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탐욕에서 자유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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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탐욕에서 자유케 해
  • 이상규 교수
  • 승인 2020.11.10 1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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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 교수의 초기 기독교 산책 (36) - 초기 기독교회에서의 예배와 전도 ④

앞에서 기독교는 공개적이거나 조직적인 전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일상의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구별된 삶을 통해 전파되었다고 말했는데, 그렇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 이 보여주었던 삶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이를 몇 가지 개념으로 설명해보자.


첫째는 형제애적 유대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형제자매의 관계 로 인식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서로를 형제 혹은 자매라고 불고 그렇게 간주했다. 성경에서도 동료 그리스도인을 칭하는 가장 빈번한 표현이 형제자매 메타포다. 이 가족 개념(Sibling metaphor)은 교회공동체의 성격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비유다. 서로를 형제자매라고 불고, 비록 멀리 떨어져 있고 대면한 일이 없다할지라도 한가족으로 여긴 우주적인 공동체다. 이런 새로운 관계는 당시 사회가 누리지 못했던 새로운 관계다.


둘째, 자신들을 이 땅에 ‘거주하는 나그네’(resident aliens)로 여겼다. 그리스도인들은 단지 이 땅에 마음을 두고 사는 거주민이 아니라 이 땅에 거주 하지만 나그네로 살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을 원한 도성으로 여기지 않고 하늘에 소망을 둔 이들이었다. 말하자면 심리적 이민자들이었다. 프랑스 골에서 극심한 박해 이후인 177년에 쓴 편지에 이런 말이 있다. “비엔나 와 골, 리옹의 ‘거주하는 나그네’인 그리스도의 종들이 동일한 구원의 믿음 과 희망을 품고 있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있는 형제들에게 편지합니다.” 자신들을 거주하는 나그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자기 정체성의 표현이었다. 2세의 후반의 변증서인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는 보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식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국가나 언어 또는 문화로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만의 도시에서 살지도 않고 그들만의 독특한 대화방법을 쓰지도 않는다. 삶의 방식도 특별한 것이 없다. …의복이나 음식, 그리고 다른 일상생활 방식에서도 그 지역 풍습을 따라 산다. 동시에 그들은 아주 두드러지고 독특한 자신들만의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에 살지만 ‘거주민이자 나그네’의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시민으로 모든 일에 참여하지만 외국인으로서 모든 것을 참고 산다. 모든 낯선 땅이 자신들의 조상 땅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조상의 땅이 또한 낯선 땅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결혼하고 자식을 낳지만 자식을 버리지는 않는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박해를 받는다. 그들은 가난하지만 많은 이들을 부요하게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혼이 육체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있다.”


이 땅에 거주하지만 이 땅에서는 나그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자기 인식은 이 땅의 어떤 것, 곧 물질 명예 권력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었다. 이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 세상과 어울려 살지만 이 세상과 다르게 사는 그리스도인이었다. 디오그네투스는 이 점을 밝힌 것이다. 이어서 그는 장문의 비유를 통해 기독교인이 이 세상과 맺은 관계를 ‘혼과 육신의 관계’에 비유했다 (6.1~10).

 

기독교인들은 세계 도처에 흩어져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강조한 것이다. 나는 이 말을 코넬리우스 반틸이 제일 처음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2천년 전에 무명의 변증가가 한 말이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한 나라의 시민권자이지만 고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있는 사람을 빗대어 기독교인의 생활 방식을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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