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빙글리의 편지들 콘라드 잠에게, 1527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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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의 편지들 콘라드 잠에게, 1527년(3)
  • 주도홍 교수
  • 승인 2020.12.15 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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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빙글리 팩트 종교개혁사-118

신명기 13:5
이러한 그들을 향해 츠빙글리는 신명기 13:5를 인용하며, 거짓 선지자와 악한 지도자를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취리히와 베른 외에 스위스 연방 다른 곳에서는 과두정치를 통해 그런 끔찍한 무리를 제때 처벌하는데, 복음적이며 시민적 자유를 위해서라도 취리히에서도 그런 자들을 처벌하는 일이 긴급함을 츠빙글리는 말한다. 그들이 다른 이들을 침례로 세례를 다시 주듯이, 그들 스스로 그렇게 수장되었는데, 언제나 그들 자신이 만든 사기와 거짓으로 되돌려준다는 것이다.

혼란에 빠진 취리히
이전에 츠빙글리는 시의회에서 재세례파를 다룰 때마다 그들의 입장을 설득력 있게 옹호하곤 했다. 시의회가 그들을 관대하게 다룰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두목 또는 지도자가 추방당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그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사실 츠빙글리만큼 그들에게 관대하게 대한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적법한 판결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날 정도였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고 전혀 정당하지 않았다. 거기다 재세례파는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어떤 범죄자라 할지라도 감옥에 넣어서는 안 되고 자유롭게 살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츠빙글리는 구약의 선지자를 제시하며, 재판관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한다. 여기저기 곳곳에서 재세례파로 인해 부정부패가 드러나고, 폭력이 난무하고 법질서가 무너지고 무절제의 삶이 넘쳐난다면 더는 그대로 두고 볼 수 없고, 그들을 향해 어떤 배려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 강력한 처벌 수단을 동원하는 것이 츠빙글리의 입장으로 제시된다. 경건한 성도들까지도 그들로 인해 도덕성이 무너지고, 무절제의 방종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츠빙글리는 스위스 연방의 번영과 정의, 바른 삶을 위해 재세례파를 통한 분열을 막고, 이를 대적하여 싸워야만 했다. 

정리  
16세기 당시 재세례파 문제가 시간이 갈수록 심각해져 감을 본다. 처음에는 츠빙글리를 포함 일반교인들도 그들과 기꺼이 상종하였다. 츠빙글리와 재세례파는 유아세례 등에서 차이가 있었지만, 이는 관용할 수 있는 비 근본 교리로 여겼다. 츠빙글리 역시 시의회에서 그들의 문제가 다루어질 때마다 가능한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츠빙글리와 재세례파와의 관계가 나빠졌는데, 그들의 분열, 무절제, 거짓, 위선, 독선, 신비주의 등에서 차이를 보였을 뿐 아니라, 취리히 교회를 향한 그들의 비판과 해악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재세례파로 인한 교회분열은 사회문제로 이어졌고, 시의회는 강력한 법의 회초리를 들게 되었다. 먼저 그들의 지도자를 사형으로 엄하게 다스려야 했는데, 취리히 강에 빠뜨려 죽이는 수장형으로까지 처벌했다. 재세례파가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스위스 취리히 츠빙글리에게와 함께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에게서도 잔인한 처형의 대상이 되었으니, 슬픈 역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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