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는 나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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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나에게 달려있다
  • 김학중 목사
  • 승인 2021.06.01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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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에게 있었던 일이다. 정신없는 하루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필자는 뭔가를 마음먹는다. 그리고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를 바라보며 평소에 쓰지 않는 한 마디를 건넸다. “여보, 고마워!” 그리고는 ‘이 사람이 왜 이럴까’ 하는 표정을 짓는 아내에게서 도망치듯이, 쑥스럽게 방으로 들어갔다. 이게 뭐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한마디 건네는 것이 필자가 퇴근하면서 결심한 일이었다.

필자가 그렇게 하려고 결심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을 결심했던 날이 5월 21일, 즉 “부부의 날”이었기 때문이다. 굳이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한 이유는 널리 알려진 것처럼 ‘둘(2)이서 하나(1)가 되는 날’이라는 뜻을 담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결혼은 둘이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많은 커플이 결혼식장에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되도록, 평생 사랑하겠다’고 서약한다. 하지만 그 부부 중 많은 수가 그때의 서약을 지키지 못하지 갈등과 다툼을 겪고 있고, 그중 일부는 남남이 되는 쪽을 선택하기도 한다.

서로 사랑해서, 혹은 이제부터 사랑하겠다고 결심하고 부부가 되었는데, 그때의 결심은 어디로 가고 서로 싸우고 갈등하며 다투는 것일까? 그 이유는 자신을 돌아보면 답이 나온다. 

우리는 먼저 본능적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기대한다. 내 옆에 있는 배우자도 같은 마음을 갖고 있음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채, 우리는 서로 받기만을 기대한다. 그러다 내 기대대로 되지 않으면, 서로를 원망하고 비난하다가 체념하고 거리를 둔다. 이러한 과정을 대개는 이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한다. ‘성격 차이’, 쉽게 말해서 “너와 나는 다른 것 같아.”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면, 어떻게 하면 될까? 맞춰가면 된다. 맞춰가면서 서로 신뢰하도록 만들면 된다. 하지만 적잖은 부부가 맞춰가기보다는, 그냥 다르다고 체념하고 서로를 불신하며 거리를 두다가 헤어지는 편을 선택한다. 왜 그럴까? 그러려면 내가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부부간의 신뢰는 나의 변화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만큼 먼저 그 기대에 맞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참한 아내를 원하면 내가 먼저 참한 남편이 되어야 한다. 좋은 남편을 원한다면 내가 먼저 남편에게 잘하는 아내가 되면 된다.

교회도 그렇다. 교회를 보는 시선이 점점 싸늘해지고 있다. 올해 초에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전년 대비 무려 10%나 떨어졌다. 그저 일부 사람들의 의견이라고 치부하면 될까? 아니다. 현장에 나가보면, 다섯 명 중 한 명이 교회를 신뢰한다고 대답한 것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질 정도이고, 똑같이 잘못해도 ‘교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더욱 비난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전도가 되고는 있지만, 오히려 교회를 이탈하는 숫자가 더 많다. 특별히 학생들과 젊은이들의 이탈은 심각해서, 교회학교와 청년부가 초토화되었다.

이를 두고 그저 ‘우리는 세상과 달라, 그냥 성격 차이일 뿐이야’라고 외치면 될까? 아니다. 우리의 사고를 바꿔서 세상의 신뢰를 다시 얻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친히 인간이 되셔서 우리에게 다가오셨기 때문이다. 기대하기 전에 먼저 세상의 기대에 맞추어야 한다. 복음과 성경 빼고는, 심지어 예배 순서까지도 영점에서 점검할 때가 왔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이제라도 세상의 눈높이에 맞추어보라. 그들이 우리를 믿으면, 전도는 더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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