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그놈의 땅 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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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놈의 땅 타령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1.03.19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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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이들과 함께 마실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네 부동산 앞에 붙은 문구에 눈이 갔다. 대략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것은 땅뿐이더라”하는 식이었다.

정말 그럴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기자가 살고 있는 신도시는 그냥 흙천지였다. 오죽하면 이 지역 토박이들은 “OO동은 사람 사는 곳 아니다”라고 했을까. 이 지역뿐일까. 부동산 개발이 있는 곳은 순식간에 변한다. 아주 상식적인 내용인데도 저런 문구를 쓴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 안에 있는 ‘땅’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려는 목적이 아닌가 싶다.

땅 땅 땅. 뉴스만 틀면 온통 땅 얘기다. LH 직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 금싸라기가 될 땅을 미리 구입하고, 그곳에 온갖 나무들을 심어 엄청난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LH의 어떤 직원은 익명을 보장하는 게시판에 “나는 지금 잘려도 땅 수익이 회사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다”는 식의 글을 올려 공분을 샀다. 곱씹을수록 열 받는 말이지만 노동의 가치가 땅에 비해 얼마나 절하되어 있는지를 절실히 느끼게 하는 좋은 예다.

마실을 다 마치고 집 앞에 도착할 즈음 옆 아파트 담벼락에 현수막이 걸려 있다. “우리 재산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부동산은 더 이상 이용하지 않습니다. OO아파트의 가치는 입주민이 정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아마도 이 아파트 가격을 주변 부동산에서 낮게 책정한 데 대한 불만인 것 같다. 이 사람들은 시장가격이라는 개념도 모르나 싶다가도 애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사람들도 피해자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사회였다면 애초에 이런 무가치한 분쟁도 없었을 텐데. 아차. 임대주택에 사는 입장에서 누굴 걱정하나. 당장 계약기간이 끝나면 천정부지와도 같은 전세금을 어디서 대출이나 받을 수 있을지 모르는데 말이다. 크리스천은 이럴 때 하늘밖에 볼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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