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처럼 부디 살아주세요”
상태바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처럼 부디 살아주세요”
  • 손동준 기자
  • 승인 2020.11.10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은 힘들겠지만 나처럼 부디 살아주세요”

이겨낸 사람들의 한결같은 고백 “살길 잘했다”
같은 어려움 겪는 사람들 보며 누구보다 공감
동질감 느끼며 실제적인 지원 가능 “돕고싶다”

한국사회에서 자살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자살을 시도했던 이들 가운데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토대로 다른 이들을 돕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살아있기를 잘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부디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사회에서 자살의 문제가 끊이지 않고 있다. 과거 자살을 시도했던 이들 가운데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을 토대로 다른 이들을 돕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살아있기를 잘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어려운 일이겠지만 부디 살아달라”고 당부했다.

계속되는 자살률 고공행진이 우려를 더하는 가운데 이번주 연중기획 ‘오해와 이해’에서는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과 흔히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자살자 유가족을 만나봤다.

 

“살아있기를 잘했다”

1599-9191. 각종 위기와 자살문제까지 다양한 문제로 신음하는 이들이 마지막에 찾는 한국생명의전화다. 상담원 A씨는 최근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2년 전에 자살 시도 직전에 생명의전화에 전화를 걸었고, 상담 이후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이렇게 전화를 주셔서 ‘살았다’,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하는 말을 들을 때면 그렇게 보람되고 행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천안지역에서 작은 빵가게 ‘바보 찐만도’를 운영하는 한만호 목사도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말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건설업을 하던 그는 30여 년 전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렸다. 이 일로 한참을 주저앉아 있었다. 당시에는 ‘죽음’ 밖에는 선택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가족들이 눈에 밟혔고 시장 바닥에서 찐빵 기술을 배웠다. 입에 풀칠이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춥더라도 기술이 있으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차츰차츰 생활도 나아졌다. IMF 때는 노숙인들을 도우며 자비량 선교에 눈을 떴고, 뒤늦게 목사 안수도 받았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일도 계속해왔다. 2016년에는 천안시에서 열린 자살예방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해 “누구든 생활고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찾아오라”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 목사는 “실의에 빠진 사람들에게 이런 길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가족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어”

천안시자살예방센터(센터장:안영미 교수)에서 자살자 유가족들을 돕는 동료지원활동가 B씨. ‘동료지원’이란 쉽게 말해 유가족이 다른 유가족을 돕는 활동이다. 이 말은 B씨 또한 2017년 자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이라는 뜻이다. 

외과 간호사였던 B씨는 가족을 잃기 전에 수많은 자살 시도자들과 끔찍한 현장을 봐왔지만 막상 가족의 죽음 앞에서는 크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감당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이 B씨와 남은 가족들을 덮쳤다. 실제로 자살자 유가족은 자살 고위험군으로 꼽힌다.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정말 힘들었어요. 충격을 받아서인지 저 자신도 같이 죽는 환영을 보기도 했죠. 공황도 왔어요. 따라가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수시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남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버텼다. 혹시나 다른 가족이 극단적인 시도를 할까봐 집 안에 줄이란 줄은 다 없앴다. 그 무렵 지역 자살예방센터에 유가족 자조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했다. 상담을 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상담을 받는 것이 탐탁지 않은 터였다.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고 지속적으로 모임에 나가다보니 새로운 유가족들이 유입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B씨는 유가족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고 토로했다. 부정적인 편견을 느낄 때가 많다고 했다. 
“저도 유가족이 되기 전에는 다른 유가족을 보면서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불화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하곤 했어요. 그런데 가족 간에 불화가 있다고, 부모가 다그친다고 다 극단적인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복합적인 건데. 그런 부정적인 편견을 깨고 나오는 것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B씨는 같은 어려움을 겪는 자살자 유가족들을 향해 “생각보다 이런 일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며 “그만큼 당신을 도울 사람도 의외로 많다. 힘들어하지 말고 사회로 나오라. 슬픔은 나누면 나아진다. 오시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죽지 말라는 말보다는 슬플 때 죽지 말고, 행복할 때 죽으라고 말해주고 싶다”며 “그러다보면 자살이 평생 미뤄질 수도 있지 않겠나.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 달라”고 당부했다. 

 

“코로나 지나며 생의 의지 깨달아”

20대 자살 시도자 C씨. C씨는 5년 전 첫 자살 시도 이후 기독교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대표:조성돈)와 첫 만남을 가졌다. 당시 학생이었던 C씨의 경우 생활고나 극한 스트레스보다는 조울, 우울, 조현 등 정신건강의 문제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C씨는 정기적인 병원진료 외에 라이프호프와 긴밀하게 연락을 이어가며 건강한 신뢰관계를 쌓아가는 중이다. 최근에는 파트타임이지만 일자리도 얻었다. 2년째 자살 시도가 없었던 C씨는 최근 코로나19를 지나며 자신 내면에 있던 ‘생의 의지’를 깨달았다고 했다. 

“올해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병에 걸릴까봐 공포에 떨었죠. 저도 똑같이 병에 걸릴까봐 마스크를 열심히 쓰고 다니고, 바깥에 나갔다 오면 손을 깨끗하게 씻고 있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고 싶었구나.”

C씨는 최근 건강한 신앙공동체와 만나면서 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과거 속했던 교회에서는 “기도하면 된다”든지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시련만 주신다”며 C씨의 문제를 신앙의 문제로만 치부해서 오히려 더 악영향을 끼쳤다. 

라이프호프 사무총장 장진원 목사는 “건강한 공동체가 아니거나 준비가 되지 않은 교회는 자살 시도자들에게 더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며 “교회의 잘못은 아니지만 고위험군에 속하는 이들 중에는 말씀과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자살을 단순히 신앙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 정신건강의 문제로 자살을 시도하는 이들에게는 주치의의 도움이 가장 절실하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면서 “교회에서도 사역자들이 자살 시도자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어느 정도 숙지하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