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하기에 감사…지금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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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약하기에 감사…지금 우리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1.03.01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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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딛고 유튜브 채널 ‘위라클’로 희망적인 일상 공유하는 청년 박위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운영자 박위 씨는 자신의 콘텐츠를 통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게 소명이라고 말한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운영자 박위 씨는 자신의 콘텐츠를 통해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게 소명이라고 말한다.

폭설이 내리는 밤 한 남자가 우산도 쓰지 못한 채 휠체어를 타고 거리를 누빈다. 차가운 눈을 온몸으로 맞으며 수십 분을 헤매던 그는 다섯 번의 시도 끝에 겨우 턱없는 편의점을 찾아 들어간다. 유튜브에서 집에 갈 수 있을까란 제목으로 올라온 이 영상은 조회수 22만회를 기록하며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이 밖에도 전신마비가 된 내가 다리 운동을 하는 법휠체어 타고 오사카로 비행하기등의 콘텐츠는 각각 74만회, 99만회의 조회수를 올렸다.

일련의 영상 속 주인공은 바로 삶 자체가 간증인 청년, 박위(35·온누리교회) 씨다. 7년 전 낙상사고를 당해 하루아침에 전신마비가 됐지만, 언젠가 하나님이 다시 일으키실 것이란 믿음과 피나는 노력의 재활로 예전의 일상을 하나씩 되찾아가고 있는 그는 현재 19만 구독자를 자랑하는 유튜브 채널 위라클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여전히 쇄골 밑으로는 감각이 무디지만, 끝없이 희망을 노래하는 박위 씨를 통해 우리는 당연한 일상도 기적임을 깨닫는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품은 물론 굳건한 신앙까지 꼭 닮은 박위 씨는 사구 이후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책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품은 물론 굳건한 신앙까지 꼭 닮은 박위 씨는 사구 이후에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책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하루아침에 떠안은 장애
어려서부터 누구보다 밝고 건강했던 박위 씨에게는 매일이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오죽하면 토요일은 진탕 술을 마시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가 주님, 저는 세상의 쾌락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냥 회색 크리스천으로 살다가 죽을 때쯤 주님께 완전히 돌아갈게요라고 기도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가 28살이던 20145월 사고는 예기치 않게 닥쳤다. 당시 인턴으로 일하던 유명 외국계 패션기업으로부터 정규직을 제의받고 친구들과 축하파티를 열면서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고 깨어났더니 중환자실이었어요. 알고 보니 제가 간밤에 건물과 건물 사이로 떨어졌더라고요. 문제는 눈을 떴더니 온갖 치료 장치로 둘러싸인 제 몸은 보이는데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질 않는 거예요. 그래서 단순히 수술 후 마취가 안 풀렸다고 생각했는데 의사가 오더니 목이 부러져서 척수신경이 손상됐다. 당신은 앞으로 전신마비로 살 것이며 영원히 걸을 수도, 손가락을 절대 움직일 수도 없을 것이라고 판정을 내렸습니다.”

탄탄대로일 것 같던 앞길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떨어지자 가족들의 슬픔은 엄청났다. 하지만 곧 이어 첫 번째 기적이 일어났다.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사흘이 지났을 때 부친이 위야, 네가 믿는 하나님이라면 나도 믿어보겠다고 고백한 것. “아버지를 전도하는 건 평생 불가능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제가 전신마비가 된 상황보다 아버지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실이 더 기적이었어요. 이후 아버지는 엄마를 따라 새벽기도를 다니시면서 변화하셨죠.”

반면, 아들이 반드시 치유되리라 확신한 모친은 의사가 전신마비 진단을 내릴 때도 영상으로 찍어둘 만큼 신실했다. 훗날 간증할 때 자료로 쓰기 위해서였다. 또 날마다 기도문을 써서 주위에 공유한 덕분에 박위 씨가 입원해있던 6개월 동안 병실은 늘 성도들의 기도와 예배 소리로 가득 찼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저와 제 가족들을 위로하셨어요. 나쁜 마음을 먹거나 지칠 틈이 없이 병원이 북적였죠. 모든 게 주님의 은혜이고 감사였습니다.”

어머니의 긍정적인 성품은 물론 굳건한 신앙까지 꼭 닮은 박위 씨도 결코 좌절하지 않았다.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자책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다. 갑작스런 상황이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실감이 잘 안 났을 뿐더러 하나님이 고치실 것이란 신뢰가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입원한지 2~3주가 지났을까. 두 번째 기적이 나타났다. 마비가 서서히 풀리면서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 것. 평생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던 의사의 말이 무색해진 순간이었다.

박위 씨는 하나님으로부터 훗날 치유돼 세상에 많은 아픈 이들에게 희망이 돼야 한다는 사명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박위 씨는 하나님으로부터 훗날 치유돼 세상에 많은 아픈 이들에게 희망이 돼야 한다는 사명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고난 중에 만난 하나님
이후 그의 믿음은 급격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쳐다보지도 않던 성경을 읽는가 하면 재활병원에서 전쟁 같은 하루를 마치면 무조건 기도실로 달려가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하나님은 박위 씨의 내면에도 깊이 역사하셨다. 처음에는 하나님, 제발 저를 일으켜주세요. 그러면 시키는 건 무엇이든 다 할게요!”라며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드리던 기도가 시간이 흐를수록 남을 위한 중보기도로 변한 것이다.

어느 날 기도를 하는데 저보다 더 고통스러운 환자들이 떠오르면서 긍휼함에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때까지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본 적이 없었는데 분명 성령님의 임재였죠. 또 하루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대화조차 나눌 수 없는 자녀를 둔 어머님이 오셔서 내 아들이 너만큼만 돼도 좋겠다고 말씀하시는데 가슴으로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때 하나님은 제게 위야, 너는 반드시 회복될 터이니 훗날 너처럼 아픈 이들에게 희망이 돼주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박위 씨는 사고 후 4개월 만에 혼자서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을 정도로 호전됐다. 그리고 6개월 째 부터는 휠체어에 앉아 생활할 수 있게 됐다. 이 또한 기적이었다. 이후 집으로 돌아온 그는 혹독한 재활 훈련에 매진했다. 영하의 날씨에는 온 몸에 핫팩까지 붙여가며 매일 한강으로 나가 휠체어를 밀었고, 상체 위주로 스스로의 운동법을 터득했다. 그 결과 지금은 혼자서 침대에 누울 수도 있고, 화장실도 가고, 요리에 운전까지 가능해졌다.

초반에는 모든 생활을 주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어요. 누워있을 때는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에 한 번씩 몸을 뒤집어주는 건 물론, 퇴원을 해도 밥 먹고 씻고 대소변을 가리는 일까지 전부 가족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죠. 그렇다 보니 부모님께 용돈은 못 드릴망정 다 큰 성인의 뒤처리를 맡기는 현실이 너무 괴롭고 죄송스러웠어요. 그래서 어서 독립해서 가족들에게 절대 짐이 되지 말자는 심정으로 재활에 죽기 살기로 악착같이 매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낙심이 들 때도 더러 있었다. 그의 육체는 차도를 보였지만 과거 워낙 건강했던지라 결코 만족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사이 박위 씨의 신앙은 점차 내리막길을 걷고 있었다. “정말 많은 분들이 저를 위해 기도해줬어요. 그렇지만 현실은 기대만큼 나아지지 않으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이 아닌 벽에 대고 혼자 이야기하는 것 같았죠. 그래서 눈으로 보든 피부로 느끼든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심을 알게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신실하신 하나님은 이내 응답하셨다. “친구를 따라 마지못해 간 교회 수련회에서 목사님이 아픈 지체들을 위해 기도해주겠다고 하셔서 단상에 올라갔어요. 그리고 친구들이 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손을 대고, 900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뜨겁게 기도해주는데 그때 하나님이 위야, 이게 중보기도야라고 말씀하셨죠. 그제야 알겠더라고요. 이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구나. 그날 얼마나 회개했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도 회복됐죠.”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
이를 계기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진 그는 휠체어를 타고 제주도와 일본 등으로 아웃리치를 떠났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마음속에 늘 품어왔던 비전을 실현시킬 지혜를 깨달았다. “주님은 제게 희망이 주는 사람이 돼라고 하셨지만 정작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서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아웃리치 기간 해외에 머무르면서 하나님이 해답을 주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유튜브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에게 직접 다가가고 사랑하라고 말이에요.”


2019년 개설된 채널 위라클’(weracle)은 이렇게 탄생했다. 위라클은 박위의 ’(We)와 영어단어 미라클’(Miracle)을 합성한 것으로 우리 모두에게 기적을이란 의미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사람을 살리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게 목적이다. 생긴 지 불과 2년 만에 구독자가 19만 명을 돌파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린 까닭에 어엿한 직원들도 두고 있는데 대해 박위 씨는 오로지 하나님이 이뤄 가시는 일이라고 겸손히 말한다.

한편, 위라클의 콘텐츠들은 특히 유쾌하면서도 진정성이 돋보이는 게 매력이다. 휠체어를 탄 일상부터 재활 모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는 위라클 택시 및 휠터뷰까지 소재도 다양하다. 예를 들면 휠체어를 탄 채로 샤워하거나 소변줄을 이용하는 법, 혹은 요리를 하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콘텐츠를 통해 사람들은 자연스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따뜻한 위로를 얻는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에는 휠체어를 탄 일상부터 재활 등 다양한 생활이 공유된다. 이를 통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하는 우울증 환자도 있었다.
유튜브 채널 ‘위라클’에는 휠체어를 탄 일상부터 재활 등 다양한 생활이 공유된다. 이를 통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고백하는 우울증 환자도 있었다.

SNS로 쏟아지는 응원의 댓글들은 이를 증명한다. 실제로 그와 같은 아픔을 겪는 하반신마비 환자들 혹은 현직 치료사들은 큰 도움이 됐다는 피드백을 보였고, 우울증으로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누군가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이 없지만 박위 씨 때문에 기독교가 궁금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도 소소한 일상을 기적처럼 살아내는 박위 씨의 모습에서 희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한때는 저도 부정적인 생각들로 많이 힘들었죠. 지금은 젊어서 버티지만 나이가 들면? 가족도 치료비도 없으면? 이런 두려움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됐었죠. 그런 저에게 주님은 빌립보서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과 함께 십자가를 떠올려주셨습니다. 죄 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고통에 저의 고난은 비할 바가 못 되잖아요. 고난은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유튜버로서, 또 강연자로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위 씨. 그가 세상에 전하는 궁극적인 메시지도 결국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다. “저는 주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었어요. 제가 다치기 전에는 걷고 뛰고 제 손으로 밥 먹는 일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신마비가 돼보니 기적이란 게 꼭 초현실적인 현상이 아닌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이란 걸 깨달았죠. 기적은 지금 내가 사는 삶, 그리고 당신이 사는 삶 그 자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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