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히 많은 삶의 수수께끼, 경험과 사색을 통해 교훈처럼 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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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삶의 수수께끼, 경험과 사색을 통해 교훈처럼 전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2.29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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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전도서이야기 -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제목에 이은 첫 절(1:2)부터 후기 앞의 마지막 절까지(12:8) 전도서는 헛되다는 탄식으로 가득합니다. 세상 살면서 온갖 일을 하고 즐거움을 추구해 봐도 결국은 헛되고(2:11),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룬 일도 뒷사람 하기에 달렸으니 그것도 헛되고(2:18), 즐기지 못하고 수고만 하는 인생이 헛되고(4:8)… 정의를 추구해야 할 이들이 악행을 행하는 위선도, 평범한 사람들의 무력함도, 의인과 악인을 가리지 않는 죽음의 권세도 다 “헛되다!”는 외침을 촉발합니다. 과연 전도자는 고대의 염세주의자요 전도서는 허무주의 선언문이라도 되는 것일까요.

혹자는 전도서의 “허무주의”는 그러한 어록을 남긴 “전도자”라는 현인의 생각일 뿐, 전도서의 참 의미는 12장 13~14절의 최후선언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이 두 절의 말씀은 물론 진리입니다만, 그렇다면 전도서는 마지막 두 절에 의해 부인되어야 할 잘못된 내용을 열두 장에 걸쳐 써놓은 허무한 책이 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이 책을 1장부터 성실하게 공부한 학생이 12장 12절에 와서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를 읽고선 “아멘! 공부는 여기까지”라며 멈추면 “만사의 결론”을 못 듣고 전도서를 완전히 오해하게 되는 셈이 되겠습니다.

고대부터 수많은 해석가들이 전도서에서 정통적이지 않은 정서와 사상을 가려내며 그 가치를 미심쩍어하고 심하게는 이단시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정경인 전도서의 메시지와 가치를 우리가 그리 쉽게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난해, 모순, 모호함, 수수께끼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하는 복합성에도 불구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 책을 읽는 평범한 독자들은 그 속에서 저자의 목소리가 또렷이 들린다는 데 동의할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우리말 성경에 “헛되고 헛되도다… ”로 번역된 문장들은 거의 모두 히브리어 단어 ‘헤벨’과 관련되는데, ‘헤벨’이라는 단어 자체가 위에 언급한 난해함, 모순성, 모호함, 수수께끼는 물론 사라지는 것들의 덧없음, 목적을 이루지 못한 존재들의 안타까움에 이르는 각별히 넓은 외연을 지니고 있습니다.

전도자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가리켜 “그것은 헤벨이다”라고 표현했을 때 그의 마음에 있었던 생각이 오늘 우리가 이해하고 사용하는 “허무”일 가능성은 의외로 낮다는 뜻입니다. 전도자는 깔끔한 도식으로 정리할 수 없는 인생의 복잡함에 대해, 우리 삶에서 귀하고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금방 우리 곁을 떠나가는지에 대해, 성실한 관찰과 치열한 사색으로도 헤아려 알 수 없는 세계의 신비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삶이 단순하지 않기에 그의 메시지도 단순할 수 없습니다. 그는 분명 지혜의 스승이지만 독자가 품은 질문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약속하지 않으며, 그가 물려받은 조상의 지혜를 되풀이하거나 거룩한 말씀을 인용하는 것으로 답하지도 않습니다.

전도자의 가르침은 진솔하고 명쾌합니다. “내가 보니”, “내가 행하였고”, 그 자신의 관찰과 실험입니다. “내가 내 마음에 말하였나니”, 사색과 추론입니다. “내가 말하노라”, 소신과 입장을 밝히는 표현입니다. 전도자처럼 1인칭 문장을 강력히 구사하는 스승을 만나는 것은 인생에서 큰 행운입니다. 학자, 전문가, 오피니언 리더, 인플루언서…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많지만, 2021년 새해에는 “해 아래 새것이 있겠느냐”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신선한 울림을 주는 전도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보면 어떨지요.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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