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편해야 힘이 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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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이 편해야 힘이 날 텐데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12.01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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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 - 38

60대 여자 환자가 CD 한장을 들고 병원을 방문하였다. 소화가 안되고 속이 불편해서 매 년마다 내시경을 받았고, 약물치료를 받았는데도 증상의 호전이 없어 걱정된다며 온 것이다. 가장 최근에 받은 위 내시경은 위점막이 부어 있고 점막이 얇아져 위장에 혈관이 보였으며, 군데 군데 정상적인 위 조직이 아닌 것들이 보이는 양상이었다. 의학적인 진단은 만성 표재성 위염, 만성 위축성 위염 + 장상피화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 몸의 모든 조직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일을 하지만 위는 좀 더 특별하다. 맡은 일 자체가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기 위해 우리 몸이 아닌 음식물들과 일차적으로 만나기 때문이다. 우리 몸은 생각보다 연약하다. 그런 연약한 장기에 매 번 맵거나 짠음식과 까맣게 탄 음식들이 들어오게 된다. 염증이 안 생길 수 없다. 설령 그런 음식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위에서는 음식물을 소화시키기 위한 강력한 ‘위산’이 분비된다. 위점막은 이런 산에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불과 20~30년 전만해도 젊은이들에게는 위장염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건강한 식생활을 했다는 이야기다. 만성위염은 40~50대부터 나타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10대의 청소년들에게도 만성위염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 40~50대가 어렸을 때에는 지금보다 군것질 거리가 많지 않았다. 기껏 해야 떡볶이나 핫도그 정도였다. 피자나 햄버거는 정말 특별한 경우에만 먹을 수 있는 호사였다. 학업과 교우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도 확실히 요즘보단 적다. 왕따란 말도 없었고 방과후 운동장에선 꽤 많은 학생들이 뛰어 다녔다. 시대가 변하면서 누구나 쉽게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을 먹게 되었고, 친구와 같이 노는 것 보다는 친구가 어느 학원을 다니는 지에 대해 신경을 써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육체의 건강이 최고인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위장에 탈이 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인 것이다.

건강한 위는 최선을 다해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한다. 웬만한 자극이나 상처에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음식물이 들어오면 위산을 분비하고 열심히 음식물을 분쇄한다. 즉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해서 위가 건강하다는 것은 아니다. 내시경상 심한 만성위장염을 가지고 있는 환자도 평소에는 소화도 잘되고 속도 안 쓰린 경우를 꽤 자주 본다.

위 점막에 여러가지 자극물질에 의해 염증이 생기면 그 염증을 저절로 치료하려는 인간의 ‘항상성’이 작동한다. 상처에 새 살이돋 듯 염증이 생겨 지저분해진 점막은 벗겨 지고 새로운 위 점막이 자라나는 것이다. 그런데 염증이 반복되면 이 과정이 완벽하게 일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렇게 되어 위 점막이 얇아지는 것을 ‘위축성 위염’이라고 한다. 이 때부터 위는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새로운 위점막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돌연변이의 암세포들이 생기기도 해서 정상인에 비해 위암 발병률이 높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위축성위염이 있을 때라도 위장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다행이다. 이 상태에서 염증이 반복되면 새로 생겨야할 위점막세포가 아니라 장점막세포가 자라는 장상피화생이라는 상태가 된다. 위장에 장세포가 자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위점막세포에서 분비되어야 할 위산의 양이 줄어들어 전체적으로 위산이 부족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항상 소화불량에 시달리게 된다. 여기에 제산제나 위산분비억제제라도 마구 쓴다면 증상은 더 심해지기도 한다. 세포가 재생되는 과정에서 암세포가 생길 가능성은 더커진다. 이 쯤 되면 매년 내시경을 해서 언제 생겨도 이상하지 않은 위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단계인 것이다.

흔히 위장이 안좋다고 말하는 환자들에게 나는 ‘적어도 위장 건강에 대해서만은 환자분 본인에게 100% 책임이 있습니다’라고 항상 말한다. 예전과는 다르게 위장에 대한 검사를 할 기회가 아주 많다. 내가 증상이 없을 지라도 내시경상 이상이 발견된다면 그 때부터는 위를 위해줘야 한다. 나를 위해 일하는 위가 아파 속이 불편하다면 이미 상당히 위장은 나빠졌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때보 다도 힘든 요즘, 위장 건강이라도 지켜 든든하게 식사를 챙겨 먹고 힘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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