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결하고 청렴하다는 자기중심적 착각, ‘정죄’로 이어질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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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결하고 청렴하다는 자기중심적 착각, ‘정죄’로 이어질 수 있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2.01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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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38) - “무도한 인간들”(잠 30:10~34)

아굴의 어록에 뒤따르는 이 단락은 당연한 기준을 따르지 않는 무도한 인간들을 묘사해줍니다. 10절은 중상 행위에 대한 경고입니다. “너는 종을 그의 상전에게 비방하지 말라 그가 너를 저주하겠고 너는 죄책을 당할까 두려우니라.” 책망을 반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하는 책망보다 더 미운 것은 남의 약점을 윗사람에게 일러바치는 행동입니다. 우리는 남을 흉보고 수근거리는 사람의 말은 새겨들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막상 “~카더라”는 말을 들으면 “그랬나~”하면서 그 사람이 왠지 달라보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게다가 그런 뒷담화나 비방을 들은 이가 당사자를 부러 확인하는 경우란 드문 법이니 이런일은 당한 줄도 모르고 지나가기도 합니다. 놀랍게도 본문은 중상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저주하고 가해자가 악행의 대가를 치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주인이 근거 없는 비방을 듣고 진상을 파악한다면, 그래서 진실이 드러난다면, 억울한 비난을 받은 종은 못된 고발자에게 와서 욕을 퍼붓거나 주먹질을 하면 될 일이겠지요. ‘저주’는 받아주는 이 없는 사람이 억하심정을 가슴에서 토하는 심정이요, 가슴에 피멍이 들게 억울한 데 호소할 곳 없을 때 입에서 나오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고아와 과부’의 원한을 들으시는 하나님의 귀에 들어갑니다. 억울한 자의 호소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힘 없고 순박한 이들을 모략으로 넘어뜨리는 자들은 언젠가 그들의 한탄과 저주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손에 아픈 매질을 당할 것입니다.

11~14절에서 ‘무리’라고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도르’는 한 세대(generation)를 가리켜 쓰일 때가 많습니다. 11절이 고발하는 “부모를 저주하는” 자들이 각별히 사악한 특수집단(‘무리’)일 수도 있지만, 앞선 세대를 존중할 줄 모르는 오늘날 세대일 수도 있다는 점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자신이 깨끗하다고 믿으며 더러움을 씻으려고조차 하지 않는 무리는 또 어떻습니까?(12절) 굴뚝 청소를 마친 두 인부에 관한 우화가 있습니다. 작업을 마치고 서로를 바라본 후 한 사람은 세수하러 갔고 한 사람은 그냥 집으로 갔습니다. 알고 보니 얼굴이 깨끗한 인부는 검댕 묻은 동료의 얼굴을 보고 “어이쿠, 세수를 해야겠군” 하면서 깨끗이 씻었고, 얼굴이 더러웠던 종은 상대방의 멀쩡한 얼굴에 안심하고 집으로 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 좋은 말은 다 가져다 쓰면서도 스스로는 돌아볼 줄 모르는 자들이 듣고 가슴이 뜨끔해야 할 말씀이지요. 눈이 나쁘면, 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저는 30대의 어느 날 제가 안경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오후를 기억합니다. 그 전 몇 주간 교회 환등기가 이상하게 초점이 흐리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 “초점 좀 잘 맞추지 참…” 하고 있었으니 어이가 없지요. 양쪽 눈 2.0 “왕년의 자존심”을 접고 혹시 싶어 안경을 써보니 그 깨끗함이란! 육신의 눈은 안경으로 교정이 됩니다만, 자신은 청렴하고 순결하며 지혜롭다고 믿는 마음의 눈을 교정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더욱이 자기중심적 착각을 방치하면 당혹스러운 실수에서 그치지 않고, 폐쇄된 기준으로 남을 정죄하고 비난하는 난감한 존재, 더 심하게는 자기 잇속만을 챙기느라 남들을 피폐하게 만드는 공공의 적으로 퇴행하게 됩니다. “가난한 자를 땅에서 삼키며 궁핍한 자를 사람 중에서 삼키는 무리가 있느니라(14절)” 날 때부터 사악한 사람, 어려서 장래 희망이 조폭이나 사기꾼이었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정하지 않고 방치했던 인격의 흠이 점점 커지고, 작은 거짓말이 작은 이익을 가져다주었을 때 느꼈을 양심의 작은 속삭임에 귀를 닫은 결과일 것입니다. 죄책을 당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소중합니다. 그것을 억누르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지름길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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