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편견
상태바
잘못된 편견
  • 김한호 목사
  • 승인 2021.07.27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한호 목사/춘천동부교회 담임

정태기 목사님이 상담치료원에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목사님이 살던 신안군 앞바다에는 깨진 그릇이 즐비하였습니다. 이 마을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이야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큰 배가 지나가다가 폭풍으로 인해 좌초되어 선원들이 다 죽었는데, 그때 배 안에 있던 그릇들이 폭풍과 해류로 인해 해안가로 밀려왔습니다. 이 그릇들을 집에 갖고 오면 억울하게 죽은 선원들의 혼령이 귀신이 되어 그 그릇에 붙어서 집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폭풍이 몰려온 다음 날은 어른들이 바닷가로 나와 떠밀려온 그릇들을 깼던 것입니다.

어느해 여름, 친척이 놀러 왔다가 그릇을 보고는 하도 신기해서 자기에게 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니 뭐하러 개 밥그릇을 달라고 하냐”며 그 친척에게 주었습니다. 학교 교사였던 그 친척은 그릇이 특이하여 감정을 의뢰합니다. 2개월 반이 지나서 감정 결과가 나왔습니다. 1973년인 그 당시, 서울 강남에 아파트 개발 붐이 불어서 강남의 50평의 고급 아파트가 2천만 원이었는데, 그릇의 감정가가 3억 5천만 원이었다고 합니다. 실로 엄청나지요?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미신에 대한 생각과 편견 때문에 그 그릇들을 깬 것입니다. 보물이며 보석인 줄 모르고 깬 것입니다. 잘못된 편견이 이처럼 귀한 보석을 깨어버린 것입니다. 성경 속에도 이런 편견을 가졌던 사람들의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중의 한 명이 바로 나다나엘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 빌립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여기며 나다나엘에게 소개합니다. 나다나엘은 늘 성서를 연구하고 메시아를 기다리던 사람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나다나엘의 반응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며 무시하는 것입니다. ‘나사렛’은 인구 150명에 30여 가구가 사는 갈릴리 지역의 작은 산골 마을이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교양이 없고 배우지 못한 가난한 이들 많았기에 그 당시 사람들은 나사렛에 대한 지역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말하는 나다나엘 역시 나사렛과 비슷한 갈릴리 가나 사람으로 다른 사람들의 편견의 피해자였습니다. 편견은 다른 편견을 만들어냅니다.

‘와 보라’는 빌립의 요청에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리고 바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훌륭한 고백입니까? 하지만 이 말 속에서 예수님은 아직 그가 메시아사상에 대한 편견이 있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다나엘에게 “네가 더 큰 일을 볼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말씀 같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다니엘 7장에서는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이가 이스라엘이 아니라, ‘인자’ 곧 ‘메시아’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말한 ‘더 큰 일’은 그 인자이신 예수님의 부름을 통해 나다나엘이 하나님의 도구로 새 창조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은 의도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만나 편견이 깨지고 새롭게 창조되어 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그 처음 인물이 바로 나다나엘입니다. 미켈란젤로는 그의 작품 ‘최후의 심판’에 예수님의 왼편 아래에 나다나엘을 그렸습니다. 왼손에는 벗겨진 살가죽을 들고, 오른쪽 손에 피부를 벗길 때 사용한 칼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통으로 일그러진 이 살가죽의 얼굴에 미켈란젤로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잘못된 편견을 버리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창조된 나다나엘을 자신과 동일시한 것 같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잘못된 편견을 깨뜨리시고, 새롭게 창조하셔서 세상을 고치십니다. 이 일에 기쁨으로 함께하는 여러분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