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볼라노이’의 희생, 사망률 감소와 이교도의 개종 이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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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볼라노이’의 희생, 사망률 감소와 이교도의 개종 이끌어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1.03.16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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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 기독교와 사회문제 : 전염병(6)

역병이 창궐하는 시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감염될 수 있고 또 죽음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형제 사랑을 실천했는데 이는 이교도들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말이 ‘파라볼라노이(παραβολάνοι)’ 곧 ‘위험을 무릅쓰는 자들’(Persons who risk their lives)이라는 용어였다.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 παραβαλανεῖς 혹은 παρἀβολοι에서 유래했는데, 초기 기독교에서 자기 생명의 위험(παραβἀλλεσθαι τὴν ζωἠν)에도 불구하고 자발적으로 병든 자를 돌보거나 사망한 자의 장례를 치러주는 등 형제애를 실천한 이들을 칭하는 용어였다. 이들을 로마인들은 ‘파라발라니 parabalani’라고 불렀다. 3세기 당시 기독교 공동체에서 ‘파라볼라노이’라는 칭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기독교가 위난자들에게 자기희생적 사랑을 실천했다는 중요한 증거였다. 파라볼라노이라는 용어는 에우세비오스의 ‘데오파니’(Theophany, 325)에 처음 나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3세기 후반 알렉산드리아에서 역병이 유행할 때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 휘하에서 일군의 조직을 갖추었던 것으로 보인다.

디오니시우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사랑을 실천한 대가로 죽음을 맞았고, 또 이런 사랑을 실천했던 장로나 집사 혹은 평신도들이 있었다고 말하면서 이들이야말로 순교자와 다를 바 없다고 설교했다. 이런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후일 ‘사랑은 영혼의 손’(Love is the hand of the soul)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자기희생적 헌신은 3가지 결과를 가져왔다. 첫째, 사망률의 현저한 감소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병든 자를 간호하고 위난한 이들에게 도움을 베푼 결과로 어떤 이는 죽음을 맞기도 했으나, 모든 치료가 중단된 상태에서 기본적인 간호만으로도 사망률을 현저히 낮출 수가 있었다고 의사학자 맥닐은 주장한다. 물과 음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쇠약해진 이들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방 종교 신봉자들에 비해 기독교 공동체의 생존율이 월등히 높았다. 그리스도인들의 활동은 기독교 공동체 밖으로 확산되어 사망률 감소에 영향을 끼쳤다.

둘째, 이교 숭배자들의 회심과 기독교로의 개종, 곧 종교적 이행(移行)이 일어났다. 그리스도인들이 베푼 형제애적인 사랑은 이교 숭배자들의 마음을 열어 기존 종교를 폐기하고 새로운 종교를 수용하는 변화를 가져 온 것이다. 고대의 키프리아누스나 디오니시우스, 그리고 역사가인 에우세비오스 등은 물론이지만 우리 시대의 미국의 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도 이런 역병이 결과적으로 기독교의 확산에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역병은 이방종교의 쇠퇴를 가져왔고, 기독교 성공에 기여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생명에 대한 사랑이 가져온 결실이었다. 이상에서 제시한 초기 기독교회의 사랑의 실천이 오늘 우리들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이상에서 인간 생명 혹은 생명 윤리 문제와 관련하여 그레코-로만 사회에서 제기된 3가지 문제, 곧 영아 유기, 낙태, 그리고 역병의 창궐이 어떠했는가를 소개하고 이런 상황에서 초기 기독교는 어떻게 대처하며 사랑을 실천했는가를 소개하였다. 진정한 사랑은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켰다. 사랑의 실천은 결과적으로 이교도들의 종교적 이행을 가져와 이교의 쇠퇴와 더불어 기독교 성공을 가져오는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 그러기에 로마인들은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긴다(Omnia vincit amor)”라고 말했을 것이다.

백석대 석좌교수·역사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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