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울 때 기술이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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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울 때 기술이 필요한가
  • 정석준 목사
  • 승인 2021.06.0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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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이 어딜 덤벼” 욕심 사납게 형을 대적하여 싸움을 걸다가 절로 기세에 눌려 자세를 낮추고 몸을 사릴 때 들었던 음성이다. 

엄마의 도움을 요청하듯 슬픈 얼굴을 하고서야, 곁에 내편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는다. 똑똑하고, 심부름 잘하고, 일 잘하고, 아버지 칭찬을 한 몸에 받아드리면서 버릇은 점점 더 없어지고 안하무인이었다. 그러나 작고 연약하며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드러나면서 객기는 저절로 수그러들었다.

중국 진나라시대에 ‘백기’라는 명장이 있었다. 일생동안 단 한 차례도 패배한 적이 없는 상승불패의 장수이다. 그가 전쟁에서 죽인 적군의 목숨수가 무려 170만 정도라고 한다. 특히 조나라와의 ‘장평대전’에서 15세가 안된 병사 240명만 돌려보낸 뒤 나머지 40만 명의 병사들을 모두 ‘갱살’해 버린 사건은 치명적 평판을 갖는다. 후에 왕과의 갈등 속에 실각당하고 자살을 강요당하여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항복한 수십만의 병사들을 속여 구덩이에 파묻어 죽여 버렸으니 이것만으로도 나는 죽을 만 하다는 말을 남겼다.

로마 가톨릭교회에서 ‘레퀴엠(Req uiem)’이란 ‘죽은 이를 위한 미사(Mass for the dead)’때에 하나님께 죽은 이들의 영혼에게 영원한 안식주시기를 간구하며 연주하는 전례음악이 있다.(offered for the repose of the soul or souls of one or more deceased persons) ‘진혼곡’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한편 어떤 종교적 행위를 빙자해서 죽은 자를 위로한다는 것은 사실 살아남은 자의 교활한 자기 합리화일 수 있다. 영혼을 달랠 길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풀어내실 수 있지, 사람의 영역이 아니다.

사건의 진실을 가리는 일이 관심의 중심에 있던 시대는 지나간듯하다. 희한하고 해괴한 발상으로 경악하게하고 충격적인 것을 사람들은 욕망한다. 갈등을 부추기고 싸움을 붙여 전쟁을 하게해야 한다. 투쟁에서 이겨야 승리한다고 우긴다. 나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도 상관없다. 광포한 폭우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죽어있는 자신의 모습이 드러난 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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