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되기 쉬운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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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도되기 쉬운 의학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12.23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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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39

진료실에 들어온 젊은 여성환자가 동남아에 가게 되었다며 말라리아 치료제를 처방해 달라고 하였다. 이른바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하는 그 약이다.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그냥 처방해 주어도 되지만, 깐깐하게 물어봐서 결국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해 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 목적으로 약을 구입하려 한다고 했다. 이럴 때 의사인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결국 처방을 해주긴 했다. ‘~~카더라’라는 말을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실로 믿고 있다는 것에 대해 놀랐다.

헬스 카레가 무슨 말인지 아시는가? 자칭 의학 저널리스트라고 했던 고 허현회씨가 관절염환자를 카레로 치료했다는 타임지의 기사를 번역하여 SNS에 올리면서 비롯된 말이다. 이미 ‘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등의 책을 통하여 현대의료를 전면적으로 부정한 저자의 언급이라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번역이 불러 낸 참사였다. ‘Health care’를 ‘카레’라고 오역한 것이다. ‘Danger’를 ‘단거’라고 한 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어떤 의사가 타임지를 꼼꼼히 읽고 반론을 제기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인터넷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 카레가 관절염에 특효라는 기사가 넘쳐날 뻔 했다.

이렇게 현대의학을 부정하던 저자는 최근 당뇨와 폐결핵으로 병원에서 향년 5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떴다. 이렇게 현대의학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널렸다. 최근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이나 약을 끊은 사람들 같은 커뮤니티들 때문에 치료의 시기를 놓치는 환자들의 이야기가 도처에 넘친다.

사람들은 책에 나온 내용이라면 일단 어느 정도는 믿는다. 책을 썼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한다. 책의 내용과는 상관없다. 어쩌면 정치인들이 책을 쓰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활자화 되었다는 그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어느 정도 명분을 획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을 금이라 우긴다 해도 은이 금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근거도 부족하고 자기 입맛대로 잘못 번역하는 책들은 그저 자기 주장일 뿐이며 대중을 속일 뿐이다.

우리는 이런 식으로 ‘혹세무민’ 하는 경우를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다. 의료계는 이런 점에서 정말 할 말이 없다. 점잖은 체면에 진흑탕에 빠지기 싫다고 애써 외면하고 겨우 진료실 책상에서 오는 환자들에게만 몇 마디 할 뿐이었다. 전문가로서 잘못된 사실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하고 올바른 여론을 형성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2011년에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2004년 ‘그들이 당신에게 알고 싶게 하지 않은 자연치료법’이라는 제목의 베스트셀러를 쓴 케빈 트루도는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 혐의로 2011년 미국 FDA와 미국연방무역위원회에 고발 당해 수 천만달러의 벌금을 확정선고 받았고 같은 종류의 출판을 하지 못하게 제재 당했다. 다행히 요즘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올바른 여론형성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들을 보게 된다.

독일의 신경과의사인 크리스티안 구르는 그의 저서 ‘나는 왜 늘 아픈가?’ 에서 일반인들이 자주 빠져드는 잘못된 치료법의 특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일수록 , 질병의 특성에 대해 두리뭉술하게 표현할수록, 총체적 보완적 천연적 필연적이라고 설명하는 치료법일수록, 대규모 연구보다는 개인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치료법일수록, 별난 도구를 사용하는 치료법일수록 잘못된 치료법일 수 있다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 과학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평균 수명을 늘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과들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저자인 아툴 가완디의 연설은 우리가 과학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과학은 아직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증거가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 종종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며, 때로는 노골적으로 부정합니다. 나쁜 과학의 패턴을 알리고 좋은 과학의 진실을 내세우는 것이 과학을 신뢰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입니다.”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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