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교사역 마친 후 정당 정치인으로 활동
“주님은 통일을 준비하도록 저를 부르셨습니다”
작은교회 위한 4차 재난지원금 청원운동 추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10월 28일 최고위원회 의결을 거쳐 정책위원회 부의장으로 벧엘금식기도원 원목이자 UN 제5사무국의 한반도설치위원장 윤영석 목사(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연합회 상임회장)를 임명했다. 정당의 정책위원회는 당의 정책을 입안하고 심의하는 핵심 집행기관이자, 국정과제 추진과 정책개발에 필요한 사항을 조사, 연구 심의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기구 공식 부의장으로 목회자가 임명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윤영석 목사는 코로나19 때문에 위기를 겪고 있지만 정부의 재난지원금에서 소외된 미자립 종교시설도 지원 받을 수 있도록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한국임대종교총연합회를 결성해 국무총리실에 청원서까지 접수했다. 어쩌면 여당에 소속된 당직자로서 상당한 부담이 되는 행보이지만,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겪는 어려움을 지켜본 윤 목사는 현재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돈을 모았지만 요나처럼 회개했어요”
윤영석 목사는 스무 살 나이에 고향 섬을 찾아온 맹인 침술사로부터 복음을 들었다. 때로는 세상이 좋아 하나님을 떠나기도 했지만, 늘 하나님께서는 그를 다시 부르셨고 그 역시 부름에 순종하며 믿음을 회복했다.
굶는 날이 더 많았던 신학생 시절 연단을 거쳐 윤 목사는 중국과 국교가 수교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1995년 중국 심양에서 선교 사역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목단강대학 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대우도 아주 좋은 편이었다. 하얼빈대학 사범대학에 처음 한국어과가 개설되면서 그곳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정말 재미있게 가르치고 있는데 친구 목사가 교수 그만두고 영혼을 구원해야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다그치는 겁니다. 당장 한국으로 와서 공식 파송까지 해주겠다고요. 그렇게 선교사역을 시작했는데 IMF가 찾아왔고 중국으로 모든 지원이 끊겨버린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 딱 3년만 돈을 벌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제 눈에 중국 땅은 돈으로 보이는 미개척지였거든요.”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물건을 가지고 팔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다른 업체보다 직원들도 잘 대우해주었고 친절한 사업방식에 중국인들이 매료되었다. 백화점 한층 전체를 임대해 운영할 정도로 성장해 말 그래도 돈을 긁다시피 했다. 한인 사회에도 명성이 자자했다.
재정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지역 교회들을 지원했고, 당국과 신뢰가 쌓여서 선교사들의 비자문제도 해결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 3년이 지났는데 사업을 접을 수가 있나요. 어느 날 강도 3명이 집에 숨어들어 총과 칼로 죽이겠다고 위협하면서 돈을 강탈해갔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못하는데 4차선 도로 옆에서 2천만원 현찰 가방을 다시 강도들이 빼앗아 가는 겁니다. 또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목숨을 취할 것 같았습니다. 요나가 회개하는 심정처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모든 사업을 처분했습니다.”
“강단에서 복음 전하기도 바쁩니다”
그렇게 국내에 들어와 오산리기도원에서 삼일을 금식하며 새 사역을 위해 기도하고 있는데 당시 새천년민주당에서 종교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때가 공식적으로 정당과 연결되는 계기였다.
그러나 정당 정치인과 인연은 그보다 앞서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에서 온 어느 목사님을 따라 당시 평민당 김대중 총재 자택에 가서 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습니다. 우연히 따라갔는데 다녀온 이후로 사복 경찰이 계속 따라다니기도 했죠. 그 때 인연으로 창천감리교회 장로였던 이희호 여사께서 종교환경위원장으로 저를 추천하셨던 겁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는 통일정책위원장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정당 내 중책을 맡은 경력이지만, 윤영석 목사는 자신의 비전이 정치는 아니라고 분명 선을 그었다. 그는 “정치하는 것과 정치인은 다르다. 누군가는 저를 정치하는 목사라고 하지만 급여 받는 정치인이라고 보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다”면서 “무엇보다 강단에서 설교할 때에는 정치색은 전혀 없다. 오직 복음만 전하고 예수님을 전하기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실제 그를 아는 지인들은 사석에서 절대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는 종교와 정치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전 실천가로
윤영석 목사는 철저하게 복음과 선교에 대해 열정을 피력한다. 동시에 국가와 민족을 위한 사회적 소명을 잘 실천해가고 있다. 17대 대통령 선거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베다니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개척 목회를 열심히 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부르시는 계기가 있었다. 2013년 기도하는 환상 가운데 굶주리는 북한 동포를 위해, 통일을 위해 일할 것을 요청하셨다.
윤 목사는 강렬한 신앙적 체험 이후 곧이어 입국해서는 대북 인도적 지원단체 ‘가자 통일로’를 설립했다. 매주 목요일이면 경기도 포천 벧엘금식기도원에서 통일과 북한 복음화를 위한 기도회가 열린다. 원목으로도 사역하는 윤 목사는 이곳에서 매주 말씀을 인도하고 있다. 이 때 드려진 헌금으로 북한 내 장애아동을 위한 물품을 중국을 통해 전달했다.
윤 목사는 “주님은 북한 사람들도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무얼 하고 있느냐고 소리를 치셨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을 막아주시며 우리에게 기회를 주고 계신다”며 “인도적 지원을 할 때에는 소리 없이 해야 하지만 최근 정부 부처의 대북정책에는 아쉬움이 있다”고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또 윤 목사가 추진하고 있는 목표는 UN 제5사무국을 한반도 DMZ에 설치하는 것이다. (재)UN제5사무국한반도설치위원장도 맡고 있는 윤 목사는 “뉴욕, 제네바, 오스트리아, 케냐에 이어 아시아 최초로 유엔 사무국을 DMZ에 설치한다면 한반도 전쟁을 억지하는 효과는 물론, 경제 여건 구축과 생태환경 조성으로 통일을 향한 커다란 전진이 가능할 것”이라고 희망을 제시했다.
실제 윤 목사는 아시아권에도 사무국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면서 매년 청원서를 접수하며 인도네시아 등 다른 아시아 국가와 경쟁하고 있다.
“작은 교회도 재난지원금 받아야”
최근 윤영석 목사는 미자립 종교시설도 임대 소상공인과 같이 재난지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힘쓰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회에 대한 거부감이 큰 사람들로부터 날선 비판들이 상당했지만, 윤 목사는 이미 당내 정책위원회 회의에서 여러 차례 제안까지 했다.
“교회 이야기는 하지도 말라며 난리가 났지요. 하지만 작은 교회의 종교인들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방역당국의 지침을 충실히 따랐지만 피해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종교인들을 도외시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임대종교 시설활동의 존립은 물론 생활까지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임대종교총연합회 명의로 3월 동안 4차 재난지원금을 위한 연대 서명을 받았고, 약 2천명 가까이 참여했다. 지난 16일에는 국무총리실에 공식 청원서도 접수했다.
오는 29일 사단법인 대한기독교혁신총연합회도 출범한다. 연합회 산하에는 한국개척교회살리기운동본부가 꾸려져 재난지원금을 위한 노력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게 된다.
“아직 추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자립 교회 목사님들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당정 간 협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개척교회가 무너지면 한국교회 근간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정종이 분리된 상황에서 유독 교회 예배를 통제하고 규제하는 바람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작은 교회를 위해 누구도 노력하지 않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윤영석 목사는 지금 하나님께서 작은 교회를 위해 맡겨주신 소명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