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이 텅 빈 것이 중독…영성으로 치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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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이 텅 빈 것이 중독…영성으로 치유합니다”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07.05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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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 박사 뉴라이프 아카데미 노상헌 목사

‘중독과의 이별’ 펴내고 본격 성경적 치유 프로그램 개시

“한국사회 중독 문제 심각, 크리스천·목회자도 예외 아냐”

 

노상헌 목사를 만나기 위해 판교에 위치한 남서울예수교회를 찾았다. 노 목사는 상담실 겸 목양실에서 특유의 편안한 얼굴과 음성으로 기자를 반겼다.
노상헌 목사를 만나기 위해 판교에 위치한 남서울예수교회를 찾았다. 노 목사는 상담실 겸 목양실에서 특유의 편안한 얼굴과 음성으로 기자를 반겼다.

대한민국이 ‘중독 공화국’이라는 말이 떠돈 지 족히 10년은 된 것 같다. 2018년 독일 학자 홀거 하이데와 한국인 제자 강수돌 박사가 함께 쓴 책 ‘중독의 시대- 대한민국은 포스트 트라우마 중독사회다’(개마고원)에서는 단순히 중독 현상과 통계치를 넘어 사회 구조와 시스템 차원에서 한국사회가 이미 ‘중독사회’임을 밝히고 있다. 책에서는 사회 전체가 마치 알코올 중독자처럼 중독 행위를 하면서 움직이고 있다고까지 지적한다.

목회자이자 임상심리학 박사로서 특수목회를 하는 노상헌 목사(남서울예수교회 담임)역시 “중독은 어느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부의 문제”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중독 치료의 방법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영적인 접근 없이는 완치할 수 없다”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최근 신작 ‘중독과의 이별’(홍성사)를 발간한 노 목사를 직접 만나 크리스천, 더 나아가 목회자들도 예외일 수 없는 중독의 심각성을 알아보고, 목회자로서 중독치유에 나서게 된 삶의 여정을 들어봤다.

 

임상심리학자가 된 목사

노 목사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북에서 내려온 부모님의 손에는 지푸라기밖에 없었고, 의지할 곳 없는 남쪽에서의 삶은 팍팍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를 열심히 믿는 가정이 불행을 겪는 모순적인 상황이 어린 노 목사의 눈에는 달가울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 다니던 교회가 둘로 쪼개졌다. 그는 부모님께 “친구들이 속한 쪽에서 예배를 드리겠노라”고 말하고는 그 길로 교회를 떠났다.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카투사 통역병으로 군 생활을 했다. 군에서 만난 군의관을 통해 미국 유학의 기회를 잡았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훌륭한 멘토 교수를 만났고, 파란 눈의 은사가 믿는다는 예수에 대해 그제야 믿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년가량 교수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 그때부터 뜨거운 신앙생활이 시작됐다. 세계적인 굴지의 기업 IBM에 입사 후 2년가량 근무하던 무렵, “평생 이 일을 하지는 못 하겠다”는 마음의 부담이 그를 찾아왔다. 마침 멘토 교수로부터 근방의 ‘무디 성경학교’ 입학을 권유받은 그는 신학을 공부하며 목회자의 삶에 발을 들이게 됐다.

목사 안수를 받은 지 5년째가 되던 1988년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남서울교회를 담임하던 홍정길 목사의 부름으로 이 교회 부목사가 됐고, 청소년부를 맡게 됐다. 홍 목사는 청소년 교육학 및 상담을 전공한 노 목사에게 갈등을 겪는 자녀와 부모들의 상담까지 맡겼다. 하나둘 해결 사례가 늘어나면서 감춰졌던 가족들의 문제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상담만으로 해결이 어려운 사례들은 기독교인 정신과 의사들에게 연계했는데 이 경험이 그를 지금의 임상 심리 전문가의 진로로 이끌었다.

“기독교인 정신과 의사분들에게 많은 케이스를 보내드렸는데, 대부분 다녀오신 분들이 개운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집회 등에서 본 모습과 다르게 병원에 가니 약물만 주더라는 겁니다. 의사분들도 마음은 원하지만 막상 병원 세팅에 들어가면 집회에서처럼 할 수가 없던 거죠. 그런 데서 환자들이 크게 실망하시고, 저로서는 임상 심리 전문가가 아니니까 도울 길이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죠.”

1995년 안식년을 앞두고 노상헌 목사는 담임인 홍정길 목사를 찾아갔다. “역량이 부족해서 상담을 더는 못하겠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그의 말에 홍정길 목사는 “하려면 제대로 하라”며 유학을 권했다. 6년 걸리는 임상심리학 박사 과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중독 없는 사람 없습니다”

노 목사 자신도 ‘공부를 즐기는 스타일’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보니 6년 걸리는 과정을 5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1년간의 병원실습까지 모두 마친 뒤 동기들은 교수가 되어 대학에 가거나, 치료 현장으로 향했지만, 노 목사는 다시 목회지로 돌아왔다.

공부할 때도 심리학과 크리스천의 삶이 무슨 관계인지가 노 목사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것이 ‘중독’이었다. 박사 논문도 이와 관련한 주제를 잡았다. 노 목사는 특히 한국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중독의 문제에 대해 깊이 관찰했다.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서울의대 가면 연예인하고 결혼한다’고 말하곤 하죠. 그런데 이 말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공하면 돈과 권력, 성까지 거머쥘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가르치고 있는 겁니다. 장원급제하면 권력과 돈과 성을 거머쥐던 유교사회의 관습이 지금까지도 뿌리 깊게 박혀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물리적이고 상대적인 것들에 환호하며 남들과 비교하는 것으로 자아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영성은 내면적입니다. 보이질 않죠. 내면이 텅 비어있으니 자꾸 외적인 것으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려고 애를 씁니다. 여기에 중독의 뿌리가 있습니다. 중독치료와 영성은 굉장히 밀접합니다. 중독자들의 특징 가운데 자기감정에 진솔하지 못하다는 것이 있는데, 자기감정과 단절되면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는 신앙생활도 진짜가 아닌 외식적인 성향을 나타냅니다. 오랜 기간 예수를 믿었어도 내면은 공허하죠, 신앙생활 자체도 짐이 되고, 자꾸만 이탈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런 문제는 목회자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노 목사 자신도 ‘중독’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연구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었다.

“저 또한 불우한 어린 시절에서 기인한 지독한 ‘인정중독’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늘 불안해하고, ‘내가 아닌 삶’을 살려고 애쓰고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그랬던 거죠. 제가 가진 문제를 중독자들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점이라면 그들의 중독은 역기능적이고, 제 것은 사회가 칭찬하고 옹호하는 중독일 뿐, 뿌리는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긴 과정을 통해 저를 치유하시고, 저뿐 아니라 남을 도우라고 부르셨음을 깨닫게 됐죠.”

 

 

중독과 이별하는 법

노 목사는 지금도 일주일에 최소 다섯 케이스는 꼭 진행할 만큼, 꾸준히 환자들을 만나고 있다. 그를 찾아오는 이들은 비기독교인뿐만 아니라 교회 중직자, 목회자까지 다양하다. 일반 임상심리 치료에서 중독을 심리와 신체 문제로만 접근하는 것이 보통인 반면, 노 목사는 영적인 접근에 강조점을 둔다.

교회 개척 초기 인근 주민인 도박 중독 환자를 치유한 경험은 잊지 못할 에피소드다. 담임 목사가 중독 치료를 전공했다는 주보 내용을 보고 찾아온 것이었다. 한때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잘 나갔지만,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남성이었다. 집까지 다 날린 상황에서도 아내에게 하루에 만 원을 받아 종일 내기 바둑을 둘만큼 중증이었다.

“유명한 전문가들도 만났음에도 아직 못 고친 병을 내가 도울 수 있겠느냐고 솔직하게 말했더니 환자는 오히려 그 말에 신뢰감을 느끼더군요. 다른 전문가들은 ‘나만 따라오면 고쳐진다’고 자신했지만 고치지 못했다는 거죠. 임상심리 전문가로서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 외에는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하고 복음을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노 목사는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는 의료선교팀에 환자를 합류시켰다. 도박이 절대로 불가능한 환경으로 보내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하루에 50번씩 ‘나는 선교사입니다’하고 외치게 시켰다. 주변 선교팀원들에게도 혹시 이 사람이 ‘나는 사실 중독자’라고 할 때 ‘당신은 이유 불문하고 선교하러 가는 선교사’라고 해 달라고 미리 부탁을 해두었다.

노 목사의 계획대로 그 환자는 선교 기간, 단순한 봉사만 했음에도 자신을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는 원주민들에게서 뭉클함을 경험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인식이 ‘문제 덩어리’가 아닌 ‘선교사’로 변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그 환자는 선교지에 머물렀던 6개월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장기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하기도 했다.

노 목사는 이 사례를 소개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 발견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변화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는데 그때 나오는 호르몬인 ‘도파민’은 중독물질과 똑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독 환자가 훌륭한 치료에도 반복적으로 중독에 빠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성경적 방법들을 마련했다.

“새로운 신경회로를 계속해서 사용하면 중독 관련 신경회로는 소멸합니다. 뇌 구조의 신경학적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죠. 물론 시간은 많이 걸립니다. 감사한 것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깊은 관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중독 치료뿐 아니라 제자훈련으로도 이보다 좋은 것이 있을까요.”

노 목사는 이번 책 ‘중독과의 이별’을 시작으로 앞으로 6개월마다 중독과 관련한 책을 발간할 계획이다. 그리고 유튜브와 SNS를 통해 책의 내용을 더욱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콘텐츠를 함께 내보낼 방침이다. 오는 9월부터는 성경적 중독치유 과정인 ‘뉴라이프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총 8과로 구성된 4개 유닛이 32주 과정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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