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능열쇠 같은 공정은 자비로 보완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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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능열쇠 같은 공정은 자비로 보완되어야
  • 김종생 목사
  • 승인 2021.07.06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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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생 목사/한국교회봉사단 상임이사

공정(公正)이라는 단어가 시대정신이 된 것처럼 주목받으며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공정한 사회”를 국정 방향으로 제시했고, 4년 전 문재인 대통령은 평등, 공정, 정의를 정부 운영의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대선을 앞둔 대통령 예비주자들의 공정 담론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반칙과 특권, 불공정이 문제의 발화점으로 보인다.

어느 작은 고을에 할머니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다. 어느 날 고관 행렬이 이 식당에 들렀다. 그들은 갈 길이 바쁘다며 음식을 재촉했고 아예 한 사람은 주방 입구에서 나오는 음식을 자기네 상으로 가져갈 태세였다. 이에 주인 할머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집은 먼저 온 손님이 먼저 먹는 게 법(法)이요.”

할머니의 말에 그 사람은 머쓱해졌고 다른 손님들은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 후 이 식당에 한 노인이 식사하러 들어왔다. 할머니는 노인 손님을 자리에 안내하고는 주방에 들어가 손수 그릇이 넘치도록 국밥을 챙겨 나와 노인상에 먼저 올렸다. 그러자 먼저 온 손님들이 항의조로 불평을 했다. “먼저 온 손님이 먼저 먹는 게 이 집의 법(法)이라더니 왜 나중에 온 손님을 먼저 주는가?” 이에 주인할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먼저 온 손님이 먼저 먹는 것은 법(法)이고, 시장한 노인을 먼저 대접하는 것은 도리(道理)”라고…

공정이 시대 담론처럼 회자하고 있지만 공정이 우리 시대에만 주어진 특별한 화두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공정은 경쟁사회를 전제로 해서 절차적인 공정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출발이 평등한가와 과정에 반칙이나 특권은 없었는지 과정의 공정성에 주목을 한다. 우리가 자주 소환하는 법과 원칙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고 교회의 중직자 역시 예외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절차적 공정성에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공정 논의의 한계가 내재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공정 담론에 추가하고 보충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교회가 보완해야 할 측면은 바로 스가랴 선지자가 언급하는 관용과 자비라는 덕목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서로 인애(관용)와 긍휼(자비)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슥 7:8~9) 스가랴의 말대로 재판은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재판의 공정함 가지고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공정한 재판과 더불어 우리에게 요청되는 대목이 있다. 아무리 공정을 선언하고 공정을 구현해 가는 법과 원칙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더라도 2% 부족한 것은 바로 사회약자 들에 대한 배려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는 관용과 조건 없는 자비가 우리 법과 원칙을 보완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일은 교회가 자임해야 한다.

사람과 사회에 법이 있어야 하지만 법 이전에 도리가 기본이듯이, 공정 이전에 관용과 배려가 빠지면 우리 사회는 살벌한 정글이 되고 말 것이다. 상대적인 인간이 절대적인 공정을 이야기하려면 그것은 자비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공정은 목적이 아니라 경쟁의 규칙에 지나지 않기에 법과 원칙 이전에 도리를 따져 보완하는 포근함으로 공정사회를 완성해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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