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독점하려던 장로교회파, 욕심 때문에 결국 기회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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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독점하려던 장로교회파, 욕심 때문에 결국 기회 잃어
  • 장종현 목사
  • 승인 2021.02.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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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현 목사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강해(6) 웨스트민스터 총회 스케치
장종현 총회장
장종현 총회장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첫 번째 임무는 1563년, 엘리자베스 1세의 치하에서 작성한 39개 신조를 개정하고 개혁주의적 신학 관점을 명확히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일은 많은 진보를 이루지 못했다. 그것은 39개 신조가 각 조항의 진술이 간단하고 사변적인 면이 적지만, 종교개혁의 교리와 일치했기 때문이다. 10주 동안 15개 조항을 개정하고 성경적 증거들을 보충하였다. 총회가 시작되고 3개월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의회는 스코틀랜드 사이와 맺은 <엄숙한 동맹과 계약>을 인준했고 총회에 새로운 신앙고백을 준비하도록 요구했다. 39개 신조의 수정작업보다 성경에서 교훈하는바 믿는 도리와 교회 정치, 예배 형식 등을 포함하는 신앙고백서를 새로 만들기로 합의하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 요청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탄생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다수를 점했던 장로교회파의 목적은 장로교 원리에 따라 다스려지는 교회 형태로 영국 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었다. 총회로 부름을 받음으로 그들은 이전에 그들에게 허용되었던 제한된 방식인 설교나 책 출판이 아니라 교회의 정치 체제와 신조, 예배모범을 포함하는 교회 규범 제정이라는 강력한 방법을 통해 자신들의 이상을 제대로 펼칠 기회를 잡게 되었다.

의회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엄숙한 동맹과 계약>이 맺어졌을 때 대세는 장로교 쪽으로 기운 듯했다. 하지만 총회의 구성원들이 장로교파만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장로교파는 가장 수가 많았으나 한마음은 아니었다. 반면에 소수파들 중 하나인 독립교파는 수는 적었으나 매우 영향력이 있었다. 이듬해 공동기도서가 불법으로 규정되었고, 「공중 예배 지침서」가 예배 모범으로 대체되었다. 의회가 「공중 예배 지침서」를 승인한 것은 1645년 1월 4일이었다. 

1월 23일에는 국교회를 장로교식 정치체제로 전환하는 것에 찬성하는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했다. 그런데 이 조치가 취해지자 이때까지는 비교적 눈에 띄지 않고 하찮은 존재로 머물러 있던 독립교회파와 온갖 종류의 분리주의자들이 갑자기 전면에 나서 총회의 다수파인 장로교파에 저항했다. 자유에 비중을 크게 두었던 사람들이 장로교와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독립교회파를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런 와중에 독립교회파인 올리버 크롬웰이 신형군(새로운 모범 군대)을 사용해 1644년 마스턴 무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어 독립교회파의 위신을 크게 높였다. 그리고 1645년 네이즈비 전투에서 승리해 1차 내전을 끝냄으로 독립교회파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교회의 권위를 부여받은 내용이 첨가되어 출판된 것은 1647년 5월이었다. 그해 10월 22일 대요리문답이, 11월 25일에는 소요리문답이 의회에 제출되었다. 대·소요리문답의 최종판을 의회에 제출한 것은 1648년 4월 14일이었다. 하지만 의회는 제출된 신앙고백서를 즉시 승인하지 않고 근거 성구들을 적도록 하는 것을 요구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1648년 6월 20일에야 하원은 그 직전에 상원이 승인한 신앙고백을 받아들였다. 

이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장로교 제도를 영국교회의 것으로 추진할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런데 왜 기회를 살려내지 못했는가? 과정을 보면 장로교회파가 가진 욕심이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의회를 지배하던 장로교회파는 영국에서 3년 동안 장로교 체제를 도입하게 해준다면 찰스의 통치를 보장하겠다고까지 제안하기도 했다. 

찰스와 왕당파가 1648년 5월에 일으킨 2차 내전에서 스코틀랜드는 지원군을 보냈지만 승리는 크롬웰의 신형군에 있었다. 그 후에 장로교회파 의회는 독립교회파가 주축이 된 크롬웰의 2만 명 군대를 해산하고, 크롬웰을 축출하여 의회를 장로교파 중심으로 운영하려고 했다. 그러나 1648년 12월 크롬웰의 군대는 해산 요구를 거부하고 대신 런던에 진격하여 의회를 점령하는 바람에 의회는 자신들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장로교회파는 권력을 독점하려다 도리어 가진 것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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