 거스르는 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하나님의 긍휼 무시하지 말아야”
자살은 죄이기 때문에 자살자에 대한 애도, 장례를 금하면서 아주 가혹하게 대했던 교회 역사도 존재한다. 563년 브라가공의회에서 자살자 장례에서 성만찬과 시편 찬양을 금한 이후 중세 가톨릭 교회는 자살자가 구별된 묘지에 묻히지 못하도록 했다. 심지어 시체를 땅에서 꺼내어 처벌하거나 자살자 재산을 몰수하는 것과 같은 가혹한 형벌을 가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 자살자의 장례를 거절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긍휼의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매우 인간적인 판단기준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예장 통합총회가 제99회 정책문서로 채택한 ‘자살에 대한 목회지침서’에 따르면 “한때 교회가 취한 가혹한 입장은 성삼위 하나님의 긍휼의 정의를 무시한 채 생명의 복음을 지나치게 경직되게 해석한 측면이 없지 않다. 자살을 용인하거나 정당화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비탄에 바진 이웃들을 회개와 용서를 통해 화해와 치유로 인도하는 공동체 회복의 예식은 생명복음의 근본정신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자살은 분명히 죄이지만 ‘자살자가 반드시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은 인간의 교만이다. 자살을 영원히 저주받을 치명적인 죄로 단정할 권한이 사람에게는 없다. 구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자살을 자살자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도 생각해볼 일이다. 그가 겪었을 아픔과 고통은 우리 사회 공동체가 떠넘긴 것일 수 있다. 신앙 공동체가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정불화, 경제문제, 실업, 장애 등 개인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 등에 대해 교회가 무엇을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 조성돈 대표(실천신대 교수)는 “생명의 가치관과 생명의 문화를 갖고 있는 교회가 나서서 죽음의 문화를 이겨낼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며 이 땅에 생명문화가 일어나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살충동자, 유가족 교회가 동행해야”
사람들은 자살에 대해 잘 모른 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편견이 대부분이어서,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의 메시지를 간과하기 쉽다. 

자살자 10명 중 8명은 경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자살 시도는 도와달라는 간절한 외침이다.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특이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스트레스와 상처 때문임을 생각하면서 고통을 나눠지려는 노력이 성도들에게 요청된다. 교회는 자살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 보내는 고통의 메시지를 들어야 한다. 자살 충동자들을 살려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통합총회의 자살에 대한 목회지침서와 기독교자살예방센터의 가이드북을 종합해 보면, 교회의 역할은 매우 구체적일 수 있다. 

생명문화 확산을 위해 교회 안에서 자살예방 교육을 실시하고 교회 안 돌봄 서비스를 강화해서 혼자 고민하지 않도록 소통하면서 동행해줄 수 있다. 자살 시도자에 대한 사후관리지침, 자살자에 대한 장례 매뉴얼을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자살 유가족에 대한 돌봄이다. 자살자가 있는 가족들이 슬픔, 죄책감, 분노, 포기 등 다양한 감정에 빠지게 않도록 도와야 한다. 1명의 자살자가 발생하면 평균 6명 정도 유가족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가족들이 모방 자살 충동에 빠지지 않도록 함께해주어야 한다. 교회는 장례를 지원하고 유가족이 충분히 애도과정을 갖고 죄책감에서 벗어나 보살핌과 신앙적 위로를 얻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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