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대교회 아시죠? 언제든 힘들면 우리 교회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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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교회 아시죠? 언제든 힘들면 우리 교회로 오세요”
  • 이인창 기자
  • 승인 2020.12.17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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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신동 쪽방촌 등대교회 이야기

서울도심 ‘창신동 쪽방촌’, 김양옥 목사의 16년 쉼터 목회
쪽방골목서 만나면 안부 묻고 전도, 노숙인 찾아가며 돌봄
코로나로 쪽방주민 더 어려워, 무료급식 중단 못하는 이유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5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과일가게에서 주인과 노인의 대거리가 한창이다. 몇 푼 흥정하다 벌어진 실랑이가 커진 모양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익숙한 듯 무관심하다. 고개를 들어 걷기 시작하자 동대문(흥인지문)이 보였지만, 이내 좌측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길을 안내하는 어플이 가리키는 뒷골목으로 이끌려 들어가야 했다. 도심 속 빈민들이 살아가는 창신동 쪽방촌을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쪽방주민들의 그루터기 같은 등대교회가 이곳에 있었다. 

예배에서 희망 찾는 쪽방주민들
창신동 쪽방촌은 서울역 동자동 쪽방촌, 영등포역 쪽방촌과 함께 번화한 서울 도심 속에 남아 있는 외로운 섬 같은 곳이다. 올해는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쪽방주민들은 더 고립되고 잊힌 존재가 되어 있었다. 찾는 사람들이 없을 때도 쪽방주민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준 곳이 등대교회와 김양옥 목사다. 16년째 쪽방주민들과 함께하는 신앙공동체, 김 목사는 버텼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라고 할 정도로 쉽지 않은 세월이었다.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16년 동안 목회사역을 이어온 등대교회 김양옥 목사. 술 취하면 칼을 들고 나타났던 어느 주민이 회심 후 칼들을 가지고 왔던 기억을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등대교회에선 믿음으로 양육돼 자활에 성공하는 교인들이 늘 생겨난다.
쪽방촌 주민들과 함께 16년 동안 목회사역을 이어온 등대교회 김양옥 목사. 술 취하면 칼을 들고 나타났던 어느 주민이 회심 후 칼들을 가지고 왔던 기억을 이제는 웃으면서 이야기할 수 있다.. 등대교회에선 믿음으로 양육돼 자활에 성공하는 교인들이 늘 생겨난다.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뒷골목에서 등대교회는 작은 건물의 2~4층을 임대해 사용하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예배당 입구에 닿았다. 노숙인, 쪽방주민을 취재할 때면 나던 고약한 냄새가 거의 나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순간, 김양옥 목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금요일 오전. 11시 정기 예배를 드리고 나서 무료급식이 있는 날이다. 여느 곳처럼 무료급식에 앞서 간소하게 예배를 드릴 줄 알았던 예상은 빗나갔다. 1시간 반 가까이 지나서야 마쳤다. 이날 설교의 제목은 ‘기적의 하나님’이었다. 

“우리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서 쪽방에서 거리에서 고시원에서 거하지만, 아둘람굴에 모였던 사람들이 다윗과 함께 통일 왕국에서 크게 쓰임 받았던 것처럼 고난이 축복이 되는 위대한 역사가 우리에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멘”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대부분 쪽방주민인 교인들은 집중하며 설교에 반응했다. 어린 아이처럼 대답했고 또 크게 웃었다. 쪽방촌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설교를 길게 한다고 쌍욕을 하고, 성경책을 집어던지는 일도 많았다. 죽이겠다고 칼을 들고 덤비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등대교회에서는 그런 일이 거의 없다. 교인들은 이제 예배에 집중한다. 김 목사는 삶의 변화는 결국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에서 가능하다고 가르쳐왔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것은 죽어야 한다고만 생각합니다. 가족에게 버림받고 사회에서 냉대 받으니 자신 스스로도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거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거예요. 일을 해야 할 이유, 병원에 가야 할 이유가 생기는 거죠.”

등대교회에는 갈 곳 없는 나그네들이 언제든 머물 수 있는 쉼터가 있다. 특히 여성을 위한 쉼터를 마련해 이곳에서 자립과 자활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인테리어 소품에서 여성 쉼터를 꾸미는데 들어간 정성이 엿보인다. 

쪽방주민 3분의 1이 등대교회 교인
등대교회는 2006년 종로5가 이화동에서 노숙인 한명과 쪽방 주민 한명으로 시작해 2009년 지금의 창신동으로 이전했다. 창신동 쪽방주민이 전체 330명 정도인데, 등대교회 출석인원은 90명, 제적 교인까지 하면 120명에 달한다. 쪽방주민 3분의 1이 교인인 셈이다. 

김양옥 목사는 처음부터 노숙인, 쪽방촌 목회를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군에서 제대 후 교육전도사로 사역하는데 노숙인이 찾아오면 암묵적으로 돈 천원 줘서 보내라는 겁니다. 예수님은 저러한 사람들을 그냥 사랑하셨는데 쫓아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 때 노숙인 목회를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힘든 길을 향한 다짐은 핑계를 대고 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 목사는 하나님과 약속으로 여기고 지켰다. 영등포 광야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시무하며 무수히 많은 노숙인들을 만났다. 노숙인 사역과 관련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준비해 등대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 달려왔다. 건물에서 쫓겨날 위기도 있었지만, 오히려 온 성도들의 기도로 위기를 기회로 만든 역사가 있었다. 그렇게 지금 쉼터 터전이 세워질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쪽방주민을 위한 무료급식이 진행되는 동안 김 목사가 쉼터 공간을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예배당 바로 옆에는 남성 노숙인 10여명이 자활할 수 있는 쉼터가 있다. 기도 끝에 어느 독지가의 후원으로 여성 노숙인을 위한 3층 쉼터도 만들어졌다. 노숙인 쉼터라는 편견을 아주 완벽하게 깨는 인테리어가 돋보인다. 관련 제품들도 청결하고 최신식이다. 3층에는 마당 같은 발코니 공간도 있다. 그곳에서는 창신동 쪽방촌이 한눈에 보인다. 어쩌면 이곳에서 쉼터 사람들은 자신들의 과거를 마주하지 않을까. 또 희망을 찾아가는 것은 아닐까.

미로 같은 쪽방골목을 거침없이 누비며 심방하는 김양옥 목사

쪽방 골목 거침없이 누비는 김 목사
점심식사 후 김 목사는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동행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쪽방주민 심방길을 뒤따랐다. 심방은 특별히 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가는 듯했다. 좁은 골목을 거침없이 나간다. 초행자는 길을 잃을 미로 같은 골목길을 잘도 찾아간다. 

걸음을 옮기면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또 말을 건다. 인사인 것 같고 전도인 것 같은 안부를 물으면서 말이다. 술 좀 그만 마시라고도 하고, 쌀 떨어지면 교회로 오라고도 하고, 지금은 일을 나가는지도 묻는다. 모르는 이름이 없다. 길에서 만난 쪽방촌 사람들은 대부분 김 목사에게 정중하고 예의 있었다. 창신동에서 잔뼈가 굵은 목회자에 대한 주민들의 존중이 느껴졌다. 

김 목사가 어느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하나의 집이 아니다. 한 평 남짓 쪽방들이 따닥따닥 이어져있다. 그런데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다른 문을 열고 계단을 타고 오른다. 생전 처음보는 계단이다. 아니 계단이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한 사람 겨우 올라갈 계단은 꼬아져 위로 향하고, 쪽방 위에 쪽방이 얹어져 있는 것 같은 공간에서 김 목사가 여러 번 부른 “00 형제”가 살고 있다. 

역시 방은 좁았다. 두 사람이 앉기 어려운 공간에는 작은 TV가 켜져 있고, 갖가지 살림살이와 식료품, 이불, 옷가지들이 나름의 질서를 따라 정리되어 있다. 그럼에도 초라할 수밖에 없고 냄새도 나는 곳을 김 목사는 거침없이 들어가서 안부를 묻고 필요한 것들을 찾아 묻는다.

“00 형제, 왜 지난주에 주일예배에 안 나왔어요? 술 이제 안 먹고 일은 나가고 있지요? 쌀은 거의 떨어져가니까 내일 교회로 와서 쌀 좀 받아가요. 이번 주일에는 교회에 꼭 오고!!”

속사포처럼 쏟아놓는 잔소리가 싫지 않은 듯 젊은 쪽방주민은 수줍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덩치가 큰 편인 김 목사가 버겁게 계단을 내려오면서, “코로나19 때문에 쪽방주민들 생활이 더 힘겨워지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목사는 쪽방주민 신앙뿐 아니라 생활 여건까지 늘 챙기고 있다. 

“우리의 사역은 결코 중단될 수 없다”
등대교회 무료급식은 하나님께서 채우신다. 쉼터를 하면서 11년째 쌀 한 본 사본 적이 없다. 필요한 재정을 늘 채우시는 하나님은 이곳에서도 역사하고 계셨다. 등대교회 교인들은 받기만 하지 않는다. 헌금생활도 철저하게 하면서 정부에서 받는 작은 수급비에서도 헌금을 드려 또 다른 필요한 사람들에게 까마귀가 되어주고 있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도 복지관, 개척교회를 후원했다. 

쪽방주민에게는 안타까운 일들도 많다. 등대교회는 최근 쪽방에서 숨진 주민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가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며 교회에 부탁했다. 등대교회 사역이 중단될 수 없는 이유다. 

코로나19 때문에 외부 후원이 줄고 관심이 없어졌지만, 급식을 중단할 수는 없는 일이다. 노숙하다가 보증금도 없이 일세를 내고 월세를 내는 사람들에게 등대교회는 예수님의 품안이다. 

김양옥 목사는 금요일 밤 11시 반이면 이소영 사모와 교인들과 함께 인근 동대문역사문화공역을 찾는다. 늘 30여명 노숙인들이 기거하는 곳에서 방한물품과 따뜻한 먹을거리를 나누어주고 있다. 매일 새벽 2시 전까지 한파도 잊은 채 누워 있는 노숙인들에게 찾아가 말한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등대교회 목사거든요. 등대교회 아시죠? 언제든 힘들면 우리 교회로 찾아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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