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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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때
  • 김인영 장로
  • 승인 2021.04.06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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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그것도 농익은 봄. 눈이 즐겁다. 보는 곳마다 생명이 잡힌다.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 은혜가 자연에 가득하다. 의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는 은혜이다. 자연의 새 단장은 새 생명 탄생과 부활의 증표와 같다. 

교회는 이맘 때면 부활절을 기념한다. 대부분 금식 등 특별기도회를 가지며 경건의 시간을 보낸다. 갯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던 주님, 빌라도 앞에 선 주님. 모멸과 무시당함 끝에 비아 돌로로사 길을 가신 그, 십자가에 달리셔서 극한의 고통을 겪고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부르짖던 주님을 묵상한다. 

당시의 현실에서 주님은 이스라엘의 교권에 로마의 권력에 무기력하게 돌아가셨다. 완전한 패배요 악의 세력의 완벽한 승리이다.

그러나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해 모든 사망과 저주, 어둠의 권세를 이기셨다. 인류역사상 최대의 반전이요 모든 신앙인의 영원한 지표이다. 절대 공의요 절대 사랑, 절대 희생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면 내 죄와 허물을 인식한다. 고로 새 출발이 가능하다. 잘못된 것을 버리고 새 것을 얻으며 끊임없는 새 출발이 가능하다. 

현재의 실패가 아무리 크고 고난이 극심해도 십자가를 바라보며 견디고 힘을 얻는다. 소망이 생기고 미래가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는 비결이다. 이 비결을 이 사회가 누구보다도 힘센 이들이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라 상황이 총체적으로 나쁘다.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수많은 국내문제의 정책 실패를 대부분 언급한다. 국제무대에서의 존재감 하락이나, 한미일 동맹의 불안정 기류에 반해 북한과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구애와 굴종식 태도 등등. 한결같이 지적하는 문제들이다.

정책 실패보다 국민들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힘센 이들의 두 얼굴 모습일 것이다. 겉 다르고 속 다른 이들의 위선, 권력을 이용한 챙기기와 배 불리기로 드러난 민낯들. 그렇게 확인된 공정과 정의 깃발의 허망함.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과 배신감의 상처는 더 깊다. 

그러나 신앙적 관점에서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사회가 분노와 미움, 불신이 골수에까지 이른다는 것이다. 용서와 관용, 이해와 사랑까지는 어렵다 해도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양보와 타협의 지혜가 스며들 공간이 바늘 구멍만 해 보인다는 것이다. 

편 가르기다. 내 편이 아니면 무조건 악마화 한다. 상대를 박멸하려 한다. 정치는 실종되고 언어의 품격은 저급해진다. 전체주의의 섬뜩함이 느껴진다. 문제가 생겨도 잘못을 인정하기 보다는 목소리를 더 크게 해 우기고 나선다. 억지 명분을 만들어 권력을 가차 없이 휘두른다. 그러다가 상식과 여론이 감당이 안 될 정도가 되면 마지못해 사과한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이런 상황은 반복되고. 미래는 더 어두워진다.

이 시점에서 개인이나 교회나 나라나 총체적으로 자기반성과 내적 성찰이 절실해 보인다. 회개다. 십자가 바라봄이다. 네 탓이 아닌 내 탓 살피기다. 잘못을 인식하지 못하고 죄를 죄로 인식하지 못하면 정말 불치의 병이다. 이런 상태를 성경은 이리 표현한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2~3) ” 
그래서 더욱 부활에 대한 소망과 기도가 간절해진다.

노원창일교회·前 KBS 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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