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편지들 바디안에게, 1529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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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의 편지들 바디안에게, 1529년(4)
  • 주도홍 교수
  • 승인 2021.02.03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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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도홍 교수의 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22

츠빙글리의 환호
마부르크 종교담화 후 헤센 왕실은 급속히 루터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며, 필립 공은 사람들이 우리의 책들을 전혀 문제없이 읽을 수 있다고 분명하게 허락했고, 우리의 교리를 동의하는 목회자들을 이제는 파면하지 않고 인정하기로 했다고 츠빙글리는 전한다. 그런 이해를 전제로 바디안이 마부르크 회담결정문을 읽을 것을 츠빙글리는 권한다. “이처럼 진리가 공적으로 우위를 점했다”라고 츠빙글리는 기뻐한다. “언젠가 한 사람(츠빙글리?)이 열세에 놓였던 것같이, 이제는 루터가 몰염치와 험담으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열세에 놓였는데, 무엇보다 마음을 뚫어보는 바른 재판관 앞에서 그렇게 되었다.”라고 츠빙글리는 전한다.

그렇지만 “루터는 소리치고 싶었을 것인데, 본인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무적이라고!” 츠빙글리의 계속되는 승전보는 다른 교리에서도 개신교들 사이에서 일치를 보고 난 후, “루터가 장악하게 될 거라고 교황 추종자들이 더는 꿈꿀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역설적으로 전한다. 이는 루터의 신학과 논리로는 로마교회를 확실히 극복할 수 없다는 말을 우회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개혁교회만이 대안임을 내세우는 것이라 하겠다.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 마부르크까지 오고 가야 했던 먼 여행 그리고 심신을 집중해야 했던 긴장감 넘치는 토론으로 ‘여전히 아주 지친’(noch ganz erschoepft) 츠빙글리였지만, 소식을 가능한 서둘러 바디안에게 전했는데, 마부르크 종교담화에서 승리감에 젖은 츠빙글리는 후일 바디안을 직접 만나서 ‘상세히’(vollstaendig) 마부르크에서 있었던 논쟁에 대해 전해줄 것을 기대한다. 츠빙글리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신앙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황제의 횡포를 막아낼 지혜를 바디안과 서로 나누기를 원한다. 편지의 마지막 안부 역시 간단한데, “그간 잘 사시오. 모든 친구에게 안부를 전하시오. 훌드리히 츠빙글리”라는 말로 마감한다.    
 

의의
편지는 1529년 10월 1일부터 10월 5일까지 있었던 역사적 마부르크 종교담화의 분위기와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는데, 귀하고 소중한 사료(史料)이다. 츠빙글리가 참석자로서 현장 상황을 전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루터와 멜란히톤에 관한 묘사는 매우 상세하고 직설적이다. 츠빙글리의 묘사가 헤센의 성주 필립 공도 확인한 회의록에 근거하고 있지만, 강력한 지도자 루터의 동역자로서 내성적이고 심약한 독일 종교개혁의 제2인자 멜란히톤의 어려움을 고려할 때, 멜란히톤을 향한 묘사가 우회적이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물론 생생한 현장을 전해줌에는 이보다 더 사실적 서술은 없기에 교회사를 공부하는 한 사람으로서 통쾌함과 고마움도 가진다. 어쨌든 츠빙글리는 14개 합의를 이룬 역사적 종교담화와 함께 성찬론에서 나름의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헤센의 성주 필립이 정치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개혁신학을 비로소 지지하게 되었으며, 개혁신학을 고백하는 목회자들이 헤센 땅에서 파면을 면하게 되었는데, 개혁신학이 1529년을 계기로 루터의 땅 독일 헤센에서도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음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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