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병원 최고의 치료방법은 예배와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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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 최고의 치료방법은 예배와 기도입니다”
  • 이인창
  • 승인 2020.11.11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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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몸과 마음 치유하는 경북 김천 ‘신애의료재단’

50년 전 황무지 개간해 몰려온 정신질환자 돌보며 사역 시작
설립자 故 탁신애 권사, 집보다 교회 짓고 환우들 품에 안아 

요양원 성장하며 병원으로 발전… 최고 자연환경과 시설 강점
이사장 정종현 목사, “처음 기도했던 신앙의 유산 지켜나가길”

추풍령 고개를 넘으면서야 가을이 깊어졌음을 깨닫는다. 정신없이 코로나19를 겪으며 미처 하나님의 때를 생각하지 못했던 듯싶다. 백두대간 줄기를 잇는 경북 김천 난함산 중턱에 자리 잡은 복지법인 신애의료재단. 기도와 눈물로 세워진 50여년 역사의 신애정신병원과 신애교회, 그리고 경상북도와 함께 설립한 도립김천노인전문요양병원은 깊은 산 속에서 병자들의 아픔을 보듬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있다. 몸과 마음을 넘어 영혼의 건강까지 책임지는 전인치유의 현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신애의료재단 이사장 정종현 목사는 환우들에게 천국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며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br>
신애의료재단 이사장 정종현 목사는 환우들에게 천국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것을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며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다.

황무지에 일군 신애요양원
신애병원의 설립자는 정종현 목사의 모친 故 탁신애 권사다. 아무 것도 없던 황무지를 개간해 터전을 세우고 몸과 마음이 다친 사람들을 신앙으로 품기 시작했다. 

“이북 출신이셨던 어머니는 피난 오시다가 죽음의 문턱에서 예수님을 만나셨습니다. 6.25전쟁 후 부친은 인천에서 어업조합장까지 하셨는데, 어느 날 신앙생활을 더 잘해보겠다는 마음으로 4남 1녀 자녀들과 함께 용문산기도원으로 들어오셨어요. 그러다 우연히 한센병에 걸린 여자아이를 지극 정성 돌보게 되었는데, 완치하게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탁 권사의 자신을 아끼지 않은 치료와 기도의 능력 덕분이었다. 특히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정종현 목사는 해줄 것이 기도 외에는 없었다고 회상했다. 많은 시간 기도하며 환우를 돌보던 탁신애 권사는 1967년 용문산기도원과 마주보는 산을 맨손으로 개간해 병자들과 함께 하는 공동체를 세워나갔다. 그것이 신애병원의 뿌리가 된 사건이었다. 

깊은 산중 땅이었지만 임자는 있었다. 탁신애 권사는 아픈 자녀를 맡겼던 탄광 사업가에게 돈을 빌렸다. 그냥 돈을 얻을 수 있었지만 기어이 상환하겠다는 조건으로 빌려 땅을 샀다. 집안의 막내였던 정종현 목사는 겨우 중학교 1학년일 때, 어버지의 유언을 따라 형제들이 함께 살면서 황무지와 같은 땅을 개간해 밭과 초지를 일구어 목장을 시작했다. 자립의 터전이 마련된 것이다. 

“어머니는 가족이 살 집보다 교회를 먼저 지으셨어요. 평소 어머니는 목회자를 잘 섬기셨고 자녀들에게도 이 교육을 철저히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기도해주면서 절대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으셨어요. 그 때 교회에 나오지 않던 아랫마을 어르신들이 저희 형제들을 보고, 어머니 때문이라는 복 받는 거라고 해주던 말이 자주 생각납니다.”

신애교회를 세우고 큰 아들 정대현 목사가 목회사역을 감당했다. 자식들에게 어머니는 예배를 늘 귀중하게 강조했다.

“아무리 피곤해도 예배는 철저하셨어요. 우선순위가 분명해 형제들이 감히 새벽예배를 빠지질 못했습니다. 잠들었다가 못나가기라도 하면 그날 아침에는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기도하는 데 있어서 어머니는 초인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매일 밤새 기도하셨어요.”

신애정신병원 환자들은 자유로운 외부활동으로 치료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요양원에서 의료법인으로 도약
어렵게 일군 요양원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다. 1981년에는 정식 사회복지법인으로 등록하고 신애정신요양원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가족들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으로 소문나면서 전국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20년이 지나 1998년에는 병원으로 도약했다. 의료복지법인 신애의료재단이 설립돼 정식 정신병원으로 승격한 것이다. 신애재단의 성실한 의료경영이 알려지면서 2005년에는 경상북도 차원에서 요양전문병원을 제안해 왔다. 재단에서 토지를 기부체납하고 지자체 예산으로 병원을 지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신애정신병원은 420여 병상, 노인요양전문병원은 260여 병상으로 탄탄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다. 최근 요양병원 문제가 속속 터지는 가운데 우수 모범 사례로 공영방송에 소개될 만큼 환우 친화적 치료를 추구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약물에 의존하는 치료가 아니라 환자가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길을 찾아가도록 돕고 있다. 정신병원이라고 하면 폐쇄적으로만 생각하지만, 신애병원은 외부 자유 활동이 가능하다. 얼마든지 스포츠와 원예, 공예 등을 하면서 스스로 병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다.

도립노인전문요양병원은 최근 KBS에 모범적인 요양병원 운영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노인요양병원 역시 넓게 공간을 사용하고 무엇보다 병원 내 쾌적한 환경과 밖의 풍부한 자연이 어르신들에게 심리적 평온을 얻게 한다. 도시의 답답한 병원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신앙생활은 병마를 이길 수 있는 동력이 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을 얻게 한다. 신애정신병원과 노인전문병원은 각기 다른 건물이지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정종현 목사를 포함해 원목들은 환우들을 위한 예배에 집중하고 있다.

“정신병원 환우 중 35%는 알코올 중독입니다. 치료가 잘 안 되는 질환인데 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치료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합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술도 끊고 자활한 사례도 있으니까요.”

환우들은 매일 새벽예배를 드리고 병원 정규예배, 교회 주일예배, 금요일마다 순회하는 병동 예배까지 늘 예배 안에서 생활할 수 있다. 신애교회의 일반 성도들과 함께하는 예배도 큰 활력소가 된다.

행복했던 이민목회였지만 부르심 따라
의료법인을 이끌어가고 있는 정종현 목사는 1990년대 중반부터 병원 경영에 참여했다. 사실 정 목사는 신애병원 사역보다 일반 목회의 비전이 컸다. 대학 졸업 후 공기업에 잠시 취업을 했다가 목회자의 꿈을 발견하고 신학교에 진학했고, 이후 1984년 영국 유학 중 부교역자로 시무하던 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그에게 이민목회는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만큼 열정을 다했고, 성도들과 친밀한 교제도 나눴다. 

그러나 병원 사역을 도와달라는 어머니의 간청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어 고국에 돌아가기로 결심하게 된 것. 마음이 흔들릴까봐 아내와 상의도 하지 않은 채 교회에 사임 의사를 먼저 밝혔다. 성도들이 극구 만류했지만 그는 결국 1994년 김천으로 돌아왔다. 재차 영국으로 와달라는 청빙을 마다한 채 병원사역에 매진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오고 있다. 

경상북도와 함께 설립한 도립노인요양전문병원 전경.

“병원은 선교지, 기도 초심 기억해야”
하지만 시련도 있었다. 형제들이 뜻을 모아 병원 인근에 골프장을 건설해 새로운 수익사업을 모색하던 중 부도가 난 것. 

“이 일로 하나님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사업이었고, 해서는 안 될 사업이었어요. 하나님께서는 병원으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거잖아요? 하나님께서 더 좋은 가르침을 주셔서 처음 요양원을 세웠을 때 받은 신앙의 유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병원 이사장이기 때문에 제법 부유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정 목사는 2011년 법원에서 결정된 최저임금만 받고 병원을 책임 경영해오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재단의 빚을 거의 상환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속한 백석총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3년 적금을 부어 총회관 건립헌금을 완납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그의 진심이, 이민교회에서나 병원, 그리고 총회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 병원에 계시는 환우 분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사역이 최우선입니다. 병원 경영은 갈수록 어렵죠. 솔직한 심정은 하나님이 필요하신대로 하실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님이 오실 때까지 병원의 정신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정종현 목사가 돌봄 사역을 생각하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 해 줄 말이 많다. 정 목사는 “목회자의 사명과 본질이 희석되지 않도록 항상 염려하면서 사역에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수사역을 맡겨주신 원칙은 복음을 전하는 데 있음을 명심하면서 물질과 명예를 늘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의학적 치료를 도외시하는 막무가내식 사역에 대해서도 강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막다른 곳에서 어려울 때 한번이라도 더 무릎을 꿇고 성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50여 년 전 처음 황무지를 개간했을 때와 같은 기도의 초심을 그는 강조하고 또 강조했다. 
이인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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