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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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를 생각한다
  • 주도홍 박사
  • 승인 2021.05.18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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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박사/전 백석대 부총장, 총신대 초빙교수

최근 일 년 남은 문재인 정부 장관후보자 면면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인다.

솔직히 아직도 나는 청백리를 사모한다. 명예를 떠나 좀 물질에서 초연하고 진실하며 나라와 백성을 충심으로 사랑하는 그런 사람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한국의 성자요 슈바이처로 알려진 고 장기려 박사를 떠올린다.

외과 의사 내 친구는 장기려 박사와 같이 부산복음병원에서 한동안 근무했다. 대화 중 장기려 박사에 관해 두 가지를 말했다.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장 박사가 김일성 맹장수술을 집도하면서, 본인은 기도하지 않고 수술하지 않는다고 하니, 김일성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함께 기도한 후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를 친구도 장 박사께 물으니, 장 박사님은 손사래를 치며 쓸데 없는 이야기라고 웃으셨다는 것이다. 그게 뭐가 대단하냐는 식이었고, 장 박사는 본인 이야기를 극도로 아끼셨다고 한다. 물론 장 박사는 수술 전 늘 기도로 시작하였다.

또 한 가지는 의사들이 환자를 가족처럼 대하라고 교훈했다는 것이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의료실수를 하게 되는데, 그럴 경우 요새처럼 법정소송까지 이르는 불상사는 없다는 것이다. 의사가 정성을 다하고 사랑을 다해서 가족에게 하듯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인지상정 어떻게 하겠는가!

나도 다른 한 가지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장 박사가 복음병원 원장을 하면서, 가난한 환자가 병원비를 못내 퇴원을 못할 때, 병원 뒷문을 열어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런 일이 다반사였다 하니, 병원경영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장기려 박사가 소천하신 후, 나는 부산 송도 고신대 캠퍼스를 방문하여 그가 거주하시던 복음병원 옥탑방 관사에 들린 적이 있다. 그가 쓰던 가재도구를 치우지 않은 채 그대로 두고 있었는데, 25평 정도로 자그마한 아파트로 살림살이는 여관방처럼 단촐했다. 북에 두고온 아내를 그리며 독신으로 일생을 사셨던 그의 체취와 청빈, 고독과 단순함이 느껴졌다. 아니 그의 단아한 모습처럼 집안은 단정했다. 천국여행 떠난 주인이 곧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친구는 청십자의 설립자인 장기려야말로 작은 그리스도이며, 성자요, 진정한 학자며 의사로 평가했다. 그분과 함께한 몇년의 병원근무와 성경공부를 친구는 행운으로 기억하며 감사했다. 장기려가 평소에 늘 좋아했던 찬송도 친구는 불렀으니, “주를 앙모하는 자”였는데, 후렴 중 “늘 강건하여라”가 다가온다.

“주를 앙모하는 자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모든 싸움 이기고 근심 걱정 벗은 후 올라가 올라가 독수리 같이 (후렴)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주 앙모하는 자 늘 강건하리라!”

춘원 이광수의 소설 ‘사랑’의 주인공 바보 의사 안빈도 장기려가 모델이었다고 저자가 밝히는데도, 정작 장기려 본인은 아니라고 무시하였다. “나는 그만큼 훌륭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장기려는 모른 체한 것으로 보는데, 그만큼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이 시대 진실한 사람을 찾을 수 없는데, 장기려야말로 이 시대의 사표, 다시 돌아봐야 할 소중한 인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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