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립학교의 ‘채플’은 기독교 교육의 마지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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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립학교의 ‘채플’은 기독교 교육의 마지노선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06.0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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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결정문으로 본 ‘대학 채플의 나아갈 길’
채플, 과거와 달리 ‘엄격한 종교예식’으로 판단
채플 필수 여부 모집요강에 반드시 명시해야
명지대학교는 기독대학으로서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따라 매년 교수들이 제자들의 발을 닦는 세족식 행사를 채플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명지대학교는 기독대학으로서 예수께서 몸소 보여주신 섬김의 본을 따라 매년 교수들이 제자들의 발을 닦는 세족식 행사를 채플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독교대학의 채플에 제동을 걸었다. 1998년 숭실대학교의 종립목적 종교교육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 이후 대학 채플은 학교의 자율에 맡겨져왔다. 그런데 인권위가 채플을 비기독교 학생의 인권침해로 보면서 상당한 혼란이 예상된다. 인권위 권고가 향후 소송 등에 영향을 미쳐 종립학교의 설립 목적을 뒤흔드는 악재가 되는 것은 아닌지 사립학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이번 인권위 결정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보았다.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최영애)가 광주보건대학교의 채플 수업에 대해 시정 권고를 내린 것은 지난 12일. 인권위는 ‘종교적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채플을 필수교양과목으로 지정하고 그 이수를 졸업요건으로 하면서도, 학생들의 동의권(거부권)을 인정하지 않고 어떠한 대체 과목도 제공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았다.

이 일이 알려지면서 여타 기독교계 사립대학들도 향후 학사일정에 영향을 받지 않을지 긴장하고 있다. 2010년 이른바 ‘강의석 사태’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돼 온 비기독교인 학생들의 채플 반대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지 않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더욱 유연한 채플 구성 시급

그렇다고 해서 지나친 염려는 금물이다. 이번 인권위 결정문에서 기독교사학들이 보완할 방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인권위는 광주보건대학의 채플을 ‘특정 종교의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교육’으로 보았다. 결정문에서 인권위는 종교교육을 크게 ‘교양을 목적으로 하는 종교 지식 교육’과 ‘종교의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종파 교육’으로 분류했다. 

인권위는 광주보건대학에 대해서는 “그 수업 내용을 보면 설교, 기도, 찬송, 성경봉독 등으로 구성되어 사실상 특정 기독교 교회의 예배행위와 다를 바 없다”며 “기독교 전파를 목적으로 하는 종파 교육으로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신 인권위는 “교양과목으로서의 종교 지식 교육은 공·사립을 불문하고 그 교육이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필수과목으로 운영한다고 해도 기본권 침해 여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이는 기독 대학들이 채플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진행하면서 일반 교회에서 진행하는 회중 예배와 엄격한 예식과는 차이를 두어야 함을 시사한다. 

종교 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운영할 수 있지만 채플이 교회에서 드리는 전통예배의 형식을 취하고 있을 때에는 비기독교인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이번 권고 대상이 된 광주보건대는 보건계열 학과로 이루어진 일반대학교다. 예장 통합에 소속된 학교법인이기에 기독교 정신으로 설립된 기독교 사립대학임을 학교 홈페이지 등에 밝히고 있다. 다만 기독교 관련 학과가 없는 일반대학교가 전통 예배 형식의 채플을 필수로 지정한 것은 과하다는 인권위의 해석이 내려진 것이다. 

결국 이번 인권위 권고로 인해서 기독교 사립대학들은 채플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한 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 한일장신대 총장 정장복 교수는 “채플은 예배와 기도회의 중간 정도의 개념으로 지나치게 엄숙한 기준을 제시하기보다는 비기독교인도 거부감 없이 참석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가져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많은 기독교대학들이 채플의 다변화를 고민하고 있다. 백석대 교목실장 공규석 목사는 “백석대 채플은 예배와 인문학 강좌의 중간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라고 소개하면서 “그러나 인문학 강좌를 채플이라 할 수는 없기에 복음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는 방법을 치열하게 연구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특히 백석대는 코로나 상황 속에서 크리스천 연예인이나 교내에 학생들에게 호감도가 높은 교수 등을 섭외해 이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나의 삶 별이 되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 학생들의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 목사는 “기독교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하게 추락한 상황에서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향후 1~2년이 캠퍼스 선교의 골든타임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라면서 “코로나가 끝나도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안일한 생각은 위험하다. 총체적 전략과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일찌감치 채플의 형식을 보다 유연하게 바꿔 학생들의 높은 호응을 받는 학교들도 있다. 명지대학교의 경우 지난 1999년부터 캠퍼스 내의 음악과 예능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모아 ‘채플 공연팀’을 구성했고, 이들을 중심으로 콘서트와 뮤지컬, 드라마 댄스 등의 다양한 공연 채플을 진행했다. 이 밖에도 영어로 진행되는 ‘영어 채플’, CCM을 중심으로 하는 ‘비전 채플’, 토크쇼 형식의 ‘이야기 채플’ 등 시대 흐름과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다양성을 추구해 왔다. 

그 결과 채플 과목에 대한 강의 평가가 높은 상승곡선을 이루게 됐다. 2000년 39.1%이던 ‘만족’ 지수가  2003년 65.8%로 증가했다. 이후 2010년 60.6%, 2017년 63.1%에 달하는 등 지속적으로 높은 호응을 얻었다. 명지대학교 교목 구제홍 목사는 “일반 학생이 70% 내외를 차지하는 비기독교 문화권의 한국의 기독교 대학의 채플은, 학생들의 대다수가 기독교 가정과 사회문화에서 성장한 서구기독교 문화권의 예배로서 채플이 아니라, 기독교 전인교육 수업으로서 채플로 성격을 전환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는 것이신학적으로도 타당하고 현실적으로도 효율적인 채플 운영이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입시요강·학칙 명시는 기본

인권위 권고문을 통해 대학들이 대비해야 할 것은 채플에 다변화 이외에 대학 입시 요강에서 ‘채플 필수 이수’에 대한 안내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2010년 이른바 ‘강의석 사태’에서 대법원이 “종교교육에 관해서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했는지 여부”를 중요한 판단 근거로 삼았던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반대로 기독 대학 채플의 손을 들어줬던 1998년 숭실대학교 사례에서도 대법원이 ‘학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대학은 헌법상 자치권이 부여되어 있으므로 (중략) 법률상 금지된 것이 아니라면 학사관리, 입학 및 졸업에 관한 사항이나 학교시설의 이용에 관한 사항 등을 학칙 등으로 제정할 수 있다”고 밝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은 기독 대학들이 채플을 필수과목으로 운영하면서 관련 사항을 입시 요강이나 학칙에 기재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도적 장치가 미비한 학교들은 세밀하고 구체적으로 보완해야 한다. 

공규석 목사는 “많은 학교들이 해당 내용을 이미 명시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욱 단단한 논리를 마련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제도적인 차원을 넘어서도 우리가 기독교 대학으로서 채플과 기독교 교육을 하는 이유를 더욱 명료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편 한국교회총연합은 지난 1일 성명에서 “인권위의 이번 권고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에 따라 종교적 건학이념을 위해 설립된 종교계 사립대학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기독교 대학임을 인식하고 스스로 선택하여 입학한 학생에 대해 학칙 위반을 방조하는 그릇된 행위”라고 비판했다. 지금 기독교계는 과거 인권위의 권고 조치가 정부 부처에 의해 수용된 사례도 적지 않은 만큼 ‘권고’라고 해서 가볍게 여기고 넘어가선 안 된다는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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