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성탄절, “라떼는 말야~”(feat.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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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성탄절, “라떼는 말야~”(feat.1980년대)
  • 이승수 목사
  • 승인 2020.12.15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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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수 목사 / 아산 양문교회 담임

성탄절이 가까이 오면 생각나는 아련한 추억들이 많다. 청년의 때 예수님을 영접한 필자의 성탄 기억은 이랬다. 다정한 사람들에게 성탄카드를 직접 만들어 더러는 팔고,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씰(seal)을 붙여서 성탄의 소식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교회 승합차가 없던 시절에 성도들의 가정을 밤새도록 걸어서 다니며 새벽송을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각 가정에서 주는 선물을 받아서 담아 두기 위한 자루를 어깨에 메고 청년학생들과 함께 고요한 성탄의 정적을 깨우곤 했다. 

또한 성탄트리를 만들기 위해 뒷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서 솜뭉치로 성탄트리 장식을 했던 순수함이 그립다. 그리고 성탄축하 발표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연주와 촛불무용의 고전적 율동이 현대의 것보다 느낌이 더 좋았던 것 같다. 또한 교회 여전도회 권사님들이 준비해준 김치만두의 떡국 냄새가 아직도 내 미각에 남아 성탄의 추억을 기억해낸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구주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기뻐하며 주던 소박한 성탄 선물을 지금도 받아 내 책상머리에 두고 싶다. 장밋빛 스카프로 한껏 멋을 부리고 거리에 나가 전파상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며 걷던 그 길을 그 기분으로 다시 걷고 싶다. 성탄절이 가까이 오면 설레고 기다려지던 젊은 날의 성탄을 다시 누리고 싶은 것은 지나친 낭만인가?

2020년 성탄절은 이렇다
2020년 성탄절은 코로나 19로 인해 집합이 어려워지고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는 현실이다. 성탄전야 축하행사, 새벽송, 심지어 성탄절 예배마저도 교회에서 예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의 성탄절예배 대신 가정에서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양을 드려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이 너무 위축되고 우리의 영혼도 성탄의 설레임도 없이 그냥 심령이 먹먹해진 것 같다. 그리고 신년에 따뜻한 떡국을 나누며 서로의 신앙과 삶을 위로하고 기뻐하는 일이 멈출 것 같다.

올해 성탄은 이렇게 보내자
2020년 전의 성탄절은 이렇다. 성령충만한 성탄절이었다. 구원자 예수그리스도의 오심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파한 세례요한은 성령충만함을 받고 출생한다.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15)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도 성령의 충만한 임재로 시작된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눅 1:35)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기 예수 모친 마리아의 방문을 받고 성령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마리아를 축복한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눅 1:41~42) 세례요한의 부친 사가랴 제사장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아기예수에 대해 예언한다.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눅 1:67)

2020년 비록 대면하여 성탄예배를 드리지 못해도 2020년 전 유대 땅 한 동네에서의 성탄은  성령 충만함으로 시작된 기쁜 소식이었다. 우리 모두 성탄절을 기다리며 성령의 임재를 갈망하자. 주님과 함께 거룩한 밤, 고요한 밤을 주의 세밀한 영적 음성으로 들으며 신령한 성탄을 맞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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