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본받아 환자들의 마음과 영혼까지 치유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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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본받아 환자들의 마음과 영혼까지 치유하고 싶어요”
  • 김수연 기자
  • 승인 2020.12.02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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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치유 행하는 ‘안양샘병원’ 박상은 원장

얼마 전 의료계 파업이 일면서 국민들은 의사들을 향해 생명을 볼모로 밥그릇 싸움을 벌였다며 적잖은 실망과 불신을 드러냈다. 그러나 막연한 편견 가운데서도 주위 곳곳에는 분명 자나 깨나 환자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헌신하는 참된 의사들도 많이 숨어있다. 평생 가난한 환자들을 보살폈던 고() 성산 장기려 박사 밑에서 무려 10년간 수련을 받고, 신실한 사명감으로 의료인의 길을 걷는 안양샘병원박상은 원장도 그 중 한 명이다.

박 원장은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아 육체적인 질병은 물론 마음과 영혼까지 살피는 전인치유를 실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실제로 안양샘병원은 아프간 피랍사태 때 생존자들에게 전인치유를 행한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현대사회에서 무너져가는 생명윤리에 목소리를 내는 것도 모자라, 아프리카 의료선교에도 열심인 박 원장이 우리에게 남긴 울림은 묵직하다.

고통 중에 만난 하나님
예수님의 사역을 본받아 환자들의 몸과 마음 그리고 영혼까지 치유하는 사역에 앞장서는 안양샘병원. 이곳의 수장인 박 원장의 의료인생을 반추해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처음 의사의 꿈을 갖게 된 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심장병을 앓았던 모친의 등에 업혀 어머니의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듣고 자랐던 그는 훗날 꼭 훌륭한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들을 도와야겠다는 소망을 품었다.

그러나 박 원장은 일찍이 꿈은 가졌을지 몰라도 신앙은 뒷전이었다. 목회자였던 아버지와 기도하는 어머니 아래 교회 예배당에서 태어날 만큼 신실한 집안이었지만 정작 그는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고려대 의과대학에 진학하고, 더욱 교만해진 그는 세상 재미에 빠져 지냈다. 그런 박 원장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건 20대 초반 원인 모를 피부병에 걸리면서다. 온몸에 비늘이 덮이고 흉측한 모습에 거울조차 볼 수 없었지만 원인을 밝혀낼 수 없는 병이었다.


극심한 간지러움으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고, 급기야 그는 대인기피증에 걸려 마스크와 모자를 눌러쓴 채 1년간 은둔생활을 했다. 그러다 마지못해 참석한 교회 수련회에서 박 원장은 기적적으로 주님을 체험했다. 누가복음 5장에 깊은 데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만선의 축복을 누린 베드로가 눈물로 통회하고 예수님을 좇아 사람 낚는 어부로 변한 내용이 그의 상한 심령을 돌이킨 것이다.

두 배가 되는 물고기를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따른 베드로의 모습에서 제 자신을 회개했어요. 저는 제 실력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위치에 올랐고, 그만큼 누릴 자격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엄청난 교만이었던 거죠. 그렇게 나의 나 된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밤새 회개하다 잠들었는데 놀랍게도 다음날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았어요. 아마도 하나님이 이런 깨달음을 주시려고 그 병을 허락하셨던 것 같아요.”

장기려 박사의 수제자
주님의 강권적인 이끄심으로, 졸업 후 그는 전국 크리스천 기독 의대생들의 모임인 누가회의 창립 멤버가 됐다. 그리고 수많은 선교사를 배출한 이곳에서 그 역시 가진 재능을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기로 다짐하고, 의료선교에 대한 소망을 품었다. 그렇게 직접 찾아간 곳이 바로 부산복음병원의 장기려 박사였다. 당시 대개 의대생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수련을 받으러 오는데 반해 다소 파격적인 선택이었지만, 그는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결정이라고 말한다.

국내 최초로 대량 간 절제술을 성공시킬 만큼 탁월한 의료인이자 소외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의 효시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장기려 박사 밑에서 그는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배움을 얻었다. 1982년부터 꼬박 10년의 세월이었다. 이 기간, 박 원장은 무엇보다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장기려 박사의 어깨 너머로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신념과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품는 법을 익혔다.


하나님이 제게 이런 특별한 기회를 주신 이유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만약 제가 서울에서 계속 의사 생활을 했다면 학문적으로는 지대한 업적을 이뤘을지 몰라도, 의료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자 치열하게 사는 방법은 알지 못했겠죠. 실제로 장기려 박사님이 생전 이루셨던 전인치유·생명사랑·의료선교의 비전이 이제는 제 삶을 변화시킨 가장 중요한 가치관이 됐고요. 이를 천국 가는 그날까지 실천하며 사는 게 저의 소명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미션병원
박 원장은 하나님과의 약속대로 ..비전을 구현하는데 부단히 노력했다. 전인치유에 앞장서고 있는 안양샘병원은 그 첫 단추다. 5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안양샘병원이 본격적으로 전인치유에 뛰어든 것은 2001년 박 원장이 부임하고 나서다. 당시 성남중앙병원 진료부장으로 있던 박 원장에게 하루는 누가회 후배이자 안양샘병원 설립자의 아들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안양샘병원을 미션병원으로 만들고 싶은데, 좀 도와달라며 원장직을 간곡히 청했다.


거듭된 고심 끝에 박 원장은 이 또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믿고 수락했다.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병원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무엇이 만족돼야 진정한 미션병원이 될까 고민했죠. 목회자에게 할인을 해줄까, 아니면 직원들을 교인들로 뽑을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더라고요. 그러다 주님께 받은 마음이 기독교적인 의료를 행하는 병원이란 것이었죠. 예수님처럼 단순히 육체적 질병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까지 어루만지는 의료 말입니다.”

그렇게 전인치료를 슬로건으로 내건 안양샘병원은 실로 그간 다양한 환자들을 돌봤다. 전인치유 병동을 처음 만든 2007년도엔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생존자 21명이 입원해 음악·미술치료를 비롯해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2014년 이집트 버스 폭탄테러 사건 때 살아남은 25명부터 세월호 사고로 주방장이었던 남편을 잃은 아내까지, 그간 실로 많은 환자들이 제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안양샘병원을 찾아 마음의 위안을 함께 얻었다.

꽃꽂이부터 웃음·심리·미술·음악 등 실로 여러 방법의 치료가 동원된다고 부연한 박 원장은 무엇보다 환자들의 동의하에 전해지는 복음이 회복의 큰 동력이 된다고 자부했다. “병을 치료하다 보면, 반복된 로 인해 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이 있어요. 이런 분들과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영이 살아나죠. 그렇게 결신하고 전도된 이들도 참 많았습니다. 사실, 안양샘병원의 이란 단어도 결국은 영적 목마름을 해소해줄 구원을 뜻해요.”

생명사랑 정신으로 삶 속 의료선교
한편, 기독의사로서의 삶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을 온몸으로 체감한 박 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성경적 생명윤리에 반하는 첨예한 이슈들에도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이제껏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장 4기 등을 역임하는 등 그의 화려한 이력이 이 같은 사실을 방증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박 원장은 현재 행동하는 프로라이프공동대표로서 태아의 생명권 보장을 외치며 낙태죄 폐지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덕분에 생명윤리 관련 학계와 단체에서 높은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그의 행보는 오늘날 온라인에서 신생아와 장애인 등 생명마저 거래하겠다는 문화 속 눈여겨 볼 대목이다. 그는 물질만능주의에 의해 인간의 존엄성이 경시되는 게 안타깝다생전 장기려 박사는 우리 모두 의사가 되지 않아도, 한 건의 낙태만 막을 수 있다면 훨씬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공감해 많은 크리스천들이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데 나서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 밖에도 박 원장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도 13년째 ‘()아프리카 미래재단을 만들어 의료선교에도 열심이다. 그가 앞서 말한 ..비전 중 마지막 퍼즐을 완성한 셈이다. 2007년 의과대학 설립을 부탁 받아 방문한 아프리카에서 만난 현지인들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가난과 더불어 에이즈 등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인들의 비참한 현실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것이다.

130여 년 전 조선 땅에 발을 딛고 복음을 전했던 해외 선교사들을 본받아 에이즈 예방사업모자 보건 사업을 주도한 그는 잠비아·짐바브웨·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전역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다만, 그는 물고기가 아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의료교육선교에 중점을 둔다. 가령 현지에 의과대학과 의료기관이 설립되도록 재정적 지원은 물론 전문가 양성을 위해 한국에서 훈련을 시켜줌으로써 진정한 의료 자립을 돕는 것이다.

코로나로 왕래가 어려워진 요즘에도 재단은 을 활용해 교육하는 등 선교의 끈을 이어가고 있다. 기술적 측면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헌신할 수 있도록 영적인 격려도 함께 북돋아주고 있다는 게 박 원장의 설명이다. 그는 반드시 선교지에 나가지 않아도 모든 기독의료인은 예수님을 좇아 몸과 마음, 영혼까지 치유하는 자로서 삶에서 선교를 펼쳐야 한다그럼에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언제든 순종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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