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어떤 정치를 선택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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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은 어떤 정치를 선택하는가?
  • 김선일 교수
  • 승인 2020.11.1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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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교수
김선일 교수

미국 대선의 승패는 사실상 결정됐다. 비록 불복과 소송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지만, 거대 반전이 없는 한 내년에는 민주당 정부가 출범할 것이다. 선거는 늘 전쟁과 같지만, 이번 미국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지지자들 간의 대립이 극심했다. 특히 복음주의자들은 트럼프가 미국의 기독교적 가치를 수호해줄 지도자로 보기 때문인지 대다수가 그를 지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억만장자 트럼프가 노동자, 서민의 지지를 받았다는 지난 선거 결과만큼이나 아이러니컬하다. 트럼프는 평생 교회 출석 횟수가 손에 꼽히는 정도였으며, 가장 좋아하는 성경 말씀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답할 정도로 성경적 복음주의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제는 복음주의자들의 지지를 업은 공화당 당적의 대통령으로서 기독교에 친화적인 발언이나 정책을 펴지만, 과거에 그는 낙태 지지자(pro-choice)였고 동성애에 대한 입장도 분명치 않았다.

복음주의 신학자들 중에서 조직신학자 웨인 그루뎀이나 남침례신학교 총장 알버트 몰러는 공개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해야 한다고 했지만, 같은 보수 신학자인 존 파이퍼는 지도자로서 트럼프의 도덕적 공신력을 진지하게 검토할 때 그러한 지지는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개혁주의 목사인 팀 켈러도 그리스도인들이 문화에 대한 표면적 이해로 정치에 대한 기독교적 평가를 내리는 것을 경계했다. 그렇다고 그루뎀과 몰러와 달리, 파이퍼나 켈러는 바이든과 같은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과 정치의 그릇된 결속을 경고했을 뿐이다.

나는 제도로서의 교회가 특정 정치세력과 유착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신자 개인은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신앙 양심에 따른 정치적 입장을 표명할 수 있다고 본다. ,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먼저,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지지(또는 반대편에 대한 비판)가 복음의 반열로 격상돼서는 안 된다. 정치적 목표의 성취가 교회의 절박한 소명은 될 수 없다. 둘째, 특정한 정치적 입장을 지지할 때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가치를 충분히 일관되게추구해야 한다. 나는 이 개념을 복음주의 윤리학자인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가 제시한 충분히 일관된 생명 존중”(completely pro-life)에서 빌려 온다. 미국의 정당들은 전통적으로 공화당의 경우 낙태, 동성애, 안락사 등의 이슈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와 공명을 이루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이더가 지적하는 바는 그와 같은 생명과 창조의 질서를 존중하는 신념(반낙태, 반동성애)이 왜 이미 태어난 사람들의 인권이나 피조세계에 대한 돌봄으로 일관되게 발전되지 않느냐는 것이다. 후자의 이슈들은 미국 민주당이 (현격한 차이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좀 더 관심을 보인다. 오늘날의 자유롭고 다원화된 사회에서 기독교적으로 더욱 가치 있는 정치적 선택을 일률적으로 단정 짓는 것은 어렵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어젠다가 기독교의 가치를 수호하리라 보는 것은 너무도 단순하다.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정치 캠페인이 아닌, 실제 삶의 현장에서 섬김으로 헌신해야 한다. 정강과 모순되는 현실이 얼마나 비일비재한가? 낙태를 반대하는 공화당 정권 아래서 더 많은 낙태가 발생했다. 왜냐하면 위기 임신에 처한 취약계층 여성들에 대한 지원이 삭감되었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가정의 여성들보다 보수적인 (그러나 신실한) 가정의 여성들이 더욱 행복을 누린다는 통계도 있다. 신실한 복음주의 남성들이 가족에 대한 헌신과 자기희생의 가치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 어젠다가 신앙의 가치를 수호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교회를 통해서 종말론적 소망을 품은 신실한 증인으로 예수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리버럴한 정부가 들어서서 공공연하게 기독교적 가치를 훼손하고 복음전파를 방해하는 일이 벌어져도 괜찮다는 말인가?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본주의와 다원주의라는 거대 흐름 속에서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영적으로, 지성적으로, 그러나 온유와 겸손, 그리고 인내로써 싸워야 할 문제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어설픈 기독교 세계관으로 현실 정치를 쉽게 판단하지 말고, 정치적 대립의 한편에 과 몰입하지 말자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선거결과가 기독교적 가치를 위협할까봐 우려된다면, 법률의 최종 결정권을 지닌 미국 대법관의 구성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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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전 왜 신앙인들이 트럼프와 같이 윤리적 문제가 심각한 인물을 지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내 질문에 미국 지인의 답변은 이랬다. “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이번 선거에 관해서 가졌던 우려는 수년 안에 대법원 구성에 불어 닥칠 상황이었습니다. 현재의 대법관들 중 여러 명이 교체될 예정이고 더욱 자유주의적인 대법관으로 교체되면 이 나라는 점점 종교적 자유를 잃고 기독교적 가치에 더 큰 문제가 일어나는 쪽으로 대법원이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전적으로 동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신앙인으로 수긍할만한 우려였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종신직) 대법관의 구성은 63으로 보수가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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