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넷째주 가정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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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넷째주 가정예배
  • 운영자
  • 승인 2021.03.2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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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 겟세마네 동산에서 / 마태복음 26:36~46 / 찬송: 403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고민하시고 슬퍼하셨습니다.(38)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고민과 슬픔, 그리고 고독해하신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진실로 고독하셨고 슬퍼하셨고 고민하셨습니다. 주님이 이 같이 고민하고 슬퍼하신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류의 죄악을 한 몸에 지니시고 십자가를 지시려는 고민과 슬픔이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엎드려 기도하셨습니다.(39)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라고 마지막 당부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사탄의 최후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사탄은 처음 인간인 아담과 하와에게 접근해서 유혹하여 타락시켰습니다. 주님이 겪으신 최초의 유혹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가슴에, 우리 교회에, 여러분의 가정에, 이 예수님을 영접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내 가슴으로 뜨겁게 믿어야 합니다. ‘그럴 것이다라고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그렇게 생각지 말고 이 사실이 믿어져서 십자가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물이 쏟아지는 감동과 감격과 고난의 십자가를 체험하는 고난주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기도

우릴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어떠한 유혹이 와도 깨어 기도함으로 승리 할 수 있게 하소서!

윤양표 목사 / 경성교회

 

화요일 / 어떻게 시험에 이길 수 있나! / 마태복음 4:1~11 / 찬송: 342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천국은 아닙니다. 사단이 권세를 잡은 이 세상에서는 어쩔 수 없이 수많은 유혹과 시험에 빠질 수 있는 요인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시험에 들게 합니다.

그럼 이런 시험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첫째, 성령에 이끌려야 합니다. 예수님도 성령에 이끌려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기도하고 봉사할 때 성령이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한 자가 모든 것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둘째, 주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이 모든 시험을 이기셨기에 주님만 의지하면 우리도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린 흙으로 창조된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무리 강한 흙이라도 깨집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의지하여 주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셋째, 감사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는 하나님의 뜻은 사실 사단을 이기기 위함입니다.

넷째, 마귀와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의 시험은 지속적입니다. 예수님은 찾아온 마귀의 시험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쉽게 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과 환경과 너무 쉽게 타협합니다. 그러면 결코 승리의 기쁨은 없습니다.

오늘의 기도

어떤 시험에도 이길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예배 공동체가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김만열 목사 / 청주영안교회

 

수요일 / 시험을 통한 축복 / 출애굽기 16:19~21 / 찬송: 368

시험은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마음을 알고 오늘 본문에 나오는 또 다른 시험인 만나의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만나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40년 광야 생활동안 양식을 얻기 위해서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씨를 뿌린 적도 없고 가꾼 적도 없고 추수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만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주신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만나를 보고, 만나를 먹을 때마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만나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지 그 여부를 알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만나는 그 날 필요한 양만큼 거두라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간단한 말씀이었습니다. 아침마다 그 날 먹을 양만큼 거두고, 육일에는 다음날 내리지 않는 줄 알고 이틀 분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간단한 명령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 이렇게도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일까요? 하나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생각이 불순종을 낳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 순종은 곧 우리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언제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서 복 받는 인생으로 살게 하소서.

유영삼 목사 / 영광교회

 

목요일 / 예수님의 은혜와 평강으로 승리하라 / 요한계시록 1:4~5 / 찬송: 412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인데 호의, 친절, 미덕, 사은, 감사, 사의, 즐거움, 돌봄, 감사, 보답, 은총, 선함, 아름다움 등으로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의 결과로 십자가를 통하여 구체화되었으며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1:7, 고전 1:3), 복음을 통하여 나타나고(4:22, 14:3), 하나님나라 확장(11:23)을 위하여 성도들이 믿음으로 받아야 하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평강은 헬라어로 에이레네인데. 구약시대의 평강은 끊임없이 이어지던 전쟁의 종식으로 오는 결과로서 복된 번영을 가져오도록 법과 질서가 유지되는 상태를 의미하지만 신약시대의 평강(에이레네)은 안식, 평온, 평안, 평화, 평강, 안녕, 안전, 복리, 성공, 성취, 염려 없음, 믿음직함, , 좋은 것, 구원 등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서 은혜나 평강은 사람의 수단과 방법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행위의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지는 완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코로나19 등으로 인하여 고통스러운 자리에 있다할지라도 낙심하지 마시고 예수님이 주시는 세상을 이기고 근심 걱정 없는 천국을 소유할 소망이 넘치는 평안과 풍성한 은혜 안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의 기도

비록 감당할 수 없는 환난과 시련 가운데 있다할 지라고 주님이 주시는 평강과 은혜를 누림으로 승리하게 하시옵소서.

온재천 목사 / 광혜교회

 

금요일 / 의무를 기억하는 인생 / 요한복음 19:25~27 / 찬송: 415

여성들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동등한 인격적 존재라는 사실과 어린아이도 하나님과 어른들로부터 마땅히 사랑을 받을 인격체임을 인식하기까지 인류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여성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는 자기 모친의 슬픔과 눈물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어머니의 안위를 준비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도 요한에게 어머니를 돌보라고 아주 부드러운 음성으로 부탁하였습니다. 정말로 고통스러운 그 순간에 예수께서 자신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지금까지 자신을 섬겨왔던 연약한 여성을, 울고 있는 슬픈 여성들을 보셨습니다. 마음 속에 있던 희망이 위축되면서 영혼까지도 고통에 잠긴 모친을 예수께서 물끄러미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모친의 신앙이 아직은 부족하고 완전하게 깨닫지 못하였음을 알았지만, 보살핌과 섬김이 필요한 여성임을 십자가 위에서 기억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에게 모친을 부탁합니다. 예수께서 사회 전통적 방식의 모친 섬김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양한 면에서 신앙의 선구자이셨습니다. 특히 여성을 섬기고 돌보는 태도에서 사회 전통을 초월한 방식이었습니다. 장남 예수가 요한에게 하는 말, ‘보라! 네 어머니다!’라는 친절한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의 마음과 정신을 따라잡기에는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지만, 우리는 예수 마음과 섬김을 지속적으로 배워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기도

예수님을 배우고 그리스도안에 살게 하소서.

정석동 목사 / 창성교회

 

토요일 / 점과 흠 / 베드로후서 2:10~22 / 찬송: 414

교만하고 당돌한 정욕대로 사는 거짓 교사들은 심판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강조하면서(19) 예수님의 권위를 부정하고 음란으로 육체의 정욕을 자극하였습니다.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분은 오직예수님(3:36) 한분뿐이시며 그 무엇으로도 우리는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겸손하고 절제 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에 통제 받지 않는 거짓 교사들은 도살당하기 위해 존재하는 짐승처럼 더러운 본능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굳세지 않은 자들을 속이고 유혹 합니다. 그리스도인인 듯 보이지만 사실은 거룩한 공동체(벧후 3:14)를 더럽히는 점과 흠인 것입니다.

거짓교사들도 한 때는 바른 길을 걸었고, 예수 그리스도와 의의 도를 알았고 거룩한 명령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더러운 육체의 정욕에 미혹을 당했습니다. 내 명예와 부를 챙기려는 유혹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드물 것 입니다. 거창하고 신선해 보이는 거짓 교사들의 주장은 텅 빈 항아리처럼 알맹이 없는 껍데기뿐인 거짓 진리에 불과하며,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허탄한 자랑과 간교한 속임수로 오래가지 못할 것 입니다. 토한 곳으로 돌아가는 개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 돼지처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과 은혜를 저버리는 자가 되지 말고 더욱 예수그리스도를 힘써 앎으로 끝까지 주님 앞에 점도 흠도 없는 믿음의 승리자가 됩시다.

오늘의 기도

거짓의 미혹함을 이기고 주님 앞에 점도 흠도 없는 거룩함을 이루는 삶이 되게 하소서.

서기성 목사 / 새희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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