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재 속에서 다시 피어난 우리 교회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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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희망은 있습니다, 재 속에서 다시 피어난 우리 교회처럼요”
  • 속초=한현구 기자
  • 승인 2020.12.23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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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 르포] ■ 불탄 예배당 재건한 속초농아인교회

2년 전 강원도 산불로 예배당 전소 … 올해 10월 교회 다시 세워
받은 사랑 나누려 태풍 피해 봉사, 선한 영향력 끼치는 교회 되길

올 한해를 그림으로 표현하라면 새까만 물감을 꺼내들 듯하다. 그만큼 코로나19로 인해 어둡고 암담한 해였다. 1년 동안 느낀 감정의 색깔은 파랗다. ‘코로나 블루’라는 표현이 생길 정도로 사람들의 얼굴에는 우울함과 피로감, 짙은 그늘이 깔려있었다. 

그래서일까. 2년 전 강원도 화재로 전소됐던 속초농아인교회가 재건됐다는 소식은 유독 반가웠다. 말라붙은 사막의 모랫더미에서 힘들게 발견한 오아시스 같았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피어난 희망의 현장. 지난 10일 속초농아인교회를 찾아 담임 최만석 목사와 만났다. 

속초농아인교회는 지난 11월 5일 입당감사예배를 드리고 새 보금자리에 안착했다.
속초농아인교회는 지난 11월 5일 입당감사예배를 드리고 새 보금자리에 안착했다.

불타버린 교회 앞에서 
그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최만석 목사 역시 장애인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았다. 그랬던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은 신학교에 입학한 이후였다. 농아인, 시각장애인 신학도 동기들이 눈에 띄었다. 비장애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신학공부가 그들에게는 한층 더 버거워 보였다. 

“당시 우리 학교는 장애인에 대한 학습권이나 이동권이 충분히 준비된 상태가 아니었어요. 그러다보니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과 도움을 주면서 그분들에게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죠. 장애인 사역과 관련된 동아리에 들어갔고 수화도 그때 처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운 길을 발견한 최 목사는 신대원에서 장애인 학습권과 장애인 신학에 대해 본격적으로 배우고 연구했다. 장애인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 튜터 봉사를 하며 밤낮을 함께 보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안산제일교회 장애인 부서 교역자로 8년을 섬기게 됐다. 

하지만 최만석 목사가 속초농아인교회에 청빙 받은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장애인 부서 사역을 마치고 시골교회 담임으로 부름 받아 열심히 교회를 세우고 있던 때였다. 당시 속초농아인교회는 강원도 산불로 영동극동방송에 세 들어 있던 예배당이 모조리 불에 타 형체를 잃은 상황이었다. 교회를 개척했던 목회자는 이미 은퇴했고 수화 통역을 맡던 전도사가 임시로 교회를 맡고 있었을 때 벌어진 참사였다.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울 담임 목회자가 시급했다. 

“청빙 제안을 받고 처음엔 거절했습니다. 장애인 사역에서 손을 뗀 지 3년이 지난 터라 잘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고, 지금 교회에서 더 잘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 뜻이 아니라 내 생각대로 판단하고 결정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속초에 한 번 다녀와 보고 결정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현장은 참담했다. 무너져 내린 예배당과 낙심한 성도들의 표정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속초를 떠나 돌아오는 길 최 목사와 사모의 눈에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제 아내도 청각장애인 목회자거든요. 제 아내를 옆에서 보면 농아인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알죠. 현장을 둘러보고 돌아와서 1주일 동안 울면서 기도하고 회개하며 가겠다고 결심했어요. 제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에 저를 맞춰가기로 결단했죠. 그렇게 지난해 8월말부터 속초농아인교회에서 사역이 시작됐습니다.”

속초농아인교회 최만석 목사

기적처럼 세워진 교회
최만석 목사는 속초농아인교회가 다시 세워진 과정을 하나님의 기적이라 표현했다. 처음 속초에 왔을 땐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교회 비품은 물론이고 중요 서류마저도 모두 불타 남은 것이 없었다.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는 단 2~3명에 불과했다. 미자립교회가 대부분 그렇지만 장애인들로 이뤄진 교회의 재정상황은 특히 더 열악했다.

화마가 휩쓸고 간 폐허에는 남은 것이 없었다. 다행히도 모교회인 속초중앙교회에서 산불이 난 바로 다음 주부터 농아인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해줬다. 오전에는 일반인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수화로 통역을 했고 오후에는 농아인들만 따로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교회의 소식이 알려지자 사랑의 손길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전국 교회에서 성금을 보내왔고 심지어 해외 한인교회 성도들까지 사랑의 손길을 보탰다. 화재 이후 들고 나왔던 보증금 7천만원은 어느새 7억 원의 교회 건축 자금이 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기적이라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저희의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었습니다. 부임 이후 노회 시찰원들과 함께 곳곳을 돌며 교회가 세워질만한 입지를 찾았어요. 장애인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속초 시내에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했죠. 설계에 5개월을 투자해서 올해 3월 도면을 마무리하고 4월 첫 삽을 떴어요. 그때가 바로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정말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순풍에 돛단 듯 골조공사를 마쳤다. 그런데 하필 올해 역대 최장기간의 장마가 쏟아졌다. 50일 동안 야속하게 퍼붓는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길었던 장마가 끝나고 나니 이제는 태풍이 영동지방으로 향했다. 8월 15일 광복절로 예정돼있던 완공 예정일은 성큼성큼 다가오는데 건물에는 좀처럼 살이 붙지 않았다. 

“장마가 쏟아지는 내내 성도님들도 조바심이 많이 나셨을 겁니다. 공사 중간에도 성도님들과 현장에 와서 순조롭게 건축이 마무리되길 기도하곤 했어요. 장마를 겨우 보냈는데 태풍이 올 때는 저도 긴장이 되더군요. 완공일은 조금 늦춰졌지만 다행히 10월 말에 공사를 마쳤습니다. 감사하게도 입당을 마치고 나니 곧이어 추수감사절, 창립기념주일이 찾아왔어요.”

속초농아인교회 예배 모습

넘치게 받은 사랑 흘려보내길
고향 땅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느헤미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전쟁으로 얼룩진 폐허뿐이었다. 하지만 느헤미야는 기도하며 다시 성벽을 재건했고 무너진 민족을 일으켜 세웠다. 그때 느헤미야가 느낀 벅찬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불타버린 교회가 다시 세워지는 것을 지켜본 최만석 목사와 속초농아인교회 성도들이라면 느헤미야가 느낀 감격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세워지고 입당예배를 드렸을 때의 감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예배당이 불타고 성도 2~3명이 출석하던 농아인교회가 번듯한 교회를 다시 세운 것은 하나님이 하셨다고 밖에 고백할 수 없어요. 예배당이 세워지고 회복하는 동안 교회 공동체도 많은 회복을 이뤘습니다. 재적 성도는 23명 정도로 늘었고 지금도 16명 정도의 성도님들이 매주 예배에 함께하고 계세요.”

속초농아인교회에서 피어난 희망의 향기는 주변 이웃들에도 전해졌다. 다행히 속초농아인교회에는 피해가 없었지만 두 번의 태풍이 한반도를 스쳐갔을 때 피해를 입은 속초와 양양 인근 교회들이 있었다. 예배당이 무너져 내릴 때의 아픔과 좌절감은 그 누구보다 속초농아인교회 성도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교회 재정이 부족해 헌금은 할 수 없었지만 최 목사와 성도들이 직접 피해 현장을 찾아 구슬땀을 흘렸다. 교회가 받은 넘치는 사랑과 은혜를 주변에도 나누고 싶었다. 

“교회의 비전이 있다면 두 가지를 꼽고 싶어요. 첫 번째는 태풍 피해 현장을 도왔던 것처럼 받기만 하는 교회가 아니라 흘려보내는 교회가 되자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이를 위해 장애인들의 신앙은 물론 삶도 돌볼 수 있는 교회가 됐으면 합니다. 새로 세워진 건물 1층에 카페를 꾸미고 장애인 분들을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에요. 장애인분들이 일을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지역사회에서 주변인이 아닌 중심에 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코로나가 드리운 짙은 그늘을 최만석 목사의 얼굴에선 찾기 힘들었다. 황량한 폐허 속에서도 희망의 꽃을 피워낸 최 목사와 속초농아인교회는 한국교회 성도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예수님만이 희망입니다. 지금 코로나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썩어질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소망하면서 기다림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때, 상황과 환경을 뛰어넘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회복의 빛을 비춰주실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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