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이 작은 일부터 정직하길 힘쓰면 사탄은 근심하게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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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들이 작은 일부터 정직하길 힘쓰면 사탄은 근심하게 될 것”
  • 유선명 교수
  • 승인 2020.11.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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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명 교수의 잠언이야기 ⑳ - “거짓말을 하는 것이 존귀한 자에게 합당하겠느냐?”(잠 17:7)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와 운동가들의 도덕성 논란이 일면서, 극악한 전쟁범죄인 일본군 성노예제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위안부들을 전쟁범죄의 피해자가 아닌 자발적 부역자로 폄훼하는 발언들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조차 그 뻔뻔함에 수치스러워하는, 조선이 일본 식민지배의 혜택으로 그나마 근대화되었다는 주장들이 한국의 유명 대학 교수들의 실명을 올리고 정식으로 출판되는 현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의사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고 알려진 유럽 국가들이 나치 독일의 범죄행위 특별히 유대인 학살행위를 부인하는 언행은 강력히 처벌하는 이유는, 진실을 거부하는 태도를 용인할 경우 사회의 근간이 흔들린다는 인식에 있다 합니다. 요즈음 우리 주위에서 역사왜곡뿐 아니라 정치담론, 유명인들에 대한 가십 등 확인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말들의 폐해가 큽니다. 그러한 말들이 인격살인이라는 비유를 넘어 실제로 생명을 앗아가는 일들이 잦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사실 확인의 성실함과 사유의 주체성, 그리고 사회적 책임감을 전제로 합니다. 카더라 통신, 아니면 말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는 식으로 무책임한 말이 성행하면 우리 사회의 성숙과 발전은 멀어져갑니다. 주님께서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라고 불러주신 교회조차도 사회의 정직성을 지키고 키워내지 못하면서 잘못된 정보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할 때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선포하셨습니다(요 8:32). 진리는 단지 복음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사실이고 팩트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바로 이어지는 요한복음 9장이 이 점을 아름답게 묘사해줍니다. 예수께서 한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십니다. 소문이 나자 바리새인들이 찾아와 그럴 리가 없다며 부모까지 불러 취조합니다. 맹인이었던 이 사람이 기세등등한 바리새인들을 향해 ‘참 이상하다. 그분이 내 눈을 뜨게 했다는데 왜 그분을 못 믿겠다는 겁니까?’ 라며 거리낌 없이 대꾸합니다. 자신이 이전에는 맹인이었다는 것이 사실이고, 지금은 본다는 것이 팩트입니다. 자유는 진실에서 나옵니다. 불편한 진실을 덮으려하고 자신을 과대 포장하는 사람들은 자유를 알지도, 누리지도 못합니다. 

잠언 17장에는 진실을 가리는 사람, 거짓으로 이익을 얻으려 하는 사람의 운명이 그려져 있습니다. 뇌물을 받고 불의한 재판을 하는 악인(17:23), 악한 사람에게 면죄부를 주고 의로운 사람을 죄인으로 모는 짓은 하나님의 혐오와 진노를 부릅니다(17:15). 이런 짓들은 그 자체로서 악하고 정죄받아 마땅합니다만, 잠언은 그러한 악행의 근본에 있는 것은 생각과 언어의 왜곡을 예리하게 드러내 보입니다: “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17:20) 그리스도의 공동체가 진실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마음의 태도와 선택에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는 사악한 입술에 귀 기울이고 거짓말을 하는 자는 악한 혀에 귀를 기울이느니라”(17:4)거짓말만 찾아 듣다 보니 거짓된 사람이 되고, 생각이 비뚤어져 있으니 거짓말에 마음이 끌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이 진리이신 주님의 복음이고, 진리의 수호자인 교회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일상의 사실과 격리시켜 추상적인 거대담론으로 만들면 사탄은 박수를 치며 좋아합니다.

백석대 교수·구약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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