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와 교회의 근본적 변화 고심… 통일된 신앙고백 모색
상태바
국가와 교회의 근본적 변화 고심… 통일된 신앙고백 모색
  • 장종현 목사
  • 승인 2021.01.19 13: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종현 목사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강해(3) 신학적 배경
장종현 총회장
장종현 총회장

장기의회가 시작된 이듬해인 1641년 영국은 서서히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해 12월 의회는 왕과 왕당파에 대한 불만을 적은 긴 성명서인 ‘대항의서’를 찰스에게 보내 감독의 권한을 축소하고 감독의 명령에 의해서 교회에 도입된 우상숭배적이고 교황주의적인 의식을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격분한 찰스는 왕비의 부추김을 따라 군대를 끌고 하원 회의장에 들어가 핵심인물 다섯 명의 의원을 체포하려고 시도함으로 의회의 특권을 침범했다.

그들이 미리 피신하였기에 이 시도는 실패하였다. 의회를 떠나면서 왕은 “모든 새들이 날아갔다”고 한탄했다. 이 일로 의회와의 신뢰가 완전히 깨졌고, 찰스는 1642년 1월 런던을 떠나 요크셔로 갔다. 이것은 다름 아닌 왕과 의회 사이의 전쟁을 의미했다. 그해 8월 찰스가 노팅엄에서 군대를 일으켜 실제로 내전이 시작됨으로 청교도를 지원하는 시민군들로 갈라져 1646년까지 수년간에 걸쳐 전쟁이 벌어졌다.

장기의회가 열렸을 때 의회는 정치적인 문제든 종교적인 문제든 스트래포드와 로드의 탄핵 같은 부정적 정책은 쉽게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국가나 교회에 어떤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처럼 대안적 정책 제시는 처음부터 일치된 의견을 갖지 못했다. 

내전이 시작된 후, 감독제를 폐지하고 감독들이 가졌던 토지를 몰수해 파는 법률이 공포되어 교회의 윗자리가 제거되었다. 그러나 감독제를 대신할 조직에 대한 논의는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을 뿐이었다. 더더구나 의회는 그런 결정을 내림에 있어서 자기들 마음대로가 아니라 스코틀랜드와 군대 쪽 둘 다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의회는 평화를 이유로 영국과 스코틀랜드 두 왕국의 신앙적 통일을 주장하는 스코틀랜드가 달갑지 않았다. 

그래서 내전이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신앙의 일치를 강요당하는 조건으로 스코틀랜드의 도움을 받기는 싫어, 감독제의 폐지와 경건하고 박식한 신학자들의 자문을 구하겠다는 결정만 선언했을 뿐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절했다. 하지만 1643년 전반기 동안 의회의 시민군은 왕당파 군대와 전투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북과 서에서의 심각한 패배는 의회를 다급하게 만들었다. 의회는 스코틀랜드의 군사적 지원을 열망했다. 찰스 1세를 대항한 두 나라의 군사적·교회적 동맹관계의 목표는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회를 보존하고, 영국과 아일랜드의 교회를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1643년 9월 25일 의회와 스코틀랜드 사이에 맺은 이 계약을 <엄숙한 동맹과 계약>이라고 불렀다. 이 계약의 6개 항목 중에서 첫째는 영국교회의 교리, 예배, 징계, 교회 정치 체제가 개혁주의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이루기 위해 의회는 신앙고백, 교회 정치, 예배지침, 교리교육 지침을 만들 성직자들을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영국 의회는 스코틀랜드 원병의 도움을 받아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 일로 인해서 스코틀랜드 대표들은 6명에 불과했지만, 신앙고백의 기초작업 과정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다.

위와 같은 정치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영국교회 내부적으로도 통일된 신앙고백이 긴급히 필요했다. 1620년부터 교회 안에 알미니안주의가 널리 퍼졌고, 정통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무리가 늘어났다. 또한 신앙적인 관용이 주어지면서 율법폐기론자들, 퀘이커 교도들, 깊이 파고드는 자들, 큰 소리파들, 동등주의자들 등 신학적으로 과격한 무리들이 등장하여 혼돈에 빠진 무리들이 늘어났다. 위와 같은 이유들로 의회는 영국교회 개혁에 대해 의견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신학자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뜻을 모아 의회에 제출하기를 바랐다. 가장 주된 논쟁점은 감독제도를 부정한 시점에서 새로운 국가 교회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두고 토의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성경 말씀으로부터 끌어내어 모든 교회들이 이의 없이 동의하는 ‘공통되고 포괄적이며 표준적인 교리, 그리고 공적 예배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웨스트민스터 총회를 구성하는 법령을 통과시키게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