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손끝으로 전하는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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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손끝으로 전하는 감동
  • 한현구 기자
  • 승인 2021.04.29 17: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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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시청각장애인 이야기 그린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 스틸컷

무지는 죄일까. 딱 잘라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그러나 이것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무지는 때때로 누군가에게 아픔이 된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장애인들의 경우가 그렇다.

시청각장애인은 유명한 헬렌 켈러와 같이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함께 갖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헬렌 켈러는 알아도 주변에 시청각장애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음은 거의 모른다. 심지어 이들을 규정하는 법조차 없다. 장애인복지법에는 시각, 청각, 지체 등 15가지 장애의 종류를 규정하고 있지만 시청각장애는 찾아볼 수 없다. 법이 마련돼 있지 않으니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찾기 힘들다. 단지 국내 시청각장애인이 5천 명에서 1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만 할 뿐이다.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의 주인공 7살 소녀 은혜는 시청각장애인이다. 영화는 은혜를 통해 시청각장애인이 살아가야 하는 현실을 그린다. 동시에 시청각장애를 마주한 우리들의 무지한 시선도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조그만 연예기획사에서 일하는 재식은 돈 말곤 무서울 게 없는 인간이다. 기획사라고는 하지만 동네 조그만 행사장을 전전하며 푼돈을 끌어 모으는 것이 전부다. 그마저도 빚을 갚느라 본인을 위해 돈을 모을 틈은 거의 없는 신세다.

그런데 같이 일하던 직원 지영이 갑작스레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수습을 위해 지영의 집을 찾은 재식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녀의 어린 딸 은혜와 전세 보증금 8천만 원. 곧 계약이 종료되면 전세 보증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재식의 눈이 번쩍 뜨인다. 보증금을 위해 아이의 아빠라고 속인 재식과 은혜의 기묘한 동행이 시작된다.

익숙한 듯 벽을 더듬어 테이블에 있는 빵을 찾아 배를 채우기를 반복하는 은혜. 그 모습을 보며 은혜가 시각장애가 있음을 재식은 알게 된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한 점이 많다. 아무리 말을 걸어도 반응이 없고 아이는 제대로 된 단어 한마디를 뱉질 않는다. 집을 찾아온 집주인의 말에 겨우 은혜가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음을 눈치 챈다.

처음엔 은혜를 보증금을 받기 위한 수단이자 짐처럼 취급했던 재식은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따르는 은혜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마지막에는 입양기관에 맡기고 고개를 돌리려다 은혜가 눈에 밟혀 발걸음을 돌린다.

일반인들이 일상에서 시청각장애인을 만날 일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그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어떤 불편함을 겪고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도 잘 알지 못한다.

재식과 은혜가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지나가는 트럭이 맞은편 신호등을 바라보고 있던 재식의 시야를 모두 가린다. 육안으로는 신호가 바뀐 것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 다행히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방송이 켜지며 신호가 바뀐 것을 안내하고, 주변 사람들도 그 소리를 듣고 발을 뗀다. 하지만 그 속에서 미동하지 않는 단 한 명의 사람이 있다. 시각적인 정보도, 청각적인 정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은혜다.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규정이 법으로 마련돼 있지 않다보니 시청각장애인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영화에서는 이런 안타까운 현실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은혜를 집안에만 놔둘 수 없었던 재식은 장애인 교육기관을 찾아가지만 기관에도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 각각을 위한 교육과정이 존재할 뿐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은 전무하다.

은혜를 위해 시각장애인 교육과 청각장애인 교육을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조치해주겠다는 선생에게 재식은 수화도 볼 수 없고 소리도 들을 수 없는데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 선생은 법이 없어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교육은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며 말끝을 흐린다.

영화는 재식과 은혜가 장애를 넘어 서로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특히 장애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다시피 했던 재식이 순수한 은혜로 인해 변해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재식 역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진구가 참여했다. 정서연 양은 은혜 역으로 분해 시청각장애인이라는 쉽지 않은 역할을 완벽히 표현하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시청각장애인의 삶을 보다 정확하게 그려내기 위해 밀알복지재단이 자문을 맡았다. 영화는 오는 512일 전국 극장에서 개봉한다.

연출을 맡은 이창원 감독은 지난 27일 열린 시사회에서 장애를 특별히 다루려기 보단 인간이 살아가며 겪는 소통의 어려움을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었다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사랑과 배려를 가지면 기적적인 만남이 이뤄지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동연출 권성모 감독은 시청각장애에 대한 제도적 장치가 미흡하고 정보가 부족해 이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영화를 통해 그분들이 사회에 나와 우리와 같이 소통하며 지낼 수 있는 장치가 하루 빨리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한편, 미국의 경우 1960년대 일명 헬렌켈러법이 만들어져 시청각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고 있다. 법에 따라 헬렌켈러 국립센터가 운영돼 시청각장애인들은 센터에서 의사소통과 자립생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일본은 수화통역사를 집중 양성하고 시청각장애인들의 자조 모임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시청각장애인 지원의 근간이 될 법과 제도가 전무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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