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배가 아픈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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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배가 아픈데
  • 송태호 원장
  • 승인 2020.11.10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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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 송태호의 건강한 삶 행복한 신앙-37

17세 남자 환자가 소화가 안 된다며 진료를 받으러 왔다. 어제 저녁까지는 별 일 없이 잘 지냈는데 오늘 새벽부터 속이 거북하며 약간 미식거린다며, 그냥 학교에 갔으나 증상이 없어지지 않아 병원에 왔다고 했다. 나이 먹은 티를 내려는 것은 아니지만 라테는( 나 때는) 웬만큼 아파서는 학교에서 조퇴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학창시절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상장은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도합 12년간 개근했다는 개근상장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심한 열이 났어도 학교에서 끙끙 앓으면서 수업을 들었던 것 같다. 그 상황이 심한 전염병이었다면 큰일나는 상황이었을테지만 당시에는 좀 무모했던 일들이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곤 했다.

자세히 진찰을 했는데 위와 장의 연동운동이 증가되어 있고 위장에 가스가 차 있었다. 환자는 아침에 변의가 있어 화장실에 갔었으나 변을 보진 못했다고 했다. 배를 촉진해 보았는데 상복부를 누르면 통증이 약간 있을 뿐 특별한 진찰 소견도 없었으며 열도 없었다. 단순한 소화불량으로 생각하고 약을 처방하면서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진료 당일이라도  다시 병원에 오라고 말했다.

바쁜 하루가 지날 무렵 아침 일찍 왔던 그 환자가 다시 방문했다. 환자는 아랫배를 움켜쥐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약을 먹은 후 약간 좋아지는 것 같아서 점심까지 먹었는데 윗배가 아프던 것이 배꼽주변으로 내려왔다가 이젠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다고 했다. 부랴부랴 환자를 진찰대에 누이고 다시 진찰해 봤더니 ‘급성 맹장염’이 의심된다. 오른쪽 아랫배가 누르면 통증이 심할 뿐더러 눌렀던 손을 뗄 때도 움찔거리며 통증을 호소한다. 바로 ‘복막자극징후’다. 이 증상은 수술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중요한 단서다. 개인병원에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검사가 불가능 하므로 맹장수술이 가능한 병원으로 가서 검사하고 수술을 받도록 해 주었다. 수 개월 후 감기로 다시 방문한 환자는 그 때 급성 충수돌기(맹장)염이 터지기 직전이었다며 수술을 잘 받고 이젠 괜찮다고 했다.

입에서부터 항문까지는 모두 통해 있는 한 길이다. 음식물들은 이 길을 일방통행한다. 우리가 물구나무를 서도 먹었던 음식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다. 그런데 이 소화기관에서 유일하게 끝이 막혀 있는 곳이 바로 맹장(충수돌기)이다. 이 막혀 있는 맹장에 음식물이나 대변이 들어가서 나오지 않고 염증을 일으키거나 주변의 임파선이 부어 입구를 막아 염증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급성맹장염’이다. 안타깝게도 여기서 생긴 염증은 항생제를 아무리 써도 좋아지지 않기 때문에 21세기인 지금에도 제거수술이 표준치료이다. 이외에 장의 일부분이 주머니를 형성하는 ‘게실’ 이 있어 거기에 염증이 생겨도 약물치료 잘 되지 않아 수술 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야 한다. 30여 년 전만 해도 다른 이유로 배를 열고 수술을 하게 되면 맹장에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예방목적의 맹장 제거를 할 것인지 환자에게 묻는 의사들도 많았다. 최근에는 맹장이 우리 몸의 면역기능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연구결과들이 나오면서 예방목적의 맹장제거는 하지 않는다. 

이처럼 걸리면 수술을 해야 치료되는 급성맹장염은 오래 전부터 의사들에게 골칫거리였다.  마땅히 특징적인 검사결과도 없고, 오로지 의사의 손 끝의 진찰에 의해만 진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진’도 많다는 이야기다. 의학교과서에도 급성맹장염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지만 수술은 필요없는 질병이 몇 개나 기술되어 있을 정도다. 이른 바 ‘명의’들도 급성맹장염의 진단을 어려워 했다. 그 결과 맹장염이 아닌데도 의심이 되면 수술을 하곤 했다.  지금은 진단기술이 발전하여 초음파나 CT로 초기의 급성맹장염을 진단할 수 있으나 아직도 일반적인 개인의원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맹장염은 특별하게 왜 생기는 지도 잘 모른다. 누구에게나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장염을 가장 강력하게 의심하는 증상은 오른쪽 아랫배가 아픈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맹장의 위치가 다르다는 떠돌아 다니는 말은 그야말로 낭설이다. 맹장이 왼쪽에 있는 사람은 10,000명 중 한 명 정도인 희귀한 경우이다. 간단한 소화불량일 지라도 시간이 흘러 오른쪽 아랫배가 아프다면 혹시 맹장염이 아닌 지 걱정해야 한다.
송내과 원장·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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