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플에 관한 국가인권위의 판단은 위기이자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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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에 관한 국가인권위의 판단은 위기이자 기회
  • 이대성 목사
  • 승인 2021.06.1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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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 목사/연세대학교 교목실장
이대성 목사

기독교대학에서 채플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하는 경우 대체 과목을 개설하지 않으면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최근 판단에 대해 종교계와 교육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런 취지의 결정이 사실 기독교 중고등학교에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번 판단을 가장 우려스럽게 바라보는 쪽은 기독교대학들이다. 대부분의 기독교대학은 1998년 숭실대 채플에 관한 대법원 판례에 근거하여,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대학은 학생들이 학교 선택의 자유가 있으므로 채플 등 일정한 종교교육을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인권위가 대법원의 판례를 뒤집는 판단을 하여서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불안해할 수밖에 없다. 어떤 대학은 다음 학기 입학 요강에 채플이 필수라는 사실을 공지하기로 신속히 조치했고, 다른 대학은 채플 대체 과목을 운영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대부분의 기독교 대학들은 채플을 교회의 예배와 구별되는 형식으로 진행하기 위한 검토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응은 학생 대다수가 비기독교인인 점과 기독교대학이 공공영역이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언젠가는 취해야 할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에 대해 이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인권위의 판단 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현재 서열화되어 있는 대학의 왜곡된 구조에 근거해서 학생들이 실제적 학교 선택권이 없다고 전제하고 채플을 필수 과목으로 운영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근본적으로 왜곡된 대학 서열화의 구조를 바로 잡는 것이 학생들의 교육권과 종교의 자유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사립종립대학의 종교교육의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기독교대학이 최선을 다해 학생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교육 당국과 사회 전체가 왜곡된 대학 서열화의 구조를 바로잡아 학생들이 다양한 관심에 따라 자유롭게 대학을 선택할 수 있는 실제적 선택권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곡된 구조 때문에 생기는 피해에 대해 한쪽에서만 책임을 지라는 일방적인 판단은 분명 문제가 있다. 사립대학이 각각 고유한 정체성에 기반하여 특성화를 이루어 학생들이 다양한 관심에 따라 폭넓게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사회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한 변화이다.

한편, 이번 인권위의 결정은 기독교학교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면도 있다. 인권위 는 종파교육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명했지만 교양과목으로서의 “종교지식” 교육은 필수과목으로 운영해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종교지식 교육은 우선 종교 일반과 개별 종교의 내용과 역사에 관한 것이 되겠지만(종교학적 종교교육) 조금 확대해서 생각해보면 지정의(知情意)와 함께 통전적 인격의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종교성(영성,초월성)에 관한 교육(종교성 교육)도 포함할 수 있다. 채플이 지금까지 종파교육에 치중해 있었다면 종교지식의 측면도 포함하도록 변화를 시도한다면 기독교학교의 영향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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