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탄과 거짓을 치워달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 둔 아굴
상태바
“허탄과 거짓을 치워달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 둔 아굴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1.17 14: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37) -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잠 30:7)

‘아굴의 어록’이라 불리는 잠언 30장1~9절은 잠언서만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서도 눈에 띄는 특별한 글입니다. 지혜자인 아굴이 자신을 짐승, 여느 사람의 슬기조차 없는 사람, 못 배운 사람, 거룩하신 분을 모르는 자라고 비하하는 것도 놀랍지만(2~3절), 부모와 스승을 통해 전해지는 전통적 지혜 대신 신비로운 분을 통한 모종의 계시적 각성을 암시하는 것도 구약 지혜문헌으로서는 파격적입니다(4~5절). 그러나 아굴의 어록이 주는 최고의 가르침은 역시 7~9절에 기록된 그의 기도문이라 하겠습니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 죽기 전에 응답해 주십사는 간청이 노년의 심경이나 악화된 건강을 반영하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만, 그 절박함은 모든 기도의 모범이라 할 만합니다.

아굴의 기도는 일견 소박합니다. 허탄과 거짓을 멀찌감치 치워달라는 것이 첫째 요청입니다. “멀리 하옵시며”로 번역된 원문의 의도는 멀리 있도록 하나님께서 액션을 취해달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지켜내겠다고 결심하기보다 하나님의 주권과 조치를 구하는 겸손입니다. 지혜문학은 대체로 개인의 성찰과 결단을 중시하기에 아굴의 이러한 태도는 더더욱 눈에 띕니다. 허탄은 실체가 없는 것이고 거짓은 실체와 어긋나는 것입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허풍, 열매를 맺지 못할 잡담, 지킬 능력도 의도도 없는 공허한 약속, 내 이익을 위해 상대를 홀리는 유혹의 언사 등이 헛됨과 거짓말입니다. 특별한 종류의 인간들이나 이런 흉악한 짓을 한다고 믿는 당신이야말로 위험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순식간에 날아간다고 모세가 표현했던 짧은 인생을 아낌없이 낭비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아굴의 기도제목 1번을 따라 기도할 필요가 없는사람은, 단연코 없습니다.

둘째 요청은 자신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부를 주셔서 하나님께 누를 끼치지 않고 살게 해달라는 요청입니다. 개역개정 성경이 “필요한 양식”이라 번역한 원문을 딱딱하게 직역하면 “내 몫의 음식”인데, 몫은 “새긴다, 금을 긋는다”는 어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줄을 그어 자기 몫으로 주신 것이면 된다는 뜻이니, 아굴의 간구는 갑부도 극빈자도 아닌 어떤 적절한 “중간지대”에 있게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고백입니다. 더구나 가난해서 혹 도둑질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까봐, 부요해서 하나님을 찾지도 않게 될까봐 염려하는 그의 고백을 들으면 우리의 기도가 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있는지 절로 되돌아보게 됩니다. 아굴의 이 기도는 하나님께 자신을 전적으로 의탁하는 믿음을 잘 나타낸 질박하고도 아름다운 기도문입니다. 잠언이 칭송하는 지혜롭고 의로운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을 의로운 삶의 상급으로 누립니다. 잠언서에 찾아볼 수 있는 유일한 기도문인 이 본문은 그런 뜻에서 “슬기로운 의인의 기도문”입니다. 그러니 이 기도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과 닮은 점이 많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허탄과 거짓을 떠나 하나님 주신 인생의 분복을 누리며 살고자 하는 아굴의 기도를 우리 기도의 모범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