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언은 귀에 거슬려… 칭찬도 가려서 들을 줄 알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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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언은 귀에 거슬려… 칭찬도 가려서 들을 줄 알아야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1.12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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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34) - “은에는 도가니, 금에는 풀무, 사람에는 칭찬”(잠 27:21)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에 누군가가 “사육된 고래만”이라고 덧붙인 것을 보았습니다. 영어 원서의 제목보다 열 배는 발랄한 한국어 역본 제목이 유명해져서 거의 속담이 되었는데, “사육된 고래만”이 덧붙여진 새 버전도 다른 취지의 속담으로 대접받을 만해 보입니다. 잠언 27장에서 눈에 띄는 소재는 친구와 칭찬입니다.

전혀 다른 주제를 다루는 23~27절을 제외하면 2절과 21절이 외피를 이루고 그 사이에 자랑과 칭찬에 관한 경구들이 여럿 배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타인이 너를 칭찬하게 하고 네 입으로는 하지 말거라 // 외인이 … 네 입술로는 하지 말아라(2절).” 자랑질, 자뻑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만 생각해보아도 자화자찬이 얼마나 인간관계를 해치는 행동인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됨됨이와 행실을 보고 남들이 해주는 것이 칭찬입니다. 셀프 칭찬은 그래서 형용모순입니다. 남들에게 칭찬받지 못하니 스스로 칭찬을 해야 하는 처지라면, 칭찬과는 거리가 있는 인생이니 말입니다.

그런데 남들의 칭찬도 헛것일 수 있습니다. 동기가 옳지 않은 칭찬이 있습니다. ‘영업’을 위해 하는 칭찬, 내 목줄을 쥔 상대에게 바치는 칭찬이 진실한 칭찬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심지어 나를 미워하는 사람도 찬사를 날릴 수 있습니다. “친구의 아픈 책망은 충직으로 말미암는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6절).” 이 구절의 원문은 ‘친구’와 ‘원수’ 대신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라는 역동적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중동 문화권의 입맞춤은 오늘날 뺨키스나 허그에 해당하니, “나를 사랑하는 자가 따끔한 충고를 주고, 나를 미워하는 자가 허그를 해댄다”로 옮겨봅니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욕구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고귀한 존재이지만 욕구를 제어하지 못해 스스로를 망치고 남을 해치는 파괴적인 피조물이기도 합니다. 사자가 인간처럼 탐욕을 부렸더라면 초원에 얼룩말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 마리 백 마리 사냥해서 쌓아놓고 자랑질하고 자식에게 물려주려 했을 테니 말입니다. 사자는 배부르면 먹던 사냥감을 던져두고 잠을 청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구는 좀체 채워지지 않습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20절).” 스올은 죽은 자가 가는 곳입니다. 아담 이래 모든 인간은 죽어서 그곳으로 가지만, 돌아온 사람은 없습니다. 거절할 줄 모르고 망자를 삼켜대는 죽음의 세계가 만족을 모르듯 사람의 욕구도 채워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지배받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향하는 것은 결국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인지라(요일 2:16) 우리가 정직한 평가보다 공허한 갈채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이 된 것이지요. 제대로 된 책망이 드러내지 않는 사랑보다 나은데(5절), 직언을 단 마음으로 들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쓴 소리를 하면 친구도 내치고 교활한 아첨꾼은 곁에 두다가 화를 자초한 사람이 한둘이겠습니까.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립니다. 누구나 아는 이야긴데 실천하기는 어렵습니다. 지혜로운 이와 어리석은 이가 나뉘고 인생의 승패가 갈리는 지점이 바로 그 자리일 것입니다. 은은 도가니에, 금은 풀무불에 넣어야 순도를 알 수 있듯이 칭찬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아야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아프지만 너무나 예리한 진실입니다(21절).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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