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은 말일지라도 경쾌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한 지혜자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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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은 말일지라도 경쾌하고 예술적으로 표현한 지혜자의 기술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1.12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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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32) -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잠 25:11)

잠언 25장부터 29장은 “솔로몬의 잠언,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의 편집”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습니다. 솔로몬 개인과 그 시대의 지혜전승을 이어받아 히스기야 때 서기관들이 한 “편집” 작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만, 25장에 국한해보면 메시지의 내용에 따른 편집을 넘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비유의 걸작품들을 수집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충성된 사자는 마치 추수하는 날 얼음[냉수] 같다(13절)”는 바람직한 행동을 권장하는 비유이고 “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14절)”는 피해야 할 행동을 지적하는 비유입니다. 어느 유형이든 독자의 태도와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동원하는 비유들에 독자의 의표를 찌르는 신선함이 넘칩니다. 충성스런 사람을 보면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떠오릅니다. 허풍스런 사람을 보면 구름만 잔뜩 끼고 기다리던 비는 내리지 않을 때 농부가 느꼈을 실망감을 소환하게 됩니다.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누군가를 보며 “추운 날에 옷을 벗는” 기분이 들 정도가 되어야 비로소 그 잠언을 소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20절).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15절)” 서양 격언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표현하는데 펜촉은 날카롭기라도 합니다. 그런데 혀가 뼈보다 강하다니요. 관료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한 모 국가에서 오래 사역하신 선교사님의 경험담이 생각납니다. 선교센터를 증축하려 허가를 받으러 가면 갈 때마다 규정이 바뀌었다며 새 서류를 요구하던 직원 때문에 너무 힘들었답니다. 뇌물을 좀 집어주면 간단히 해결되는 것을 모를 리 없지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가 그럴 수는 없어서, 하라는 대로 서류를 해가고 퇴짜를 맞으면 다시 해가고, 늘 공손한 말로 대답하며 3년을 버텼더니 허가가 나왔답니다! 작은 일에 조그만 뇌물을 주어 일을 성사시켰더라면 큰 일이 닥쳤을 때 더 큰 것을 요구받게 되지 않았을까요. 그 악한 관료는 자신의 음흉한 수작에 굴복한 사역자와 그가 전하는 복음을 우습게 여겼을 것이고, 안타깝게도 “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니 “우물이 흐려지고 샘이 더러워지는(25절)”는 상황이 굳어졌을 것입니다. 내 목마름을 해결하려다 우물과 샘을 더럽히면 갈증으로 혀가 부르튼 뒷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워집니다. 악인 앞에 굴복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넘어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를 지키는 일입니다. 새 우물을 파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만, 최소한 내게 물려주신 우물을 더럽혀놓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듯 잠언은 그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옳은 소리를 하되 거칠고 둔중한 방식이 아니라 경쾌하고 예술적인 표현을 택하는 것이 지혜자들의 기술이었습니다. 지혜문학의 저자들 가운데도 개인적 사유와 체험을 가장 생생하고 대담하게 표현한 현자 코헬렛(전도자)은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고,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전 12:10).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진리인 동시에 예술이기에 참됨과 아름다움은 취사선택할 문제가 아니라 동시에 추구해야 할 이상입니다. 이 주제를 압축해 말해주는 잠언 25:11을 정독해보십시오. 성공적인 소통의 비결은 표현과 타이밍이라는 메시지가, 희귀한 보물의 이미지를 통해 뇌리에 박힙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잠언의 내용을 수긍하는 데 머물지 마십시오. 잠언들에 담긴 수사에 매료되고 비유들을 즐기십시오. 그렇게 해서 내면화한 말씀들이어야 필요할 때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고 낙심에서 건져 갈 길을 가게 도와줄 것입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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