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주신 인생, 사람이 더하고 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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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주신 인생, 사람이 더하고 뺄 수 있을까?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1.03.0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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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전도서이야기 -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전 3:18)

영원을 알지만 누릴 수 없고, 섭리의 존재는 짐작하지만 앞날을 헤아리지 못하는 존재. 인간의 한계성을 깨달은 전도자는 우리에게도 그것을 받아들이라 권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소유와 쾌락의 종이 되지 말라고, 세상사 다 책임질 듯 짐 지고 살지 말라고, 자식에게 물려주려 궁핍을 일상으로 삼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의 충고는 허탈하리만큼 단순합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3:12~13) 전도자의 의도는 영원과 초월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일상, 분복에 충실하라는 데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생각만치 쉽지 않습니다. 어느 음식 평론가가 ‘미식’ 프로그램에서 한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이상하게 식탁에 좋은 음식을 놓고도 그 음식을 진정으로 음미하지 못하고 이전에 가본 다른 식당의 음식, 가본 적 없지만 유명하다는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먹는 버릇이 있는데, 지금 먹는 그 음식에 집중하고 즐기는 게 중요하다 하더군요. 생각해보니 참 옳은 이야기였습니다. 어찌 음식뿐이겠습니까? 로마를 가면 파리가 아름답다 하고, 베이징에 가면 하노이 경험을 들먹이는 것이 우리입니다. 무엇을 가져도 어디를 가도 누구와 사귀어도 더 나은 그 무엇과 비교하는 한 우리는 불행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덧없다 한탄하는 대신 지금 나의 삶을, 내 소유와 경험과 관계 모두를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받는 믿음의 소유자야말로 최상의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덧없음을 수십 번 되뇌이는 전도자가 그 덧없는 인생을 즐겁게 살아내는 법을 가르치는 스승이라니 이 또한 인생의 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전도자는 한 번의 권면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듯 인생의 불의와 부조리를 다시 소환합니다: “또 내가 해 아래에서 보건대 재판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고 정의를 행하는 곳 거기에도 악이 있도다”(3:16) 전도자를 괴롭히고 “이래서 인생은 헤벨”이라 반복하게 만드는 상황입니다. 세상에 악이 가득해도 그곳만큼은 섬처럼이라도 깨끗하게 남았어야 할 법정에 불법과 불의가 넘치다니요. 법정을 향한 그의 질타가 그가 살았던 시대만의 문제였을 리 없습니다. 고귀한 것을 외치는 자들이 그것을 더럽히는 모습. 우리를 화나고 슬프게 만드는 광경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겠다는 듯 외칩니다. 의인과 악인을 가리는 심판의 날이 온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욕구와 행위들이 판단 받을 날이 있습니다(17절). 그러나 그 생각도 큰 위로가 되지는 못했던지 전도자는 고심 끝에 덧붙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시험을 내리시는 이유는 “그들이 자기가 짐승과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하기 위함이라고 말입니다(18절). 잘난 척 해봐야 칠팔십 년 살다가 죽는 인생, 권력자도 부호도 죽으면 한 줌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 인생, 육신은 스러지고 남은 영혼이 ‘위로’ 올라갈지 ‘아래로’ 내려갈지 모르면서 무슨 허세를 부릴 것이 있겠습니까(19~21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사람이 보태고 뺄 일이 없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을 두려워하는 일(개역개정은 ‘경외’로 옮김) 뿐이고, 산 것은 모두 죽는다는 법칙에 인간도 예외가 아니니 우리는 자신이 짐승보다 나을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입니다. 전도자의 메시지, 터프합니다. 그리고 진실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지혜의 스승인 전도자가 인간의 고귀함을 비웃으려 한 말이겠습니까. 오히려 우리를 귀하게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메시지입니다. 자신의 유한성을 받아들이고 삶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무상함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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